“메갈과 한남 소리 동시에 듣는다” 혐오 표현에 소신 밝힌 고려대 대숲글

2018-08-16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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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는 이런 단어들이 불쾌하다고 지적하면 뭐라고 했었는가? X선비라고 했다.”

SBS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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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 표현에 대해 소신을 밝힌 '고려대학교 대나무숲' 글이 많은 공감을 얻고 있다.

지난 15일 고려대학교 대나무숲 페이스북 페이지에는 긴 글이 올라왔다. 글쓴이는 "믿거나 말거나지만, 나는 한국의 남성이고 게임을 좋아한다. 그리고 최근엔 여성 인권 문제에 대해 고민이 많다"고 밝혔다.

#39260번째포효 본 제보는 필터링 대상 혐오성 단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 사용되는 용례에 대한 설명으로 누군가를 비하하기 위해 사용하고 있지 않습니다. 관리자분의 오해가 없으시길...

게시: 고려대학교 대나무숲 2018년 8월 15일 수요일

그는 "소위 메갈리아 노선을 탄 사람들과 많은 언쟁을 했다. 여성문제에 관심이 많지만 그들과 생각을 완전히 공유하지는 않는다"며 "결정적으로 내가 그들과 함께할 수 없다고 결심한 이유는 메갈리아에서 이태원 살인사건을 갓양남이 한남을 죽인 사건이라고 표현하고, 남성 성폭행 피해자에게 조신하지 않아서 당했다는 등의 2차 가해를 하는 것을 보면서였다"고 썼다.

이어 "저런 사람들과 토의를 하면 나한테 한남이라고 한다. 근데 웃기게도 또 다른 쪽에선 나한테 메갈이라고 한다. 페미니즘에 관심을 가진다고"라며 "어차피 답은 상대에게 정해진 것 같다"고 했다.

글쓴이는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지금 게임 커뮤니티가 돌아가는 상황에 대한 의문이다"라며 게임 커뮤니티 내 이중성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한남'과 '재기하라'는 표현에 대해 "개인적으로 이런 단어들에 동조하고 싶지 않다"며 비판하면서도 동시에 메갈을 공격하며 혐오 표현을 일상적으로 쓰는 게임 커뮤니티 내 분위기에 의문을 제기했다.

글쓴이는 "나는 롤을 좋아한다. 내가 소라카 같은 여성 캐릭터를 고르면 ctrl+3을 누르며 박는다며 시늉을 하는 사람이 심심하면 한 번씩 나온다"며 "게임을 처참하게 지면 강간당했다는 말도 자주 봤다. 과거에는 이런 단어들이 불쾌하다고 지적하면 뭐라고 했었는가? X선비라고 했다. 정말 웃기게도 요즘은 메갈이라고 한다. 롤을 하는 동안 이상하게도 나를 제외한 사람들은 패드립을 듣지 않는 이상 그 이외의 어떤 비하/혐오 발언도 용인 혹은 묵인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는 게임 커뮤니티 외부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있다고 했다. 그는 "디씨같이 좀 더 과격한 사이트로 넘어가면 애미가 뒤졌다는 말은 아주 일상적인 감탄사에 불과하다. 매일같이 말끝마다 애미가 뒤졌다고 하던 사람들이 메갈에서 애비충이라 하는 단어에는 모욕감을 느낀다니? 이상하지 않나?"고 반문했다.

또 "맘충이란 단어가 왜 사용되고 어머니가 왜 벌레같은 존재가 되는지에 대해서는 구구절절 사례를 붙여가며 설명하는데, 한남충이란 단어에 대해서는 혐오단어라고 한 마디로 정의하고 있을 뿐이다"며 "노인이 잘못하면 노슬아치 꼰대고 엄마가 잘못하면 맘충이고 애가 잘못하면 급식충이고 여자가 잘못하면 김치년인데 남자가 잘못한 게 한남충이 되어선 안 된단다"고 했다.

글쓴이는 "나는 메갈을 옹호하자, 메갈을 긍정하자 이런 말을 하고자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이건 그 이전의 문제다. 과연 한국 인터넷 사회들이 메갈을 비판할 수 있을 정도로 혐오를 배제하기 위해 노력을 해 왔는지, 최소한의 자정을 하기는 했는지 묻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한 번 되묻고 싶다. 당신이 애용하는 커뮤니티, 당신이 그 동안 써 왔던 단어들. 과연 안녕하십니까?"라며 글을 마무리했다. 이 글은 16일 오후 현재 1000명이 넘는 이용자에게 '좋아요'를 받고 300회 이상 공유되며 화제가 되고 있다.

댓글에서도 많은 이용자들이 글쓴이가 제기한 문제의식에 동감한다는 뜻을 밝혔다. 한 이용자는 "좋은 이야기고 생각해야 할 지점"이라며 "하지만 이 좋은 이야기에 숨어서 '둘 다 나쁜 건데'라고 말하고 이야기를 일축해버릴 수많은 사람들이 두렵다. 성찰 없는 양비론만큼 의미 없는 것은 없다"고 생각을 밝혔다.

home 박혜연 story@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