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처음” '남에서 여' 성전환 20대 여대생 된다

2020-01-30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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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뉴시스 보도
지난해 10월 성별 정정 마친 A씨 숙명여대 입학

숙명여자대학교 2017학년도 학위수여식 / 이하 연합뉴스
숙명여자대학교 2017학년도 학위수여식 / 이하 연합뉴스

30일 뉴시스에 따르면 남자에서 여자로 성전환 수술받은 트렌스젠더 여성이 올해 숙명여대에 최종 합격해 입학을 앞둔 것으로 확인됐다. 트랜스젠더 여성이 여대에 합격한 사실이 공개된 것은 국내에서는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해 8월 태국에서 성전환 수술을 받은 트렌스젠더 여성 A씨(22)는 숙명여대 법과대학에 2020학년도 입학 전형으로 최종 합격했다. A씨는 지난해 10월 법원에서 성별정정 신청이 허가돼 주민등록번호 앞 숫자가 '1'에서 '2'로 바뀌었다. A씨는 "성전환 수술을 받고 주민등록번호를 바꾼 트랜스젠더도 당당히 여대에 지원하고 합격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라고 얘기했다.

외국에서는 트랜스젠더 학생이 여자대학교에 입학한 사례가 이미 나왔다.

미국 매체 Vox는 2017년 9월 22일 보도를 통해 미국 여자대학교의 트랜스젠더 학생 관련 입학 규정 변천사를 소개했다. Vox는 트랜스젠더 여성의 여자대학교 입학 허용 문제는 여자대학교가 애초에 왜 생겨났는지를 고찰해 보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밝혔다. 그동안 사회에서 억압받는 여성들을 위한 고등교육 기관으로서 역할을 해온 것에 따라 그 수혜자를 트랜스젠더에게로 확장해야 할지가 문제로 남는다고 보았다.

미국 여자대학교 중 처음으로 트랜스젠더 여성에게 입학을 허용한 학교는 밀스대학(Mills College)이다. 2014년부터 트랜스젠더 여성 뿐 아니라 여성의 몸을 갖고 태어났지만 자신을 남성이나 '여성과 남성' 둘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논바이너리' 성으로 정체화하는 사람 모두가 이 대학에 지원할 수 있다. 밀스대학을 이어 미국 전역 여자 대학교들이 트랜스젠더 학생 입학을 허용하기 시작했고 2017년 기준 총 40개의 미국 여자대학교 중 26개의 학교가 트랜스젠더 학생 입학을 허용한다.

한편 여대를 졸업한 뒤 여자에서 남자로 성전환해 '여대를 졸업한 남자'가 된 사례도 있다.

2014년 11월 17일 이화여대 대학신문 '이대학보'는 '이화의 아들'이라 불리는 B씨를 만났다. B씨는 이대를 졸업하고 9년 뒤인 2013년에 성전환 수술을 했다. B씨는 청소년 시절 그에게 다가오는 여성의 이차 성징이 고난으로 다가왔다고 밝혔다. B씨는 대학 입학 후 한동안은 자신을 레즈비언으로 정체화하다가 학교에서 들은 여성학 수업에서 트랜스젠더라는 개념을 접한 후 '내가 그렇구나'라고 깨달았다.

이대 나온 남자가 건네는 당당한 인사 "안녕하세요, 이화의 아들입니다" 본교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트랜스젠더 벗(트벗)이라는 이름으로 소통하는 이화인이 있다. 본교를 졸업한 지 9년 뒤인 2013년, 맞지 않는 여자의 몸을 버리고 남자로 성전환 수술을 한 ㄱ씨가 그 주인공. 11월20일 제16회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을 맞아 일명 ‘이화의 아들’이라고 불리는 그를 서울 강동구 천호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신변 보호를 위해 기사에서는 그를 ‘트랜스젠더 벗(트벗)’이라고 칭한다. 짧게 자른 머리에 짙은 눈썹, 듬직한 체격. 트벗의 첫인상은 영락없는 30대 남자였다. 그는 자신을 이부심(이화여대생이라는 자부심) 높은 남자라고 소개하며 호탕한 웃음으로 기자를 맞았다. 트벗은 어린 시절부터 보통 여학생들과 달리 남성적 기질이 돋보였다. 그 차이는 사춘기 시절 더욱 도드라졌다. 그에게 다가 오는 2차 성징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겪은 초경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어요. 초경함으로서 여성임을 스스로 다시금 인식해야하는 것부터 매달 피 묻은 생리대를 마주하는 것은 악몽 같았어요. 남자 화장실에서 생리대를 가는 기분은 정말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죠.” 트벗은 이화에 입학후 초창기까지 자신을 레즈비언으로 정의했다. 그러던 그가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게 된 것은 3학년 때 들은 본교 여성학 수업에서였다. “어릴 적에는 인터넷도 없었으니까 레즈비언이라고만 생각했어요. 여자를 좋아하니까요. 하지만 레즈비언과는 뭔가 다르다고 느끼던 중 여성학 수업에서 트랜스젠더라는 개념을 접한 후 ‘내가 그렇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남성의 정체성을 가진 트벗이 여성의 몸으로 살기란 고통스런 일이었다. 화장실 등 일상적인 부분부터 자신이 좋아하는 운동을 하는 부분까지. 말 그대로 트벗은 겉과 속이 달랐기 때문이다. “운동을 꾸준히 하면서 여자치고 재능이 뛰어나다는 말을 들었지만 제게는 칭찬으로 들리지 않았어요. 여자 몸이니 점프력 등 운동능력이 다른 남자보다 떨어졌으니까요.” 평범한. 그가 일반 사람들에게 가장 부러웠던 말이었다. 트벗에게 평범함은 가장 이루기 힘든 단어였기 때문이다. “취업 면접 때 면접관이 서류를 보면서 ‘여자예요?’ 란 질문을 몇 차례나 묻는 등 ‘2’라는 숫자는 저를 너무 힘들게 했어요. 주민등록번호 뒷자리 첫 숫자 ‘2’를 ‘1’로 바꾸려면 성전환 수술을 해야만 해요. 많은 사람들이 제가 남자가 되기를 ‘택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저는 처음부터 남자였어요. 남자이기 때문에 남자화장실을 가는 ‘평범함’을 누리는 사람들이 부러웠죠. 따라서 저에겐 이 수술이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어요.” 자신을 여자로 태어나게 한 신의 멱살을 잡고 싶었다고 한 트벗. 그만큼 마음이 강인하고 절실했던 그도 수술 전 부모님에게 수술 사실을 선뜻 털어놓기 어려웠다. 그래서 첫 수술로 입원할 때는 일부러 친구 집에 놀러간다고 거짓말을 했다. “놀러간다고 했는데 한 번은 현관까지 직접 나오셔서 저를 지켜보시더라고요. 첫 수술 때는 말하지 못했지만 결국 얼마 지나지 않고서는 어머니에게 털어놓았죠. 아무리 어릴 적부터 남성성이 돋보이는 딸이었어도 딸의 입을 통해 직접 들으니 충격이 크신 것 같았어요.” 2011년부터 자궁 및 난소제거 수술을 시작으로 2년에 걸쳐 가슴제거수술, 성기수술을 마친 그는 수술로 힘들었던 당시를 어떻게 견뎠는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마취에서 깬 후 처음 떠오른 말은 욕이었어요. 주민등록번호에 나오는 숫자 ‘1’ 그게 뭐라고 내가 이렇게 힘들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참 서글펐죠.” 트랜스젠더라는 개념은 2001년 하리수의 등장으로 사람들에게 퍼지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13년이 지났지만 트랜스젠더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아직 부족하다. “트랜스젠더에 대한 사회 인식은 이전에 비해 전혀 달라지지 않은 것 같아요. 트랜스젠더 존재 자체만으로 거부감을 표현하더라고요. 한번은 제가 트랜스젠더임을 알고 있는 지인이 제 앞에서 ‘트랜스젠더를 어떻게 사랑할 수 있지? 친구라면 모를까’라는 말을 하더라고요.” 트벗은 언젠가 본교 근처에서 작은 빵집을 운영하는 것이 꿈이다. “제 작은 꿈은 ‘이대 나온 남자가 만든 빵집’이라는 이름을 달고 빵을 판매하는 거예요. 트랜스젠더라는 치명적인 약점을 역이용해서 장점으로 만드는 거죠. 사람들이 어떻게 말해도 제가 ‘이화의 아들’이라는 점은 변치 않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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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자대학교 2018학년도 학위수여식
이화여자대학교 2018학년도 학위수여식
home 김은경 기자 story@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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