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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합세계정치론 -전략과 원리, 그리고 새로운 질서

 

책머리에

 

이 책은 만청(晩靑) 하영선 선생님의 정년퇴임에 즈음하여 기획되고 편집되었다. 지난 30여 년 동안 만청이 국내 국제정치학계에 던진 학술적 화두는 많았다. 용미론(用美論), 지구적 민족주의, 복합(複合, complexity), 탈근대 지구정치, 세계화, 개념사, 사이버공간, 매력국가, 변환(變換,transformation), 그물망 지식국가, 지식질서, 네트워크 통일, 연미연중(聯美聯中), 공진(共進, co-evolution)등이 떠오른다. 이 책의 말미에 실은 대담에서 소개하고 있듯이, 이들 화두에는 모두 지난 세월 한국이 당면했던 세계정치 현실을 담아내려는 지적 고민의 생생한 흔적들이 남아 있다. 이 중에서 만청의 국제정치학을 가장 포괄적으로 대변하는 개념적 화두는 단연코 복합이다.

복합에 대한 국제정치학적 논의는 1990년대 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복합 개념은 탈냉전 이후 변화하는 세계정치에서 주인공과 무대 그리고 연기가 얽히는 모습을 그려내기 위해서 출현했다. 그런데 그 내용을 곰곰이 따져보면, 복합은 그리 쉬운 말은 아니다. 쉽게 보면 단순(單純, simplicity)의 반대말로 이해할 수 있겠지만, 일상에서 흔히 사용되는 복잡(複雜, complicatedness)과 헷갈릴 수 있다. 복합에서 복(겹칠 복)은 옷(=)을 겹쳐서 입는 것처럼 사물이 겹치는 현상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렇게 겹치는 일이 단순히 뒤섞이는 잡()이 아니라 나름대로의 질서가 있는 합()이 된다는 것이 복합개념의 핵심이다. 이 책은 이렇게 복()이 합()이 되는 과정과 원리, 질서의 내용을 국제정치학의 이론적.경험적 시각에서 탐구하려는 시도다.

21세기 세계정치에서 복합의 내용을 탐구한 이 책은 글쓰기의 방식이라는 점에서도 복합의 산물이다. 필자들 각자의 다양한 글()을 모아서 엮은() 편집본의 형식을 빌렸다. 그렇지만 이 책은 통상적인 경우처럼 은사의 정년퇴임을 기념해 제자들이 서랍 속에 묻어두었던 글들을 꺼내서 늘어놓은() 편집본은 아니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모두 2000년 어느 봄날에 시작했던 공부모임인 정보세계정치연구회(이하 정세연)를 통해서 이루어진 지적 협업의 연속선상에 놓여 있다. 이 책의 필자들은 지난 10여 년 동안 정세연이라는 장을 빌려 다수의 작업을 함께 일궈왔다. 그중 대표적인 것들만 언급하면, [사이버공간의 세계정치](이슈투데이, 2001), [21세기 한반도 백년대계](풀빛, 2004), [네트워크 지식국가](을유문화사, 2006), [지식질서와 동아시아](한울, 2008), [네트워크 세계정치](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0) 등의 책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작업들의 연속선상에서 보면, 이 책 [복합세계정치론: 전략과 원리, 그리고 새로운 질서]는 지난 1년 동안 집중적으로 탐구되었던 또 하나의 지적 협업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지적 협업의 여정은 더 멀게는 20여 년 전에 이미 시작되었다. 1990년대 초엽에 진행된 서울대학교 외교학과 대학원 세미나의 결실로 한반도 군비경쟁, 한국전쟁, 국제정치이론, 한국외교사, 개념사 등을 다룬 글들을 엮어낸 지적 협업의 실험들이 이루어진 바 있다. 그 중에서도 이 책에서 다룬 복합세계정치론의 기원을 보여주는 대표작업으로는 1993년에 출간된 [탈근대지구정치학](나남)을 꼽을 수 있다. 그 후에도 한반도의 세계정치 연구를 주제로 한 지적 협업의 실험들은 계속되었다. 특히 2000년대에 이르러 만청이 이끌었던 공부모임들을 중심으로 다수의 작업들이 선보였다. 앞서 언급한 정세연의 작업들도 그중의 한 묶음이다. 돌아보건대 이들 작업은 모두 단행본은 내지 않고 편집본만 내는 학자라는 평을 감내하면서도 만청이 시도했던 지적 협업의 새로운 실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사실 편집과 공저의 형태로 이루어진 지적 협업은 만청의 국제정치학을 보여주는 핵심 중의 하나다. 이러한 지적 협업의 실천 자체가 복합세계정치의 관념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전통 한국사회에서 편집과 공저는 독특한 유교적 지식정보 문화를 바탕에 깔고 있었다. 예를 들어 정약용과 그의 제자들을 지칭하는 다산학단(茶山學團)의 사례를 보자.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정약용이 유배지인 당진에서 펴낸 책들은 황상, 이청, 이강회, 정학연, 정학유 등의 제자들과 공동으로 작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지만 공동작업에 참여했던 제자들이 각자 집필한 부분에 대한 필명을 남기고 있지는 않다. 스승인 다산이 대표저자로 나섰고, 제자들의 기여는 서문에 감사의 말씀을 전하는 정도로만 기록되었다. 당시의 공동체적 분위기에서 각각의 기여를 엄밀하게 분별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여하튼 실제의 집필은 제자가 했을지라도 저자로는 스승만 남는 것이 당연하게 인식되었고, 스승도 사제 간의 공동작업에 대표저자로 나서는 것을 윗사람의 도리로 인식하는 문화였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다산학단의 사례는 다소 의아할 수도 있다. 이미 제 몫만큼 집필하고 제 몫만큼 이름을 적는, 보상과 권리의 개념으로 공동작업에 대한 기여가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공저와 기여의 관념은 서양의 근대 지식정보 문화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그 단적인 사례 중의 하나가 18세기 프랑스에서 디드로(Denis Dedroit)와 달랑베르(Jean d''Alembert)에 의해서 편찬된 [백과전서Encyclopedie]. [백과전서]는 근대 계몽기의 사회변동의 와중에 20여 년간에 걸쳐서 이루어진 편집작업의 성과다. 디드로가 주로 편집의 역할을 담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당시 내로라하는 다양한 저자들이 자신의 필명을 명시적 또는 암묵적으로 내걸고 참여했다. 비슷한 시기에 이루어졌지만 다산학단의 작업과 [백과전서]는 크게 다른 편집과 공저, 기여의 문화를 바탕으로 했다. 전자의 경우 공동작업에 대한 기여가 정체성을 공유하는 공동체(또는 1차 집단)에 대한 도리로서 이해되었다면, 후자의 경우에는 이익을 기반으로 하는 사회(또는 2차 집단)에 대한 권리로서 이해되었다.

이렇게 개인의 권리 개념에 바탕을 둔 서양의 근대 지식정보 문화는 19세기 후반 이래 우리에게 전파되어 오늘날에는 일종의 표준의 지위를 획득해가고 있다. 이러한 서양 근대의 보편적 잣대에 입각해서 보면, 공동체 문화에 뿌리를 두는 한국 사회의 편집과 공저의 관행은 후진적으로 비칠 수 밖에 없다. 사실 최근까지만 해도 한국 사회에서는 개인의 기여도에 따라서 자신의 몫을 인정하고 필명을 표기하는 전통이 약했다. 기여의 정도보다는 사제관계나 연공서열과 같은 사회적 위상에 의거해서 그 몫을 분배하는 경향마저도 있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까 아직까지도 한국 사회에서는 공저에 대한 편견에 가까운 인식이 없지 않다. 서양 학계의 경우처럼 스승과 제자 간이라도 공저에 대한 기여를 엄밀히 분별하는 기준이 정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전통의 현실근대의 관념이 충돌하고 있는 상황은 한국 사회에서 여전희 공저의 문화가 제대로 정착하지 못하는 원인으로 작용했다.

전통과 근대의 복합이 제대로 자리를 잡기도 전에, 최근 우리는 편집과 공저에 대한 새로운 관념의 등장을 다시 한 번 지켜보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인터넷의 확산이 탈근대로 대변되는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가는 동력이다. 인터넷 시대의 글쓰기에는 퍼오기와 짜깁기, 그리고 베끼기와 다시쓰기가 다반사로 이루어진다. 저자에 의한 독창적인 생산만큼이나 독자들에 의한 사용과 그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재생산에도 가치가 부여된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인터넷을 매개로 한 지적 협업의 과정에서 개별적인 기여의 내용을 일일이 구별해내기란 쉽지 않다. 특히 인터넷이라는 미디어 자체가 저작권(copyright)보다는 정보공유(copyleft)의 관념에 더 친화적인 디지털 환경을 제공한다. 온라인 백과사전인 [위키피디아Wikipedia]는 이러한 디지털 환경을 이용하여 이루어진 새로운 지적 협업의 사례다. [백과전서]라는 근대적 편집 모델에 대비해서 보면, [위키피디아]는 저자인 동시에 독자인 다양한 참여자들()이 자생적으로 질서()를 만들어가는 편집자가 없는 편집의 모델에 비견된다. [위키피디아]가 소위 집합지성(集合知性, collective intelligence)의 실험으로 불리는 이유도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다.

이러한 편집과 공저 모델의 변천이라는 맥락에서 볼 때, 만청이 이끌어 온 지적 협업은 전통과 근대, 그리고 탈근대의 글쓰기 방식을 모두 담아내는 복합 모델의 모양새를 하고 있다. 이 책을 통상적인 편집본과는 달리 보아야 한다고 밝힌 것은, 지난 20여 년 동안 진행된 다른 작업들과 마찬가지로 이 책이 새로운 글쓰기의 실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책의 작업은 만청이 화두로 제시한 복합의 개념을 각 장 필자들의 전공분야에 투영하는 방식으로 착상되었다. 만청이 항상 몸소 참석했던 여러 차례에 걸친 공부모임 세미나를 통해서 자료들을 같이 읽고 토론하면서 논지를 구성해갔으며, 마지막 단계에서는 각 장의 필자들이 그동안의 논의 내용을 취합하여 대표로 집필했다. 이러한 지적 협업은 그야말로 스승이 이끌고 제자들이 자기 몫을 집필하는 와중에 인식공동체를 구성하는 집합지성의 복합모델을 실천하는 과정이었다.

이 책이 나오기까지 많은 분들의 도움을 얻었다. 무엇보다도 또 한 번의 지적 협업에 기꺼이 동참해주신 필자 선생님들께 감사드린다. 직접 집필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지난 1년 동안 필자들이 토론을 벌이고 원고를 다듬어가는 과정에 큰 도움을 주신 정세연의 다른 선생님들께도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이 책이 편집되는 과정에서 동아시아 네트워크 세계정치라는 주제로 진행되고 있는 ‘2011년도 한국사회기반연구사업Social Science Korea, SSK''연구자 네트워킹 사업의 지원을 받았음도 밝혀야 할 것 같다. 이 책의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정세연의 간사를 맡아준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대학원 박사과정의 송태은, 석사과정의 김윤희, 최인호, 김지연, 곽민경의 수고에도 고마움을 표한다. 또한 성심껏 이 책의 출판 작업을 맡아주신 도서출판 한울의 관계자들께도 감사한다. 끝으로 20128월로 정년퇴임을 맞으시는 만청 하영선 선생님께 이 책을 바친다.

 

2012515

감사의 뜻을 모아

김상배

 

 복합세계정치론: 역사적 회고와 전망 -하영선

1: 역사적 회고와 전망

2: 이 책의 구성

 

1새로운 외교전략의 모색

 

1미국의 21세기 복합외교전략 -신성호

1: 머리말

2: 부시 행정부의 변환외교전략

3: 오바마 행정부의 스마트외교전략

4: 맺음말

 

2한미 FTA와 통상의 복합전략 -손열

1: 머리말

2: 미국의 통상전략

3: 한미 FTA의 선택

4: 타결에서 비준으로

5: 맺음말

 

3네트워크 시대 한국의 복합외교전략 -이상현

1: 머리말

2: 21세기 네트워크 국제질서와 복합외교의 필요성

3: 복합외교의 개념적 이해

4: 한국의 복합외교 추진방향과 과제

5: 맺음말

 

2새로운 구성원리의 부상

 

421세기의 복합안보: 개념과 이론에 대한 성찰 -민병원

1: 머리말

2: 전통안보와 탈냉전기의 개념 확대

3: 안보담론의 특수성과 한계

4: 복합안보의 의미와 미래의 안보담론

5: 맺음말

 

5사이버 안보의 복합세계정치 -조현석

1: 머리말

2: 이론적 배경과 복합세계정치의 시각

3: 사이버공간의 구조 변화와 사이버 안보

4: 사이버전쟁의 사례

5: 사이버 안보의 이론적 쟁점

6: 맺음말

 

6시스템에서 네트워크로: 세계금융패러다임의 변화 -이왕휘

1: 머리말

2: 네트워크 분석

3: 세계금융네트워크: 발전과 위기

4: 자본건전성에서 체제적 중요성으로

5: 글로벌시스템 중요은행(G-SIBs)

6: 맺음말

 

3새로운 세계질서의 창발

 

7세계경제 거버넌스의 복합네트워크와 국가형태의 변화 -김치욱

1: 머리말

2: 국가의 공약준수 결정요인

3: 세계경제 거버넌스의 복합네트워크

4: 복합네트워크와 국가행태의 변화

5: 맺음말

 

8복합네트워크화와 동아시아 지역주의 -이승주

1: 머리말

2: 상향 네트워크화: 생산과 무역 네트워크의 형성과 변화

3: 상향 네트워크화와 FTA

4: 하향 네트워크화와 FTA: 전략적 고려

5: 맺음말

 

9원자력발전과 복합세계정치 -배영자

1: 머리말

2: 복합세계정치론

3: 원자력 복합성의 구조

4: 원자력 복합성의 현실: 서구와 동아시아

5: 맺음말

 

10동아시아의 복합네트워크 규범론과 한국 전략의 규범적 기초 -전재성

1: 머리말: 국제정치현실의 복합과 규범의 복합

2: 복합규범론을 위한 기본 개념들

3: 동아시아 지역질서를 이끌어온 국제규범들

4: 근대를 넘어서는 새로운 규범을 둘러싼 논쟁들

5: 맺음말: 한국의 중견국 복합전략과 규범적 반성

 

결론 복합세계정치론의 이해: 전략.원리.질서 -김상배

1: 머리말

2: 네트워크 이론의 원용

3: 새로운 외교전략의 모색

4: 새로운 구성원리의 부상

5: 새로운 세계질서의 창발

6: 맺음말

 

[대담] 복합세계정치론의 탄생과 성장 -하영선.김상배

 

[출처: 복합세계정치론-전략과 원리, 그리고 새로운 질서(하영선.김상배 엮음), 2012.8 도서출 판 한울아카데미]

 

키워드 복합세계정치,네트워크,공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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