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안 미워해" 자동차 명장 박병일 인터뷰
2016-01-29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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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현대자동차 고급차 브랜드 '제네시스'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정의선 현대차 부회

현대자동차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자동차 브랜드다. 현대자동차그룹에 함께 속한 기아자동차까지 합치면 두 업체 자동차 생산대수는 현재 세계 5위다. 미국·일본·유럽의 세계적인 자동차 브랜드와 경쟁하는 현대차. 하지만 요즘 국내에서는 현대차를 곱지 않게 보는 시선도 있다.
국내 일부 네티즌들은 현대차에 대한 불만을 나타내며 '흉기차'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었다. 이런 말을 쓰는 이들은 "현대차가 국내 소비자를 무시한다"며 볼멘소리를 내고 있다. 글로벌 시장 개척에 매진해 상대적으로 국내 소비자에게 소홀하다는 게 주장의 요지다.
현대차도 최근 국내 소비자와 소통의 폭을 넓히고 있다. 회사 경영진은 지난해 12월 현대차에 비판적인 '보배드림' 회원들과 대화를 나누는 '마음드림' 행사를 가졌다. 같은 해 8월 인천 송도에서 국내 판매 쏘나타와 미국 판매 쏘나타를 충돌시키는 테스트도 했다. 해외 판매 차량이 더 안전하다는 불신을 해소하기 위해서였다.

이런 가운데 '자동차 정비 명장' 박병일(59) 씨 고소 사건은 현대차에 대한 또다른 논쟁을 지폈다. 이를 두고 '쓴소리'를 막으려는 차원이라는 의견과 기업 입장에서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의견이 엇갈렸다. 박 씨는 그동안 현대차가 만든 일부 차량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해왔다.
현대차는 자사 차량인 투싼ix 에어백 미작동·아반떼MD 누수·레이디스코드 탑승 스타렉스 사고·송파구 버스 급발진 의혹 등 그가 언론 인터뷰에서 한 주장을 문제 삼아 2014년 12월 고소를 했다. 업무방해와 허위사실 유포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였다. 하지만 검찰은 지난해 12월 박 씨에게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현대차와 소송전을 끝낸 박병일 씨를 지난 25일 오후 인천 남동구 소재 그의 정비소에서 만났다.
박 씨는 국가가 공인한 '자동차 정비 명장' 1호다. 그는 가정형편 때문에 중학교 1학년 때 학교를 그만 두고 버스회사에서 자동차 정비를 시작했다. 올해로 자동차와 함께 한 세월이 45년이 됐다. 그의 말은 자동차에서 시작해 자동차로 끝났다. 정비소 사무실에도 자동차 관련 책이 빼곡히 있었다. 수백 권은 돼 보였다. 그는 자동차 번호판도 수집하고 있었다. 자동차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사람이었다.
'현대차'라는 말을 꺼내자 박병일 씨는 주저 없이 "나는 현대차를 미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현대차가 망하면 나도 망한다"며 "지금 정비공장을 운영하고 있는데 현대차가 없어지면 우리 일거리도 없어지지 않냐"고 반문했다.
"현대차가 더 사랑받기 위해 필요한 게 뭐냐?"고 물었다. 그는 '쓴소리'로 답했다.

박병일 씨는 "일단 솔직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씨는 "세계 최고의 제품도 트러블이 생긴다. 잘못된 게 있으면 인정해야 한다. 특히 안전과 연관된 부분은 바로 나서야 한다. 소비자가 문제를 얘기하면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며 "잘못이 있는데 감추면 그건 현대차를 망하게 하는 행동이다. 소비자와의 진정한 소통은 불만을 근본적으로 해결해주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우리 세대와 달리, 요즘 젊은 사람들은 국산 제품이라고 무조건 사주지 않는다"며 "이들은 실용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 브랜드에 대한 신뢰도 중요시한다. 제품이 좋다면 얼마든지 수입 제품을 구입한다"고 말했다.
박 씨는 현대차가 단순히 '자동차를 많이 만드는 회사'가 아니라, 기술력을 바탕으로 '품질 좋고 안전한 차'를 만드는 회사라는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병일 씨는 현대차 고소 사건에 대한 심경도 말했다.
박 씨는 "현대차가 고소했을 때 주변 사람들이 많이 염려했다"며 "그러나 나는 부담스럽지 않았다"고 했다. 이어 "그동안 언론 인터뷰는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실험한 다음에 그 결과를 말했던 거라, 충분히 해명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앞으로도 현대차나 어떤 자동차 메이커라도 차량에 문제가 있으면 기술자로서 계속 얘기를 하겠다"며 "항상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매일생한불매향'(梅一生寒不賣香)이라는 말처럼 아무리 힘들어도 내 향기를 팔지 않겠다"고 했다.
박병일 씨 카카오톡 상태메시지에도 '매일생한불매향'이라는 말이 적혀 있었다. '매화는 일생을 춥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는 뜻이다.

박병일 씨는 지난해 12월 현대차 소송 사건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은 직후, 자동차 커뮤니티 '보배드림'에 "안녕하세요, 자동차명장 박병일입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남겼다. 그는 "정말 고맙고 감사하다. 앞으로 더 좋은 기술자가 돼 여러분이 응원해 준 마음 잊지 않겠다"고 적었다. 이 글은 조회수 12만여 건(29일 기준)을 기록하며 보배드림 회원들 사이에서 관심을 끌었다.
이어 "결국 현대차에 불만을 가진 분들인데 나중에 수입차 시장으로 갈 수도 있다. 그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주변 사람들한테 '현대차를 사지 말라'고 할 수도 있다"며 "그 분들이 어떤 불만이 있는지 경청해야 한다. 보배드림 회원들이 올리는 글은 '현대차에 대한 신문고'"라고 했다.

박병일 씨와 1시간 30분 넘게 대화를 나눴다. 그의 목소리는 어느새 쉬어 있었다. 함께 한 내 목소리도 마찬가지였다. 대부분 자동차와 현대차 이야기였다. 다른 이야깃거리는 끼어들 틈이 없었다.
자동차 밖에 모를 것 같았던 박병일 씨. 그에게 의외의 면도 있었다. 박 씨는 그림 그리는 것도 좋아한다고 했다. 어린시절 '화가'를 꿈꿨지만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그 꿈을 포기했다. 생계를 위해 어깨너머로 자동차 정비를 배운 10대 소년은 이제 대한민국에서 차를 가장 잘 고치는 '정비 명장'이 돼 있다.
박 씨는 대화를 나누면서 "명장"이라는 말을 거듭 강조했다. 사람들에게 '명장은 이런 사람이다'라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 환갑을 앞둔 나이에도 자동차 정비를 계속하고 있다고 했다. 자동차를 고치는 기술자도 인정받는 '능력중심 사회'를 그는 꿈꾸고 있었다. 박병일 씨 열정은 여느 젊은이 못지 않았다.
"늘 열심히 하는 모습을 후배 기술자에게 보여주고 싶다. 나는 우리나라 자동차 기술자를 대표하는 일종의 '샘플'인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