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파묘’의 카리스마 배우, 자기 장례식장에 와달라고 부고장 발송
2025-05-14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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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 130명에게 “내 장례식장에 당신을 초대합니다” 부고장

영화 ‘파묘’에서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를 과시한 배우 박정자(83)가 지인들에게 자기 장례식장에 와달라는 부고장을 보냈다.
14일 영화계에 따르면 박정자는 최근 지인 130명에게 ‘박정자의 마지막 커튼콜’이라는 제목의 부고장을 보냈다. 그는 “나의 장례식에 당신을 초대합니다. 장례식은 엄숙해야 한다고 누가 정했을까요. 오늘만큼은 다릅니다. 당신은 우는 대신 웃어야 합니다”라는 글과 함께 장례식 시각을 오는 25일 오후 2시로 명시했다. 장례식장은 강릉시 사천면 신대월리 순포해변이다.
박정자는 서울 세종문화회관 연극 ‘화이트래빗 레드래빗’ 무대에 오르며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건강한 그가 갑작스럽게 부고장을 보낸 이유는 배우 유준상이 연출하는 영화 ‘청명과 곡우 사이’ 촬영 때문이다.
박정자는 연합뉴스에 “유준상 감독과 순포해변을 배경으로 상여를 들고 가는 장면을 구상했다. 연극적인 장례 행렬을 만들기 위해 지인 130명을 초대해 강릉에서 숙박하며 촬영할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영화 속 가상 장례식이지만 배우 손숙·강부자·송승환, 손진책 연출,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정지영 감독, 소리꾼 장사익 등 박정자와 친분이 깊은 예술인들이 실제 조문객으로 참여한다. 박 배우는 “혼자 가기는 쓸쓸했다”며 “우리가 이승에서 저승으로 가는 길을 축제처럼 느끼길 바랐다. 그래서 축제처럼 준비했다”고 설명했다. 부고장에는 “꽃은 필요 없습니다. 꽃 대신 기억을 들고 오세요” “오래된 이야기와 가벼운 농담을, 우리가 함께 웃었던 순간을 안고 오세요” 같은 문구가 담겨 있다. 박정자의 죽음관을 엿볼 수 있다.
‘청명과 곡우 사이’는 한 여배우의 생애를 통해 삶과 죽음의 의미를 탐구하는 작품이다. 유준상은 ‘내가 너에게 배우는 것들’(2016), ‘아직 안 끝났어’(2019), ‘스프링 송’(2021)을 연출한 바 있다. 박 배우는 “유 감독이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구상하며 나를 떠올렸다. 출연 제안을 받고 이 영화를 함께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영화가 “삶과 죽음은 공존하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하며 장례 장면이 이를 잘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살아 있는 사람이 죽음을 낯설어하지 않도록, 이런 장례도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려 했다. 일종의 ‘리허설’로 생각해달라. 삶을 정리하는 누군가는 죽음의 시간을 맞이할 테니까”라고 말했다.
박 배우는 1972년 김기영 감독의 영화 ‘충녀’에서 마담 역할로 데뷔해 중저음 목소리와 카리스마로 주목받았다. 이후 ‘반금련’(1974), ‘육체의 약속’(1975), ‘이어도’(1977) 등 김기영 감독 작품으로 입지를 다졌다. ‘육체의 약속’으로 대종상 여우조연상을 받았고, ‘이어도’의 무당 역할로 압도적인 연기를 선보였다.
1980년대에는 임권택 감독의 ‘만다라’(1981), 정진우 감독의 ‘자녀목’(1985)에 출연했다. 2013년 ‘박수건달’에서 왕무당으로, 2016년 ‘마스터’에서 신선생으로 카리스마 넘치는 특별출연을 했다.
박정자는 디즈니 ‘인어공주’(1989) 더빙에서 우르슬라 목소리로 디즈니 본사의 극찬을 받았고,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2019) 예고편 내레이션으로 화제를 모았다. “그건 엄연한 범죄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같은 대사로 영화의 긴장감을 더했다. 2024년 ‘파묘’에서는 파묘를 의뢰한 집안의 고모로 출연해 장재현 감독으로부터 “한국 영화의 과거와 현재를 잇는 배우”라는 평가를 받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