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음악 열풍'의 그늘... 원가수와 원제작자는 생존권까지 위협받는다
2025-05-14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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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사 커버음악 제작, 법적 허점 악용한 창작 생태계 파괴”

대한민국 음악산업의 어두운 이면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화려한 조명 아래 펼쳐지는 트로트 열풍의 뒤에서 원곡 제작자와 가수들이 아픔을 겪고 있다는 현실이 국회 정책토론회를 통해 공론화됐다.
지난 13일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전국 대중문화예술인 정책토론회'가 열렸다. 최경식 한국음반산업협회 회장은 토론회에서 방송사의 커버음악 제작 관행으로 인한 원제작자의 피해 실태를 공개했다.
더불어민주당 문화예술특별위원회와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기획재정위원회 등이 공동 주최한 토론회 후반부에 열린 질의 시간에 발언자로 나선 최 회장은 최근 급속도로 확산된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음악산업 내 구조적 불공정 문제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최 회장은 "최근 일부 방송국의 트로트 예능 프로그램 제작 과정에서 원제작자와 오리지널 가수들이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며, "방송사들은 법적으로 하자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원제작자의 권리를 무시하고 커버음악을 제작·유통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러한 현상이 단순한 일회성 문제가 아닌 방송 제작 시스템의 구조적 불균형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최 회장은 '미스터트롯' 시리즈를 포함한 다양한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들이 오리지널 곡을 기반으로 한 커버곡을 제작해 방송하는 과정에서 정작 수년간 해당 곡을 투자하고 개발한 제작자들과 가수들이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
음악 제작에는 곡의 작곡, 작사, 편곡뿐만 아니라 가수 발굴, 육성, 마케팅 등 수많은 투자와 노력이 들어간다. 이렇게 완성된 음악 콘텐츠가 단순히 방송사의 경연 프로그램을 통해 무분별하게 커버되고, 그 결과물이 상업적으로 활용될 때 원제작자에게 합당한 보상이 이뤄지지 않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최 회장은 "기존 원로 가수들이 행사와 지역 축제 등을 통해 생계를 유지해 왔으나, 방송사에서 키운 커버 가수들에게만 무게중심이 쏠리면서 오리지널 가수들의 활동 기반은 무너지고 있다"고 밝혔다. 단순한 저작권 문제를 넘어 기존 가수들의 생존권까지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라는 것이다.
최 회장은 현재의 저작권법이 원곡 작사·작곡가의 권리는 부분적으로 보호하고 있지만, 실제 음반을 제작하고 가수를 발굴·육성한 원제작자의 권리는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는 법적 허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방송사들은 이러한 법적 공백을 이용해 원곡 작사·작곡가에게만 저작권료를 지불하고 원제작자와 원가수에게는 어떠한 보상도 하지 않은 채 커버곡을 대량 생산하고 있다"며 이러한 관행이 지속될 경우 궁극적으로는 한국 음악산업의 창작 생태계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현재 한국음반산업협회는 약 7000여 회원사와 50만 곡 이상의 음원을 신탁 관리하고 있다.
최 회장은 국내 음악시장의 현실을 고려할 때 이 같은 문제가 특히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디지털 전환으로 인해 음반 판매 수익이 급감한 상황에서 음원 스트리밍 수익마저도 플랫폼과 유통사에 대부분 흡수돼 제작자와 창작자에게 돌아가는 몫이 매우 적은 실정"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방송사의 커버곡 양산은 제작자들에게 치명적인 타격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최근 몇 년간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들이 인기를 끌면서 이러한 문제가 더욱 심화됐다고 말했다. 트로트 장르는 특성상 오랜 세월 사랑받아온 곡들이 많고, 원로 가수들의 대표곡이 많은데, 이러한 곡들이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젊은 커버 가수들에게 재해석되면서 원곡 가수들의 활동 영역이 급격히 축소되고 있다는 것이다. 단순한 경제적 문제를 넘어 한국 대중음악 역사의 연결고리와 문화적 맥락이 단절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 회장은 방송사의 이러한 행위가 단순한 편성권 남용을 넘어, 공정거래법 및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명확히 밝혔다. 그는 "오늘 이 자리를 시작으로, 관련 제도 개선을 위한 입법 추진에 나설 것"이라며 협회 차원의 지속적인 문제 제기와 대응을 예고했다. 이에 따라 향후 방송사와 음악 제작자 간의 권리관계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할지에 관심이 쏠린다.
이번 토론회엔 임오경·황명선·강유정 민주당 의원과 각 분야 창작자 단체들이 함께 참석했다. 현장에선 최 회장 발언에 공감하는 여러 문화예술계 관계자들의 의견이 쏟아졌으며, 이를 바탕으로 국회 차원의 제도적 개선 방안을 모색하겠다는 의원들의 약속이 이어졌다.
이번 토론회를 계기로 대중문화예술계의 불공정 관행 개선을 위한 실질적인 변화가 이뤄질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