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여행 비용만 400만원?” 학생 부담 커져가는 수학여행

2018-09-30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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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여행 비용을 부담스러워하는 학생과 학부모는 적지 않다.

기사와 관련 없는 사진 / JTBC '더패키지'
기사와 관련 없는 사진 / JTBC '더패키지'

(서울=연합뉴스) 박성은 기자·김민선 인턴기자 = "제주도로 비행기 타고 수학여행을 가는데 비용이 40만원 가까이 돼요. 마지막 수학여행이고 친구들이랑 추억을 쌓고 싶은데 집안 형편상 너무 큰돈으로 느껴져요"

이하 연합뉴스
이하 연합뉴스

지난 3월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한 학생의 고민이 담긴 글이 올라왔다. 자신을 고등학교 2학년이라고 밝힌 글쓴이는 "엄마는 돈 걱정하지 말고 다녀오라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털어놨다.

경기도에 사는 김 모(42) 씨는 "통장에 있던 40만원과 비상금을 긁어서 수학여행비 50만원을 겨우 냈다"며 "아이가 들떠있는데 옷도 사주고 용돈도 주려면 돈을 빌려야 하나 싶다"고 걱정했다.

수학여행 비용을 부담스러워하는 학생과 학부모는 적지 않다. 이런 가운데 일부 특수목적고 등이 최근 몇 년간 1인당 400만원이 넘는 수학여행을 다녀와 학생들 간 위화감을 부추긴다는 지적이 나왔다.

일각에서는 고가의 수학여행을 제한하는 등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지만, 수학여행은 학교와 학생, 학부모 자율로 결정해야지 외부에서 간섭할 수 없다는 반대 시각도 있다.

◇ 수학여행비 100만원 넘는 학교 97개…일본, 미국 등으로 떠나

수학여행은 근대적 교육이 실시되기 시작한 1900년대부터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청소년 대상으로 교육을 목적으로 하는 여행을 말한다.

전국 학교별로 수학여행 장소와 비용은 제각각이다. 해외문화에 대한 체험 욕구 증가와 소비수준 향상으로 수학여행 장소가 국내에서 일본, 중국, 미국 등 해외로 바뀌는 추세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수학여행 비용 역시 점차 커지고 있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김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교육부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2016년부터 올해까지 수학여행비가 학생 1명당 100만원을 넘은 경우는 97개 초·중·고교에서 총 184건이었다. 초등학교가 26개교(49건), 중학교가 9개교(17건), 고등학교가 62개교(118건)였다.

이중 수학여행비가 학생 1인당 200만 원대였던 학교는 18개교(27건), 300만 원대였던 학교는 9개교(20건)였다. 세종의 한 특목고와 경기의 한 특목고는 각각 2016년과 2017년 수학여행비가 학생 1인당 446만5천원과 425만원이었다.

한 특목고의 1학년 93명은 지난해 9박 11일간 미국 뉴욕, 워싱턴 등을 거쳐 하버드대학 등 '아이비리그'의 명문대학을 탐방하는 동부 프로그램과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샌프란시스코 등을 방문해 버클리대학 등을 둘러보는 서부 프로그램으로 나누어 수학여행을 다녀왔다. 숙소는 4성급 호텔에서 묵었다. 동부 수학여행비는 400만원이 넘었고 서부는 380만원대였다.

경상남도의 한 사립중학교에서는 2학년생 155명이 2박 3일간 일본 교토, 고베, 오사카를 돌아보는 일정으로 1인당 84만원 비용을 냈다.

◇ 매년 불거지는 논란…학부모 부담도 커

고가의 수학여행에 대해 위화감과 상대적 박탈감을 불러온다는 주장이 나온다.

김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고액 수학여행으로 학생들 사이에 위화감이 생긴다는 지적이 매년 반복되지만, 개선이 이뤄지지 않는다"면서 "수학여행 때 저소득층을 배려할 방법 등 당국의 확실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에 다니는 김 모(17)양은 "400만원이 넘는 수학여행비는 학교의 저소득층 학생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금액"이라며 "다른 학교 학생들 또는 학교 내 경제적 수준이 낮은 학생들에게 부정적인 분위기를 부추길 수 있다"고 말했다.

학부모들의 부담도 크다.

신한은행이 빅데이터를 활용해 분석한 '서울시 생활금융지도' 소득편에 따르면 서울 직장인의 평균 월급은 223만원(2017년 12월 기준, 고객 155만명 대상)이었다. 직장인의 두 달 치 월급에 해당하는 돈을 내야 갈 수 있는 수학여행이 있다는 얘기다.

학부모 박 모(45) 씨는 "수학여행이 위화감을 조성한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지적했다.

현실을 반영한 보완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해외수련활동 운영 실태 및 개선방안 연구'(김재욱) 논문은 "비용 부담으로 참여하지 못하는 학생들은 교육 활동 저하를 겪을 수 있다"며 "해외 수학여행 경비의 분할 적립 등을 고려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 "긍정적 효과도 있다"

고가의 수학여행이 필요하다는 반론도 없지 않다. 하지만 부작용으로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다.

특목고에 다니는 김 모(19) 군은 "1학년 때 미국 스티븐슨 공과대학에 2주일간 다녀왔는데 비싸지만 그만큼 값진 경험을 했다"고 말했다.

김 군은 "수학여행을 계기로 대학 졸업 후 미국 대학원에 진학해야겠다는 결심이 생겼다"며 "미국 교사나 학생들 모두 의견을 자유롭게 표출하고 그것을 존중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설명했다.

학부모 정 모(47) 씨는 "비용이 부담됐지만, 아이가 다녀오고 나서 프로그램에 만족하고 미국에서 공부하고 싶다는 꿈이 확실해졌다고 말해 돈이 아깝지 않았다"며 "개인적으로 가려면 힘들었을 테지만 학교에서 보내줘서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김경회 성신여대 교육학과 교수는 "수학여행을 어디로 가느냐는 문제는 학교, 학생, 학부모의 자율이지 정부나 교육청 등 외부 기관이 개입할 일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최유경 전 울산시의회 의원(교육위원회)은 "고가의 수학여행을 제도적으로 규제하기는 어렵다"면서도 "고가의 수학여행이 친구들과 친목을 다진다는 수학여행의 취지에 벗어날 수 있어 지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울산의 경우) 교육청이 수학여행비를 지원하기 위해 노력 중인 만큼 학생들 간 위화감 조성 문제는 서서히 줄어들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자녀가 고가의 해외 수학여행을 다녀온 학부모 이 모 (49) 씨는 "해외 경험도 좋지만, 돈이 없어 못 가거나 부담스럽게 가는 학생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이나 마음의 상처를 주면서까지 가는 게 교육 차원에서 좋은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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