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거장' 안도 다다오가 이 시대 청년들에게 (일본 현지 인터뷰)

2017-02-24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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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트리와 인터뷰 하는 안도 다다오 / 이하 위키트리 독학으로 '건축 거장' 반열에 오른

위키트리와 인터뷰 하는 안도 다다오 / 이하 위키트리

독학으로 '건축 거장' 반열에 오른 두 사람이 있다.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安藤 忠雄·76)와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1887~1965)다.

이들은 건축에 대한 정규 교육도, 집안의 도움도 없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안도 다다오는 오직 자신의 힘으로 세계적인 건축가가 됐다. "건축은 치열함의 연속"이라고 말한 안도 다다오는 '화려한 성공 스토리'는 없다고 단언했다.

"처음부터 뜻대로 되지 않았고 뭔가를 시작해도 대개 실패로 끝났다"고 회상한 안도 다다오. 그는 어떻게 '건축 거장'이 됐을까. 위키트리는 일본 오사카에 위치한 안도 다다오 작업실을 찾았다. '르 코르뷔지에 전' 공동 주관사 코바나컨텐츠가 동행했다.

안도 다다오 작업실 외관

안도 다다오는 자신의 삶에 대해 "필사적으로 달렸다"고 말했다.

그는 "세상에는 엘리트도 있지만 엘리트가 아닌 사람도 많다"며 "일본은 학력사회다. 한국도 그렇지않나"라고 했다. 안도 다다오는 "기회는 모두에게 있다. 하지만 잡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며 "기회를 잡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 자신의 일에 대해서 계속 생각해야 한다. 계속 생각하고 있다면 반드시 자신에게 오는 기회를 잡을 수 있다. 잡았다면 필사적으로 달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 치열함 속에서 '재미'를 찾다

그의 삶은 말 그대로 치열했다. 안도 다다오는 기회를 잡기 위해서, 잡은 뒤에는 놓치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달렸다. 이런 치열함은 그에게 '재미'를 가져다줬다.

"저는 대학에도 가지 못했습니다. 전문 교육도 받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러면 어떻게 할까'를 고민하다 책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건축을 보러 갔습니다. 일본의 건축을 많이 보러 다녔습니다. 그 과정에서 건축이 점점 제 몸 안으로 스며들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반드시 재미있는 것을 손에 넣을 수 있습니다. 지금도 찾고 있습니다. 저는 재미있는 것들을 찾고 있습니다. 어디 재미있는 것이 없나 하고 말이죠."

안도 다다오 작업실 곳곳에서도 '재미'를 엿볼 수 있는 인테리어가 눈에 띄었다. 안도 다다오는 인터뷰 중 바로 옆 창문을 바라봤다. 그는 "여기 옆으로 창문이 나 있지않나?"라며 "전철이 지나가면 재미있지 않나? 슝하고. 건축은 움직이지 않으니까 움직이는 것을 찾지 않으면 안 된다. 전철은 계속 움직인다"고 말했다.

작업실 내부에 작은 창. 기차가 지나가고 있다

건물 한 곳이 공중으로 튀어나온 구조도 재미있다. 얇은 파이프 하나가 튀어나온 건물을 지탱하고 있었다. 안도 다다오는 "모두가 이곳에 오면 '떨어지지 않느냐'고 말한다"며 "뭐 떨어지면 떨어지는 거고(웃음) 지금까지 안 떨어졌으니까. 어쨌든 조심해라 이곳은"이라고 농담을 건넸다.

안도 다다오는 다른 사람의 삶 속에서도 '재미'를 찾아보기를 권했다.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했다. 그는 "젊었을 때는 전기(傳記)만 읽었다. 프랑크 로이드 라이트, 르 코르뷔지에, 단게 겐조의 전기를 읽었다"고 말했다.

안도 다다오는 "르 코르뷔지에 하루도 재미를 추구했다"며 "르 코르뷔지에는 아침에는 집에서 생각하고, 점심에 잠깐 사무실에 가고, 돌아와서 책을 읽고, 저녁이 되면 누군가의 파티를 보러 갔다. '어디 재미있는 일이 없을까'하고 말이다"라고 설명했다.

◆ '정신적 스승' 르 코르뷔지에

르 코르뷔지에는 안도 다다오의 '정신적 스승'이라고 할 수 있다. 독학으로 성공했다는 연결고리가 두 사람을 묶는다.

"저는 1965년에 처음 유럽에 다녀온 뒤에 르 코르뷔지에의 건물을 전부 보고 싶은 마음에 유럽의 건물과 인도의 건물을 계속 찾아다녔습니다. 당장 일이 잘 풀리지 않아도 반드시 다음에는 새로운 세계를 개척하겠다는 그의 의욕을 건축물 하나하나에서 볼 수 있습니다. 르 코르뷔지에는 르네상스의 미켈란젤로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독학으로 힘들어 하던 안도 다다오는 르 코르뷔지에에게서 돌파구를 찾았다. 건축 관련 잡다한 일을 닥치는대로 경험하던 안도 다다오는 20살 헌 책방에서 르 코르뷔지에의 작품집을 마주한다. 별 생각없이 집어 들었지만 그는 곧 '이건 내거다'라는 직감을 갖는다. 작품집에 실린 도면과 드로잉을 수없이 베꼈다.

르 코르뷔지에라는 존재가 어떤 의미인지 물었다. 안도 다다오는 "르 코르뷔지에는 평생 동안 계속해서 많은 제안을 했지만 실현되지 못한 것들이 많다"며 "대규모 파리 도시계획을 비롯해 전 세계에서 많은 계획을 했지만 모두 실현되지는 못했다. 하지만 실패한 일, 잘 풀리지 않는 일들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계속 도전하는 르 코르뷔지에의 모습이 좋다"고 말했다.

그는 "1965년 24살 때, 처음으로 유럽에 갔다"며 "그때 르 코르뷔지에의 롱샹성당이나 마르세유의 유니테 다비타시옹을 보았다. 롱샹성당은 이전까지의 르 코르뷔지에 건축 스타일과 전혀 다르다. 예를 들어 빌라 사보아는 공중에 떠 있는 듯한, 대단히 가벼운 근대 건축의 견본과도 같은 건축물이다. 그에 비해 롱샹성당은 대지에 박혀있는 듯한 다이나믹한 조각 같은 건축물이다. 전혀 다른 세계를 창조했다"고 설명했다.

안도 다다오는 아쉽게도 르 코르뷔지에를 만나지 못했다. 그가 프랑스 파리에 도착하기 몇 주 전인 1965년 8월 27일 르 코르뷔지에는 타계했다. 안도 다다오는 "르 코르뷔지에의 사무실을 밖에서 봤다. 그의 정신과 영혼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 내일은 반드시 나를 위해 빛나고 있다

"한국인은 일본인보다 의지가 강하고 열정적입니다. 때문에 좋은 인재가 나올 것입니다. 너무 공부만 많이 하면 안 됩니다. 공부를 너무 많이 해요. 일본인도 한국인도요. 엘리트는 공부가 너무 과합니다. 머리를 유연하게 만드는 편이 좋아요."

안도 다다오에게 창의력의 원천을 물었다. "'만들고 싶다는 마음'으로 만들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목표가 있고 마음이 있다면 뭐든 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치열하게 살며, 그 속에서 재미를 찾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 안도 다다오. "내일은 반드시 나를 위해 빛나고 있다고 생각하면 돼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안도 다다오가 전한 긍정의 메시지다.

"르 코르뷔지에 전시를 찾은 한국 관람객에게 인사 한 마디" / 유튜브, WIKITREE - 위키트리
*사진·영상 = 김수진 기자, 영상 디자인 = 김이랑 디자이너
home 박민정 기자 story@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