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힘들어서” 술 마시는 청소년들 (위키설문 결과)

2018-10-16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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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10명 중 7명, 가족을 제외한 타인과의 음주 경험 있다고 답해
“청소년 뇌는 술로 인한 충동 조절에 어려움을 겪는다”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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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충북 청주시 흥덕구 가경동의 한 무인 모텔에서 친구·선배들과 술을 먹던 여중생이 사망했다. 숨진 중학생 A(14) 양은 음주 중 의식을 잃고 쓰러져 119 구급대에 의해 병원으로 옮겨졌다. 치료 중 잠시 의식을 회복하는 듯했으나 다음 날 오후 숨졌다.

A 양 사인은 부검 결과 '급성 알코올 중독'이었다. 소주 한 병 가량을 한 번에 마신 A양의 혈중알코올농도는 치사 수치(0.4%)에 근접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술을 판 편의점 종업원과 모텔 업주를 청소년 보호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해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A 양 사례처럼 청소년 음주 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무인 모텔과 코인 노래방 등이 청소년들의 음주 사각지대가 되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지난 1일 경찰청에 따르면 음주 상태에서 범죄를 저지른 청소년은 2016년 5181명에서 지난해 5431명으로 1년 사이 4.8% 늘어났다. 올해 1월부터 8월 사이에도 청소년 3638명이 술에 취해 범죄를 저질렀다.

청소년들은 왜 술을 마시는 걸까?

◆ 청소년 10명 중 7명, 음주 경험 있어

위키트리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지난 9월 10일부터 21일까지 11일간, 청소년을 대상으로 음주 실태에 대해 설문 조사했다.

미성년자인 만 13세에서 18세 사이 응답자 172명 중 122명(약 71%)이 가족을 제외한 타인과 음주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한 반에서 음주 경험이 있는 학생 수를 묻자 약 30%가 '한 반 30명 기준, 25명 이상'이라고 답했다.

연령별로 보면 가족을 제외한 타인과의 음주 경험이 있다고 답한 122명 중 만 18세가 약 38%, 17세가 약 35%, 16세가 약 16%, 15세가 약 9%, 14세가 약 2%, 13세가 약 0.8%로 조사됐다.

응답자 대다수가 친구, 선·후배와 함께 음주를 경험했다고 말했다. 음주 장소로는 집, 놀이터, 모텔, 한강, 노래방(코인노래방 포함), 아파트 옥상, 공원, 영화관을 꼽았다.

◆ "맨정신에 진실한 속마음 터놓기 어려워" 청소년이 술 마시는 이유

B(18) 군 "중학교 2학년 때 처음 술을 마셨어요. 학교 친구들과 새벽시간 아파트 단지 내 정자에서요. 술을 마실 때 일탈하는 느낌, 자유와 해방감이 좋아요. 특별한 이유는 없어요 관심사를 공유하고 친구들과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정도"
C(18) 양 "술을 마시면 학업 스트레스와 고민들을 솔직하게 터놓고 말하기 쉬워져요. 시원하게 속마음 이야기할 곳이 없으니까... 평소 하지 못했던 말을 꺼내게 되거든요.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그 분위기가 좋아요"

청소년들은 '친목 도모'(약 39%)와 '기분 좋은 분위기'(23%)를 위해 술을 마신다고 했다. 약 13%는 '삶이 힘들어서' 술을 마신다고 답해 눈길을 끌었다.

약 57%는 음주를 지속하고 있다고 답했다. 한 달 기준 음주 횟수에 대해서는 10회 이상이라고 답한 청소년이 약 9%, 5회 이상 10회 미만 약 13%, 5회 미만 약 78%였다.

주량이 소주 1병 이상이라고 답한 청소년이 약 33%에 달한다. 주류 구매 방법에 대해서는 '마트나 편의점에서 신분증 검사 없이 그냥 산다'(약 36%), '나이 많아 보이는 친구나 선배가 사 온다'(약 29%), '성인에게 부탁한다'(약 12%), '집에 있는 술을 마신다'(약 8%), '타인 신분증을 이용해 산다'(약 6%)고 답했다.

가장 안전한 장소는 약 78%가 '집'이라고 했다. '모텔'이 안전하다고 답한 학생도 약 4%에 달했다.

EBS '다큐프라임'
EBS '다큐프라임'

◆ 정신건강의학이 바라본 '청소년 음주'

청소년 음주는 자극적이며 위태롭다. 친구와 처음 술을 마셨다는 D(18) 양은 "술 마시고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서 죽는 줄 알았다"며 음주로 위험에 노출된 순간을 회상했다.

E(17) 군은 "술에 취한 채 트랙터를 몰다가 밭에 떨어졌다"라고 말했다. F(18) 군은 "친구들이 취해서 아파트 옥상 지붕에 올라가 놀았다"고 했다.

G(17) 양은 "취해 제 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내가 동의를 해 첫 경험을 해버렸다"고 말했다. H(18) 양은 "술 먹고 남자애가 몸을 만졌는데 뿌리치고 나왔다"며 성범죄에 노출됐던 당시를 떠올렸다.

하종은 카프성모병원 알코올치료센터장은 "특히 청소년기는 뇌 발달이 진행 중인 중요한 시기"라며 "이 시기 뇌는 술을 적절히 제어하지 못하므로 오히려 술을 더 많이 마실 수 있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또 "청소년 뇌는 술로 인한 충동 조절에 어려움을 겪고 매우 예민하게 반응해 우울증, 자살, 폭력 등의 문제가 많이 발생한다"고 했다.

하 센터장은 "청소년 음주를 방치할 경우 성인기에 알코올 중독으로 진행되기도 한다. 성격 형성, 감정 조절에도 영향을 주게 된다"며 "청소년기에 음주를 시작한 사람들은 나중에 중독이 될 가능성이 4배 이상 높다는 통계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성인이 된 이후에도 술을 마시는 양과 횟수, 음주 패턴을 조절해야 한다"며 "술 이외에 청소년들이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좋은 관계나 취미 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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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김도담 기자 story@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