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면서 공부했다” 사시 도전 13년 만에 수석 합격한 이혜경 씨 인터뷰

2017-11-09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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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13년 동안 사법고시를 준비했고 끝내 수석합격을 차지한 여성이 있다.

제59회 사법시험 수석합격자 이혜경 씨
제59회 사법시험 수석합격자 이혜경 씨

혜경 씨는 '즐긴다'라는 말뜻을 잘 모른다고 했다. 2004년 단국대 법대 졸업 후 13년 동안 오로지 사법고시 공부만 해온 탓이다. 이러다가 사회생활을 잘 할 수 있을지 불안했다. 걱정에 잠 못 이룰 때마다 왜 법조인이 되고 싶었는지 되새겼다.

"대학교 3학년 때 여자 변호사님 한 분이 강의하러 오셨습니다. 그때 '여자' 변호사님을 실제로 처음 뵀어요. 너무 멋있어 보였습니다. 그분 같은 법조인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녀는 시험을 보고, 떨어지고, 울고, 울면서 공부하고, 시험을 보고, 또 떨어졌다. 1차 시험은 4번 합격했지만 2차에서 계속 미끄러졌다. 어느새 한국나이로 38살이 됐다.

제59회 사법시험 최종 합격자 55명 명단이 지난 7일 발표됐다. 마지막 사법시험이었다. 이혜경 씨는 수석으로 합격했다. 수석합격 전화를 받았을 땐 도무지 믿겨지지가 않았다. 부모님은 눈물을 쏟았다. 연거푸 "고맙다"고만 했다.

-13년 동안 어떻게 버틸 수 있었는지.

매번 아슬아슬하게 떨어졌기 때문에 미련이 남았습니다. 만약 1차 시험에서 계속 불합격했다면 중간에 포기했을 거예요. 29살에 첫 합격을 하고 31살, 34살, 37살에 1차 합격을 했습니다. 2차에서 떨어지고 다시 1차 시험을 봤는데 바로 붙지 않더라고요.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습니다.

-그만두고 싶은 생각은 없었는지.

정말 힘들 땐 로스쿨을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6번째 시험에서 떨어졌을 때였습니다. 하지만 로스쿨도 어렵긴 마찬가지였죠. 이왕한 공부 조금만 더 해보자고 스스로를 달랬습니다. 마음이 어려울 때면 '생활의 달인' 같은 프로그램을 유튜브로 찾아봤습니다. 그런 프로그램을 보면서 힐링을 했어요. 거기에 나오는 달인을 보면서 고시생이 반성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생각도 했습니다. 공부가 가장 쉬웠다는 말이 절로 나왔습니다.

-마지막 사법시험이었는데.

마지막이란 생각을 할수록 압박이 심해졌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마음이 싹 비워지는 순간이 찾아왔어요. 어차피 결과가 말해줄 거라고 마음을 굳혔습니다. 이번에 떨어지면 뭐 할 거냐는 말도 많이 들었는데 일단 눈앞에 있는 시험에만 집중했습니다.

-수석합격이 아니길 바라기도 했다고.

합격 후 많은 분에게 연락을 받았습니다. 과한 관심을 받게 돼 부담이 앞섰습니다. 제 예상보다 훨씬 좋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저보다 열심히 하신 분, 뛰어난 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앞으로 계획이나 포부는.

전 지금 끝이 아닌 시작단계에 있습니다. 이제 겨우 법조인이 되기 위한 '자격증' 하나 얻은 셈이에요. 자만하지 않고 열심히 공부해서 연수원 생활을 잘 마치고 싶습니다. 남을 도우며 봉사하며 살려고 합니다.

혜경 씨는 사법고시 공부를 하며 많은 이에게 도움을 받았다고 했다. 함께 공부했던 친구, 선배, 후배들 얘기엔 울먹이기도 했다.

그는 "1차 합격자 186명 대부분을 학원에서 본다. 그 많은 사람들 중 딱 55명만 합격했다. 마음이 아팠다"며 "내가 합격하면 누군가는 한 명이 떨어진다는 생각도 들었다. 결과를 떠나 다들 정말 열심히 했다. 모두 성실했다"고 말했다.

혜경 씨는 "합격하지 못한 사람들도 이다음에 꼭 법조인으로 함께 만나고 싶다"고 덧붙였다.

수능을 일주일 앞둔 고3 수험생 또는 공시생에게도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저는 정말 많이 부족한 사람입니다. 제가 그분들보다 나은 점이 있다면 실패를 많이 했다는 사실입니다. 살다 보면 누구나 넘어질 때가 있어요. 중요한 건 넘어졌다는 사실보다 누가 빨리 일어나느냐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책 '그래도 계속 가라'에 '희망을 향해 내디딘 연약한 한 걸음이 맹렬한 폭풍보다 훨씬 더 강하다'라는 문구가 적혀있어요. 너무 어렵고 힘들 때, 딱 한 걸음만 더 내디딜 수 있었으면 합니다"

이혜경 씨가 공부했던 흔적들.
이혜경 씨가 공부했던 흔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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