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보다 훨씬 '그림'을 잘 그리는 코끼리... 그런데 정말 슬픈 사연이 있었다

2025-05-23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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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력감 학습시키는 가혹한 방법 거쳐서 코끼리 강제교육

태국 치앙마이의 매땡 코끼리 공원에서 수다가 그림을 그리고 있다. /     '코코보라' 유튜브
태국 치앙마이의 매땡 코끼리 공원에서 수다가 그림을 그리고 있다. / '코코보라' 유튜브
태국 치앙마이의 매땡 코끼리 공원에서 관광객들은 경이로움에 빠진다. 코끼리가 붓을 코로 잡고 캔버스 위에 나무, 언덕, 심지어 자화상을 그려내는 모습을 보면서다. 특히 ‘수다(Suda)’라는 이름의 코끼리의 그림 실력은 독보적이다. 수다는 사람 못잖게, 아니 그림을 잘 못 그리는 어지간한 사람보다 훨씬 정교한 붓놀림으로 풍경화나 자화상을 그린다. 이 화려하고 믿기지 않는 공연이 동물 학대 논란과 어떻게 얽혀 있는지 알아봤다.
태국 치앙마이의 매땡 코끼리 공원에서 수다가 그림을 그리고 있다. /  '코코보라' 유튜브
태국 치앙마이의 매땡 코끼리 공원에서 수다가 그림을 그리고 있다. / '코코보라' 유튜브

코끼리의 그림 그리기 공연은 태국 관광산업의 주요 볼거리 중 하나다. 치앙마이, 푸켓, 파타야 등지에 위치한 코끼리 공원에서는 관광객들이 코끼리가 그린 그림을 1500~2000바트(약 6만~8만원)에 구매할 수 있다. 수다가 그린 자화상은 한때 경쟁 입찰로 수천만 원에 팔린 적도 있다. 이 공연은 코끼리의 놀라운 지능을 강조하며 관광객들을 끌어들인다. 그러나 이 그림들이 과연 코끼리의 창의적 표현인지, 아니면 인간의 강압적 훈련의 결과인지에 대한 논쟁이 끊이지 않는다.

코끼리는 지능이 높은 동물로 알려져 있다. 아시아 코끼리의 뇌는 인간의 4배 크기다. 복잡한 감정과 학습 능력을 갖췄다. 미국 뉴욕 헌터 칼리지의 동물 행동 및 인지학 교수 조슈아 플로트닉은 태국 살라크프라 야생동물 보호구역에서 코끼리를 연구하며 이들의 지능을 입증했다. 그는 다섯 살 코끼리 린치가 거울을 보고 자신을 인식하며 얼굴과 입을 살펴보는 행동을 관찰했다. 이는 코끼리가 자기 인식 능력을 갖춘 몇 안 되는 동물임을 보여준다. 코끼리는 학습된 행동을 통해 복잡한 작업을 수행할 수 있으며, 이는 그림 그리기 같은 공연이 가능하게 한 배경이다.

'코코보라' 유튜브 채널에 소개된 그림 그리는 태국 코끼리.

그러나 코끼리가 그림을 그리게 되는 과정은 숱한 논란을 부르고 있다. 코끼리 공연은 ‘파잔(Phajaan)’이라는 전통적 훈련 의식을 거친다. 파잔은 태국, 라오스, 베트남, 인도 등 코끼리 관광이 성행하는 지역에서 주로 사용된다. 이 과정은 야생에서 잡힌 코끼리나 어미에게서 분리된 두세 살짜리 어린 코끼리를 대상으로 한다. 어린 코끼리는 밧줄이나 쇠사슬로 묶인 채 사나흘, 길게는 열흘 동안 극도의 고통을 받는다. 훈련사들은 ‘불훅(bullhook)’으로 불리는 날카로운 쇠꼬챙이로 코끼리의 귀, 코, 다리 등 민감한 부위를 찌르고 때린다. 이 과정은 코끼리의 야생성을 없애고 인간에게 복종하도록 만들기 위한 것이다. 세계동물보호협회(World Animal Protection)에 따르면, 파잔은 코끼리에게 저항이 소용없다는 무력감을 학습시키는 가혹한 방법이다. 일부 코끼리는 이 과정에서 고통을 견디지 못해 죽기도 한다.

코끼리가 그린 그림들. / '코코보라' 유튜브
코끼리가 그린 그림들. / '코코보라' 유튜브

그림 그리기 훈련은 파잔 이후에 이어진다. 코끼리는 반복적인 훈련을 통해 붓을 코로 잡고 특정 패턴을 그리도록 학습한다. 매땡 코끼리 공원과 같은 곳에서는 훈련사가 관광객들에게 보이지 않도록 코끼리 뒤에 서서 귀를 잡아당기거나 불훅으로 찌르며 붓의 움직임을 조정한다. 코끼리가 훈련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압박이 심해지고, 이는 코끼리에게 스트레스와 불안을 유발한다. 예를 들어, 수다가 그림을 그릴 때 훈련사는 붓에 물감을 묻혀 코에 쥐어준 뒤 귀를 상하좌우로 눌러 붓놀림을 유도한다. 관광객들은 코끼리가 자발적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보지만, 실상은 훈련사의 미세한 조작이 그림의 완성도를 결정한다.

태국 치앙마이의 매땡 코끼리 공원에서 수다가 그림을 그리고 있다. /  '코코보라' 유튜브
태국 치앙마이의 매땡 코끼리 공원에서 수다가 그림을 그리고 있다. / '코코보라' 유튜브

이러한 훈련 과정은 동물 학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세계동물보호협회는 2020년 보고서에서 코끼리 관광산업의 잔혹성을 폭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태국 내 약 2800마리의 코끼리가 관광업에 이용되며, 이들 중 60% 이상이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한다. 코끼리는 사회적 동물이다. 야생에서는 가족 단위로 복잡한 사회적 관계를 형성한다. 그러나 관광업에서는 쇠사슬에 묶이거나 좁은 공간에 갇혀 지내며, 자연스러운 행동을 할 기회가 거의 없다. 동물권 단체 PETA는 코끼리가 인간과 가까이 접촉할 수 있을 정도로 순종적이 되려면 가혹한 훈련을 거쳐야 한다고 비판한다. 특히 그림 그리기, 축구공 차기, 관광객 태우기 같은 활동은 코끼리에게 스트레스를 유발하며, 이는 최근 사고로도 이어졌다.

지난 1월 태국 남부 코야오 코끼리 보호소에서 한 스페인 관광객이 코끼리를 목욕시키다 코끼리의 공격으로 사망했다. 동물 행동 전문가들은 코끼리가 자연환경 밖에서 인간과 밀접히 접촉하며 받은 스트레스가 사고의 원인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 사건은 코끼리 관광의 안전성과 윤리적 문제를 다시 부각했다. 지난 12년간 태국에서 코끼리 공격으로 227명이 사망했다. 지난해에만 39명이 목숨을 잃었다.

코끼리 공원 운영자와 지역 관광업계는 다른 시각을 제시한다. 치앙마이의 한 코끼리 공원 관계자는 코끼리가 야생에서보다 공원에서 더 오래 산다고 주장한다. 야생 코끼리는 기후 위기와 서식지 파괴로 굶주림에 시달리며 평균 50년을 넘기지 못하지만, 공원에서는 하루 200~300kg의 먹이와 수의사 진료를 제공받아 70년 이상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불훅 사용도 필수적이라고 변호한다. 코끼리의 두꺼운 피부는 일반적인 자극에 반응하지 않기 때문에 불훅으로 강하게 자극해야 통제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코로나 팬데믹 기간 관광객 감소로 약 1000마리의 코끼리가 굶어 죽은 사례를 들며 관광 수입이 코끼리 생존에 필수적이라고 말한다.

이들 주장은 일부분 사실이다. 태국 내 약 4000마리의 야생 코끼리와 달리 관광업에 이용되는 코끼리는 안정적인 먹이와 의료 지원을 받는다. 그러나 이는 코끼리가 자연스러운 삶을 포기한 대가다. 야생 코끼리는 넓은 지역을 이동하며 가족과 교감하지만, 공원의 코끼리는 사슬에 묶이고 반복적인 공연에 동원된다. 많은 관광객이 그림 그리는 코끼리를 보며 도덕적 딜레마를 느끼고 있다. 일부 관광객은 마음이 불편하단 이유로 코끼리 쇼 관람을 거부한다. 지능이 높다면 고통도 더 크게 느낄 것이라는 것이 관람을 거부한 이들의 생각이다.

현재 태국 정부는 코끼리 관광업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검토 중이다. 일부 공원들도 코끼리 쇼 대신 자연스러운 행동을 관찰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전환하고 있다. 하지만 경제적 의존도가 높은 지역에서는 여전히 전통적인 코끼리 쇼가 유지되고 있어, 동물복지와 지역경제 사이의 균형점을 찾는 것이 과제로 남아 있다.

그림 그리는 코끼리를 둘러싼 논란을 소개하는 '코코보라' 유튜브 영상.
home 채석원 기자 jdtimes@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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