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년 전 50만원... 지금은 환산 불가능 가치 지닌 멸종위기 식물

2025-05-10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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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종위기 야생생물 I급... 오직 제주에만 서식하는 한국의 초희귀 식물

탐라란(원 안)은 상록활엽수 줄기에 뿌리를 내리는 희귀 난초다. / 국립생물자원관
탐라란(원 안)은 상록활엽수 줄기에 뿌리를 내리는 희귀 난초다. / 국립생물자원관
제주도의 울창한 숲속 상록활엽수 줄기에 뿌리를 내리고 연한 황록색 꽃을 피우는 초희귀 난초가 있다. 탐라란. 그 희소성과 아름다움으로 난초 애호가들의 마음을 사로잡다가 결국 멸종위기에 처한 난초다. 한국에선 제주에서만 국소적으로 자생하는 탐라란은 일본 남부, 류큐열도, 대만에서도 발견되지만 개체수가 점점 줄어들며 멸종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인간의 욕심과 보전 노력 사이에서 치열한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존재인 탐라란에 대해 알아봤다.
탐라란 / 국립생물자원관
탐라란 / 국립생물자원관

탐라란은 1980년대 중반 제주 남원읍 일대에서 처음 발견됐다. 해발 200~400m의 바위나 상록활엽수 줄기에 착생하며 자라는 이 난초는 풍란과 나도풍란의 중간 형태를 띤 잎과 담황색 꽃을 자랑했다. 꽃받침과 곁꽃잎은 좁은 타원형이고, 입술꽃잎의 밑은 주머니 모양을 이루며 독특한 매력을 뽐냈다. 1997년 난 사진들이 ‘한국의 난초’라는 책에서 이 식물을 ‘탐라란’으로 명명하며 세상에 알렸다.

제주에만 국소적으로 자생하는 희소성과 관상적 가치는 난초 애호가들의 욕심을 부추겼다. 그리고 이내 비극이 발생했다. 남제주군 남원읍에서 자생하던 탐라란이 도채꾼들의 손에 무분별하게 채취됐다. 당시 서울에서 탐라란 한 촉이 30만~50만원에 거래됐다. 불법 채취는 자생지 환경 악화와 맞물려 탐라란의 개체수를 급격히 줄였다. 이로 인해 제주 자생지에서 탐라란의 모습은 점차 사라졌다. 1990년대에 들어서며 거의 멸종 직전의 위기에 놓였다. 1994년과 1995년 제주에서 자생지가 추가로 발견됐지만 이곳 역시 도채꾼들의 손길을 피하지 못했다.

탐라란 / 국립생물자원관
탐라란 / 국립생물자원관

일본과 대만에서도 탐라란의 개체수가 급감하며, 동아시아 전역에서 탐라란은 점점 더 귀한 존재가 됐다. 제주도는 탐라란의 세계적 분포에서 북방 한계선으로 여겨졌기에 이곳에서의 멸종은 단순한 지역적 손실을 넘어 글로벌 생태계에 큰 타격을 줄 가능성이 컸다.

2003년 탐라란은 제주로 돌아오는 작은 희망의 발걸음을 내디뎠다.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이자 한국양치식물연구회 회장이었던 김정근 박사가 복원 사업에 쓰라며 당시 송창길 제주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 식물자원과학과 교수에게 탐라란 20여 촉을 기증했다. 이 탐라란은 서울에서 난원을 운영하던 한 양치식물연구회 회원이 증식한 개체였다.

같은 해 제주대 식물자원과학과는 꽃가루를 이용한 화분배양 방식으로 증식에 착수했고, 2005년 봄부터 자생지 복원 사업을 계획했다. 이 시기는 탐라란 보전을 위한 학계와 지역사회의 첫 번째 협력으로 기록됐다.

2008년 탐라란 복원 사업은 본격적인 궤도에 올랐다. 제주특별자치도 한라산연구소와 국립수목원은 제주 자생지에서 수집한 종자를 바탕으로 1000여 개체를 증식하는 데 성공했다. 이 과정에서 시험관 내 종자 파종과 온실 적응·순화 시험을 통해 대량 증식이 가능해졌다. 2011년 한라산연구소와 국립수목원은 증식한 탐라란 300주를 제주 서귀포시 일대의 상록활엽수림에 복원했다. 이는 세계 최초의 탐라란 복원 사례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복원 1년 뒤 복원지 중 한 곳에서 94개체 중 20%가 불법 채취로 사라졌다. 관리용 표식을 붙인 개체조차 도난당했다. 설상가상 복원된 탐라란의 대부분이 자연 고사로 인해 사라졌다. 한라산연구소 관계자는 “탐라란 증식 개체를 자생지에 복원하면 절멸 위기를 막고 지속 가능한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며 기대를 내비쳤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았다.

탐라란의 법적 보호도 점차 강화됐다. 2012년 환경부는 탐라란을 멸종위기 야생생물 II급으로 지정하며 보호에 나섰다. 하지만 불법 채취는 여전히 성행했다. 인터넷 검색만으로도 제주산 탐라란을 집에서 키운다는 글이나 사진이 발견될 정도였다. 이는 모두 불법 재배였다. 야생생물보호법에 따라 멸종위기 야생생물은 야생 채취와 허가 없는 재배가 금지돼 있다. 2022년 12월 환경부는 탐라란의 심각한 멸종 위기를 인정하며 멸종위기 야생생물 I급으로 상향 지정했다. 제주 선흘곶자왈에만 분포하는 제주고사리삼과 함께 이뤄진 조치였다. 탐라란의 보전 가치가 다시 한번 강조됐다. 한국적색목록에서도 탐라란은 위급종(CR)으로 평가되며, 즉각적인 보호 조치가 필요하다는 경고가 이어졌다.

탐라란 복원 사업은 현재도 진행 중이다. 국립수목원이 자생지에서 수집한 열매를 배양액에 파종하며 대량 증식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은 증식된 개체를 온실에서 적응시킨 뒤 자생지에 재도입하는 방식으로 복원을 추진한다. 하지만 무분별한 남획은 여전히 복원의 걸림돌이다. 탐라란은 제주 산림 계곡부의 다습한 상록활엽수림, 특히 폭포 주변과 같은 특수한 환경에서만 자생한다. 이런 환경은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곳임에도 높은 관상적 가치 때문에 탐라란은 도채꾼들의 표적이 된다.

국립생물자원관은 탐라란에 대해 “제주도의 숲속 바위나 상록활엽수에 착생하며, 7~8월에 연한 황록색 꽃을 피우는 상록성 여러해살이풀”로 소개한다. 금자란과 비슷하지만 잎과 꽃잎에 자주색 반점이 없고 입술꽃잎 끝이 반원형인 점을 특징으로 꼽는다.

20여 년 전 한 촉에 30만~50만원에 거래되던 탐라란은 이제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 존재가 됐다.

탐라란이 품은 이야기는 한 식물종의 생존을 넘어 인간과 자연의 공존이 가능하냐는 거대한 질문을 던지는 듯하다.

home 채석원 기자 jdtimes@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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