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취제가 '파티 약물'로 오용되는데, 책임 떠넘기는 환경부·식약처

2017-03-02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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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심 술집 등에서 마취제 일종인 아산화질소가 '파티 약물'로 오용되고 있다. 하지만

서울 도심 술집 등에서 마취제 일종인 아산화질소가 '파티 약물'로 오용되고 있다. 하지만 관계 부처는 관리 책임을 서로 떠넘기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의료용 마취제로 주로 쓰이는 아산화질소는 흡입하면 기분을 몽롱하게 만들어 통증을 잊게 한다. 그래서 의사의 엄격한 관리하에 이용돼야 하는 화학 물질이다.

최근 강남 일대 고급 술집 등에서는 아산화질소를 풍선에 주입해 '기분 좋아지는 풍선'이라고 홍보하며 판매하고 있다. 해당 술집은 아산화질소 위험성을 알리지 않고 "산소가 적게 들어가 있어 동남아 등지에서 경험할 수 있는 '기분 좋아지는 풍선'보다 기분이 더 좋다"며 "처음 한 개는 서비스로 제공하고 있다"고 '위험한'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SNS에는 이 풍선을 흡입한 뒤 '후기'를 적은 게시글이 300여 개나 된다. "다음날 머리가 아프다", "마시고 저 세상 가는 줄 알았다" 등 위태로운 내용도 있다.

SNS에 게시된 휴대용 아산화질소

아산화질소는 무분별하게 흡입하면 사망에까지 이를 수 있는 화학 물질이다. 가톨릭관동대 마취통증의학과 김영욱 교수는 "아산화질소를 만성적으로 남용하면 비타민 결핍, 신경계질환, 심혈관질환 등을 불러올 수 있고 심하면 사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대 치과병원 소아치과 신터전 교수는 "가임기 여성의 경우 유산, 기형아 출산 등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며 "아산화질소 중독 및 남용으로 사망하는 사례가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아산화질소가 관리 사각지대에 놓여 있어 오·남용을 규제할 수 없다는 데 있다. 화학물질을 관리하는 환경부는 "환경부가 주로 다루는 '화학물질관리법'에는 아산화질소에 관련된 사항이 없다"며 "이는 의료, 식품용 압축 가스를 관리하는 식약처 담당 업무인 거 같다"는 입장을 내놨다.

하지만 기존 제도에서 관리되지 않았던 화학물질 제품이 사회적 필요에 의해 새로 유해성 물질로 지정된 선례가 있다. 화학물질관리법 시행령 제11조에 따르면 부탄가스의 경우 1995년 환각 물질로 새로 지정돼 환경부에서 관리하고 있다. 제품 출시 당시에는 남용의 위험을 인지 못했다가, 부탄가스를 환각제로 오용하는 경우가 많아지자 정부가 제도 안으로 끌어온 것이다.

유해물질관리법에 명시된 부탄가스 관련 내용

환경부 측은 "환경부가 유해 물질 등을 새로 지정하는 권한이 있는 것은 맞다"면서도 "흡입을 목적으로 하는 의약품을 다루는 약사법 조항이 따로 있기 때문에 아산화질소를 환경부가 유해 물질로 지정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공식적 입장을 내놓긴 어렵다"고 전했다.

의료용, 식품용 아산화질소를 관리하는 식약처는 "아산화질소가 남용되고 있다면 이는 약사법이나 식품위생법이 아닌 마약류 관리 법등 다른 법에서 관리해야 할 것 같다"는 입장이다.

식약처에 따르면 "아산화질소를 일반인이 흡입하는 사례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원래 사용 목적에서 벗어나 남용, 오용되고 사례 모두를 식약처가 추적해 관리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식약처 측은 "식약처에서 규정하는 의료용 아산화질소, 식품위생법에서 다루는 식품용 아산화질소 모두 규정에 맞게 관리되고 있다"는 입장을 내놨다.

현재 식품위생법에서 관리하는 식품용 아산화질소는 일반인들도 아무런 제재 없이 구입이 가능하다. 사용자의 의지에 따라 얼마든지 오용이 가능한 셈이다. 현재 문제가 된 파티용 아산화질소 역시 이 식품용으로 생산된 아산화질소일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됐다.

아산화질소 구입 방법을 묻는 네티즌

또 의료용으로 생산된 아산화질소도 비의료인에게 판매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취재 결과 확인됐다.

한 의료 기자재 판매점에 비의료인임을 밝히고 아산화질소 판매 가능 여부를 묻자 "몇 킬로그램이 필요하냐?"는 답변이 돌아왔다.

부산에서 의료 기자재를 판매하는 A 씨는 "아산화질소를 마구 마시면 죽는다는 걸 아는데 일반인한테 팔겠느냐?"라면서도 "법적으로 판매하면 안 되는 줄은 몰랐으며 이와 관련한 정부 공문이나 교육을 받은 적은 없다. 그냥 양심상 팔지 않은 것"이라고 덧붙였다.

해당 판매점 외에도 여러 의료용 가스 취급점이 "잘 모르겠다" 혹은 "그런 내용에 관한 교육 또는 공문을 받은 적 없다"고 답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간사를 맡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한정애(52·서울 강서구병) 의원은 "서로 책임을 미룰 게 아니라 관계 부처가 모여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고 힘을 합쳐 행정 사각지대가 없도록 해야 한다"며 "법과 제도를 아무리 잘 만들어도 현실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마다 '이건 우리 업무가 아니다'라고 할게 아니라 원점부터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개선해 나갈지 관계 부처가 모여 협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 의원은 "과거 옥시 가습기 살균제 문제가 비극적인 형태로 터진 것도 결국 관계 부처 간 책임 미루기가 원인 중 하나였다"면서 "누군가 아산화질소를 흡입하다가 사망하는 사건이 생겨야 그때서야 우왕좌왕할 것이냐"라고 말했다.

의료계는 의료인 관리 하에 사용되는 아산화질소는 안심해도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아산화질소는 일선 소아 치과 등에서 마취용으로 사용되고 있다.

신터전 교수는 "현재 아산화질소는 소아 치과 등에서 철저하게 관리, 이용되고 있다"면서 "숙련된 의료인의 관리하에 치료목적으로 아산화질소를 흡입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아산화질소의 의료적 사용 자체에 대한 우려를 지닐 필요가 없음을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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