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티격태격?" 과천 종교빌딩에 가봤다

2015-10-14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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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잘 날이 없을까. 못 말리는 해프닝이 벌어질까. 의외로 평화로울까'&최근

'바람 잘 날이 없을까. 못 말리는 해프닝이 벌어질까. 의외로 평화로울까' 최근 클리앙 등 주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확산된 건물 사진을 보고 든 생각이었다.

클리앙

사진 속 건물에는 기독교장로회·순복음·통일교·여호와의 증인 등 4개 종교단체 간판이 붙어 있었다. 자칫 자신의 종교 당위성을 주장하며 다른 종교단체와 마찰을 빚을 수도 있는 환경이었다.

'종교빌딩'이라는 건물 이름도 관심거리였다. 커뮤니티 이용자 사이에서 건물 콘셉트를 제대로 살렸다는 평가부터 종교시설을 적극 유치하게 위한 건물주 전략이라는 농담 섞인 반응도 나왔다. 

궁금증을 자아낸 건물, 종교빌딩을 지난 13일 찾아가 봤다. 

과천 종교빌딩 / 이하 위키트리

 

경기도 과천시 별양동에 있는 종교빌딩은 수 많은 간판으로 뒤덮여 있었다. 종교단체 뿐만 아니라 독서실·음악학원·부동산·자전거 판매점·유리 가게·미용실 등이 들어선 4층짜리 건물이었다.

건물 2층은 순복음 교회가 사용하다 지난해 말 이사해, 지금은 독서실이다. 3층은 통일교 가정교회, 4층은 기독교장로회 교회와 여호와의 증인 왕국회관이 자리했다. 현재 3개 종교단체가 이곳에 입주해 있다.

'아마 다른 나라였다면 종교 분쟁지가 되지 않았을까' 엉뚱한 생각도 들었다. 물론 국내에서도 한 건물에 서로 다른 종교단체가 모여있는 건 이색적인 풍경이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 봤다. 1층 로비 한편에 다닥다닥 붙은 각 종교단체 간판이 눈길을 끌었다.

 

4층 풍경은 놀라웠다. 기독교장로회 교회와 여호와의 증인 왕국회관 출입구가 불과 3~4 발자국 거리를 두고 위치했다. 몇 계단만 내려가면 3층 통일교 가정교회도 나타났다.    

종교빌딩 4층

 

종교빌딩 3층

 

'위치가 너무 가까워 혹시 매일같이 티격태격하지 않을까' 예상은 빗나갔다.

지난해 8월 이 건물에 입주한 기독교장로회 교회 우진성 목사는 "그냥 이웃 종교인으로 생각하면서 잘 지내고 있다"며 "만나면 서로 목례 정도는 하고 지내는 사이"라고 밝혔다.

이어 "따로 약속한 건 아니지만 건물 안에서는 서로 전도활동을 하지 않는다"며 "주일에도 각자 종교활동을 하고 돌아간다"고 덧붙였다.

건물 1층 자전거 판매점 사장 이일빈 씨도 "(종교단체 사람들끼리) 별일 없이 잘 지낸다"고 말했다.

자신이 지은 건물 이름을 가리키는 유리 가게 사장 허길양 씨

 

이날 '종교빌딩' 작명자도 만났다. 건물 1층 유리 가게 사장 허길양 씨 작품이었다. 그는 "별다른 의미는 없다"며 "뭘 이런 걸 알려고 하냐"라며 웃음을 터뜨렸다. 

이어 "한동안 건물 이름이 없었다. 그냥 교회 건물 정도로 불렸다. 그래서 '원래 이곳이 종교 부지니까 종교빌딩으로 지어보자'라고 생각했다"며 "건물 이름 스티커도 1994년에 내가 붙였다"고 밝혔다.
 
허길양 씨 가게 천장에 붙은 동네 지도. 붉은색 네모가 종교빌딩이 있는 곳이다

 

1988년 이곳에서 장사를 시작한 그는 '종교빌딩 일대기'도 들려줬다.

허 씨와 주변 상인 증언을 종합하면, 종교빌딩 자리는 1980년대 초반 과천 신도시가 개발되면서 종교 부지로 배정됐다. 

당시 주택공사(현 LH)는 신도시에 아파트·학교·병원·종교 부지 등 구획을 나눴다. 해당 부지에는 각각 용도에 맞는 시설이 들어섰다. (현재 종교빌딩 일부는 근린생활시설로 용도 변경됨)

종교부지에는 한 교회가 건물을 세웠다. 종교빌딩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그때는 지금처럼 건물 이름이 따로 있지 않아 주민들은 "OO교회 건물"이라고 불렀다.

종교빌딩 이름이 붙은 1층 출입구 위 발코니

 

1980년대 후반 이 교회가 건물을 다른 종교단체와 상인에게 각각 팔고 이사를 갔다. 그래서 현재는 특정인이 건물을 통째로 소유하지 않은 상황이다. 

교회가 떠난 이후 다양한 종교단체·상점이 입주했다. 그러자 1층 출입구 위 발코니는 간판을 걸기 위한 '각축장'이 됐다. 한때 새로 입주한 교회 이름이 붙기도 했고 가전업체 서비스센터 간판도 걸린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허길양 씨가 '종교빌딩'이라 적힌 스티커를 붙이자 이곳은 입주자 모두를 아우르는 '중립지대'가 됐다. 이후 다른 간판은 붙지 않았다. 그는 "불평불만하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이날 찾아간 종교빌딩은 그저 평화로웠다. 다툼도 실랑이도 해프닝도 없었다. 세월의 흔적은 느껴졌지만 여느 동네에 있는 상가 건물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요즘 일부 종교단체들이 이른바 '이단 논쟁'을 벌이며 서로를 헐뜯고 있다. 이런 가운데 종교인들이 다름을 인정하고 공존하는 종교빌딩 풍경은 이색적인 본보기였다.

home 손기영 기자 mywank@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