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 승객 모두에게 비판받은 지하철 시청역 '배려 시설' 상황

2018-10-16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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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차별 논란을 일으킨 '지하철 히어로존'
시범설치 기간이 만료되는 10월 말 철거 예정

서울지하철 1·2호선 시청역 역사에 있는 '지하철 히어로존' / 이하 손기영 기자
서울지하철 1·2호선 시청역 역사에 있는 '지하철 히어로존' / 이하 손기영 기자

서울지하철 1·2호선 시청역 역사에 시범 설치된 배려시설 '지하철 히어로존'을 두고 비판을 쏟아졌다. 남성은 힘 쓰는 '짐꾼', 여성은 보호받아야 하는 '약자'로 묘사했다는 게 비판의 요지다. 성차별 논란을 일으킨 '지하철 히어로존'은 시범 설치 사업이 종료되는 이달 말에 철거된다.

'지하철 히어로존'은 서울시가 지난 2015년부터 추진하고 있는 '디자인 거버넌스' 사업에 참여한 시민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지하철 계단에서 무거운 짐이나 아이를 동반한 승객을 돕자는 게 취지다. 아이디어를 제안한 시민은 '아이 엄마'라고 서울시는 밝혔다.

'지하철 히어로존'은 지난 8월 28일 시청역 12번 출구로 올라가는 계단 쪽에 설치됐다. 짐가방과 유모차를 들어주는 영웅은 '남성',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은 '여성'을 연상케 디자인됐다.

영웅 망또에는 "90초. 평범한 당신이 히어로가 되는 시간"이라는 문구와 이용 방법이 적혀 있다. 도움을 요청하는 승객은 '지하철 히어로존' 앞에 서 있으면 된다. 도움을 주고자 하는 승객은 '지하철 히어로존'으로 가서 짐가방이나 유모차 등을 들고 계단을 올라가면 된다.

'지하철 히어로존'에 적힌 이용 방법
'지하철 히어로존'에 적힌 이용 방법

지하철에서 승객들끼리 서로 돕자는 당초 취지와 달리, '지하철 히어로존'은 "젠더 감수성이 부족한 시설"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일부 여성 승객들 사이에서도 불만이 나왔다.

한 SNS 이용자는 '지하철 히어로존'에 대해 "물론 도와주면 고마운 것이지만 저건 여자들은 스스로 물건 못 옮기는 존재로, 남자들은 짐꾼으로 만들어 버렸다"고 말했다.

또 다른 SNS 이용자는 "계단 올라가다가 무거운 것을 들고 있는 사람을 도와주는 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배려다. 저런 식으로 배려를 강요하는 건 잘못"이라며 "히어로존? 배려는 남성의 전유물이 아니다. 여자도 무거운 것을 같이 들어줄 수 있다"고 했다.

해당 사업을 추진한 서울시 디자인정책과 관계자는 "요즘 젠더 감수성이 요즘 많이 요구되고 있는데, 그런 부분을 더 면밀하게 봐야겠다고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며 "'디자인 거버넌스' 사업 지원단에 젠더 문제와 관련된 전문가를 포함시키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위키트리에 말했다.

이 관계자는 "원래 역이랑 협의를 해서 한시적으로 시범 설치를 하기로 한 것이다. 그래서 설치 기한이 있었다"며 "젠더 이슈가 있어서 철거 일자를 앞당긴 것은 아니"라고 했다.

home 손기영 기자 sky@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