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바둑은 ‘청소년 이용불가’ 게임이다

2020-08-12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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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게임은 안 되고, 확률형 아이템 결제는 되는 ‘애매모호’ 규제
게임산업 진흥 위해 규제 수반 필요하나 해묵은 시스템 개선해야

불분명함의 범위를 넘어, 혼란을 일으킬 소지가 있을 때 “애매모호한데?”라고 한다.
불분명함의 범위를 넘어, 혼란을 일으킬 소지가 있을 때 “애매모호한데?”라고 한다.

애매(曖昧)란 먹는 배(梨)와 타는 배(舟)처럼 한 단어에 두 가지 뜻이 있어 의미가 불분명한 경우를 말한다. 모호(模糊)란 분명하지 않고(模) 흐릿하다(糊)는 말이다. 우리는 두 단어가 합쳐진 애매모호(曖昧模糊)란 말을 왕왕 쓴다. 불분명한 것을 넘어 혼란을 일으킬 소지가 있을 때 “애매모호한데?”라고 한다.

바둑깨나 두는 한 중학생(15)의 일화다. 대형 게임사에서 모바일로 서비스하는 바둑 게임을 이용하려 하니 ‘청소년 이용불가’라고 한다. 게임이 베팅 요소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게임머니로 승부를 예측해 돈을 버는 시스템을 대국 콘텐츠와 함께 서비스하기 때문에, 즉 ‘사행성’을 조장하기 때문에 18세 미만 청소년이 이용할 수 없다는 얘기다. 관계자에게 물으니 ‘청불’ 게임이 맞다고 한다. 바둑 대국이 사행성에 가려진 애매모호한 사례다.

15년 전 정부는 게임산업에 대해 규제보다 발전에 방점을 찍었다. 노무현정부는 문화관광부(현 문화체육관광부)에 게임산업과를 신설해 게임산업 증진에 앞장섰다. 그러나 이듬해 아케이드 게임 ‘바다이야기’의 일으킨 사회문제가 전국을 강타했다. 그러자 게임 부흥에 앞장선 정부가 게임 규제로 노선을 바꿨다. ‘두뇌 스포츠’ 바둑이 웹보드게임으로 분류됐으며, 게임은 도박이자 사행성을 조장하는 놀이로 간주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사행성이란 무엇일까. 게임산업법에 따르면 ‘사행성 게임물’이란 베팅이나 배당을 내용으로 하는 게임물, 우연적인 방법으로 결과가 결정되는 게임물 등을 말한다. 노력보단 우연에 기대 일확천금을 노리는 게임이 사행성 게임이라면, 국내 게임사들의 대표 비즈니스 모델(BM)인 유료형 아이템, 즉 ‘확률형 아이템’도 사행성 아닐까.

하지만 청소년들도 '현질'(유료형 아이템 결제)을 할 수 있다. 용돈을 모아 '현질'을 하기도 하지만 부모 신용카드를 몰래 사용하는 등 ‘어둠의 경로’를 거치는 경우도 허다하다. 재밌는 건 현질은 규제하지 않고, 넷마블 모바일·한게임같은 대형 게임사가 제공하는 바둑 게임 서비스의 대국 시스템은 규제한다는 점이다. 사행성의 정확한 정의는 무엇일까. 또 어디까지를 사행성에 포함할 것인지 애매모호하다.

최근 정부가 웹보드게임 규제를 완화하는 등 게임법 보수작업을 시작했다. 이에 따라 스포츠 승부 예측 게임도 법으로 명시됐다. 그간 ‘스포츠토토’ 외엔 불법으로 여겨진 승부 예측 게임이 음지에서 양지로 이동한다. 다수 게임사가 승부 예측 게임의 개발 착수 및 완료 소식을 전하고 있기에 곧 시장이 본격적으로 활성화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게임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탈바꿈할 계기가 될 수도, 반대로 게임머니를 실제 재화로 환전하는 등 불법시장을 더 키우는 촉매제가 될 수도 있다. 합법적인 게임 문화 형성의 효시가 될 수도, 제2의 '바다이야기 사태'를 만들 수도 있다. 게임산업을 진흥할 수도 있고 사행성을 조장해 게임산업의 발전을 저해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게임은 지금보다 진흥돼야 할 산업이다. 물론 양면성을 띠는 게임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는 성역이란 소리가 아니다. 일정 규제를 분명히 수반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처럼 애매모호한 규제가 득실하면 외려 독이 될 수 있다.

발전을 위해 규제해야 한다면, 먼저 먹는 배(梨)와 타는 배(舟) 정도는 구별해야 한다. 그러려면 현질은 되고 바둑은 안 되는 애매모호한 현재 시스템부터 뜯어고쳐야 한다. 해묵은 규제를 벗겨내야 게임이 살고, e스포츠 종주국이자 페이커 보유국인 한국이 IT·게임 강국으로 발전할 수 있다. 바둑 대국이 사행성은 아니지 않는가.

home 김성현 기자 story@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