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석원의 찐썰] 본인도 전셋집에서 쫓겨날 처지면서... 경제부총리의 웃픈 부동산 발언

2020-10-15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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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인사들의 염치없는 실언들
염치없다면 눈치라도 갖추기를…

서울 마포구의 한 아파트와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사진을 합했습니다. / 뉴스1
서울 마포구의 한 아파트와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사진을 합했습니다. / 뉴스1
[※ 위키트리경제가 매달 <채석원의 찐썰> 칼럼으로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채석원 에디터는 위키트리경제 콘텐츠의 제작과 편집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많은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정부서울청사에서 지난 14일 열린 부동산시장 점검 관계장관회의. 주재자인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현재 주택시장 상황을 뜬금없이 이렇게 자찬했다. “투기수요 근절과 실수요자 보호라는 정책 목적이 어느 정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는 매매 시장이 안정세를 보이는 것과 달리 전세가가 상승세를 지속해 송구하다면서도 “기존 임차인의 주거 안정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지나가던 소도 웃을 염치없는 발언이다.

홍 부총리는 서울 마포구 염리동에 위치한 마포자이3차 전셋집에 산다. 전용면적이 84.86㎡(약 25평)인 이 집의 계약 기간은 내년 1월까지. 집주인이 실거주 의사를 밝힌 까닭에 당장 전셋집을 구하러 다녀야 할 판이다.

전셋집에서 쫓겨날 처지에 처한 사람의 입에서 전세 시장이 안정적이라는 기이한 말이 나온 것이다. 유체 이탈 화법도 이 정도면 가히 경지다.

부동산시장 점검 관계장관회의가 열리기 하루 전인 지난 13일 유명 인터넷 커뮤니티에 문제적 사진 한 장이 올라와 누리꾼들을 공포에 빠뜨렸다. 서울 강서구 가양동에 있는 한 아파트의 문 앞에 10여명이 길게 줄을 선 모습을 담은 사진이었다.

부동산 중개업소서 목격된 씁쓸한 광경

사진 속 사람들은 이른바 ‘전세 난민’. 산삼보다 귀하다는 아파트 전세가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달려온 이들이었다. 9개 팀이 차례대로 집을 둘러본 뒤 5개 팀이 계약 의사를 밝혔다.

그러자 부동산 중개업소 사무실에서는 집 없는 이들이 하늘에 운을 맡기고 제비뽑기를 하는 희한하고도 서글픈 광경이 펼쳐졌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1993년 이후 서울 주요아파트단지의 아파트값과 전세가를 조사 분석한 결과 2000년 이후 분양가상한제가 폐지돼              아파트값이 급등한 시기에 전세가도 가파르게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세가가 집값의 직접적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기에 무주택세입자를 보호하려면 문재인 대통령이 약속했던 것처럼 취임 이전 수준으로              집값 거품을 조속히 제거해야 한다고 경실련은 지적했다. / 경실련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1993년 이후 서울 주요아파트단지의 아파트값과 전세가를 조사 분석한 결과 2000년 이후 분양가상한제가 폐지돼 아파트값이 급등한 시기에 전세가도 가파르게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세가가 집값의 직접적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기에 무주택세입자를 보호하려면 문재인 대통령이 약속했던 것처럼 취임 이전 수준으로 집값 거품을 조속히 제거해야 한다고 경실련은 지적했다. / 경실련
누리꾼들은 충격을 받았다. “나라가 망해가고 있다”, “나라가 미쳐간다”, “이게 실화라고?” 등의 반응이 쏟아졌다. 한 누리꾼은 “내 삶에 이렇게 직접적으로 공포심을 불러일으킨 정권은 문재인정부가 처음”이라고 했다. 이것이 부동산 민심의 알싸한 실체다.

아닌 게 아니라 집값은 이미 납량물이 됐다. 서울 아파트의 가구당 평균 매매가가 지난 8월 10억원을 돌파했다. 2013년엔 5억원 초반이었는데 7년 만에 2배가량 뛰었다. 월급으로 400만원을 받는 직장인이 꼬박 20년을 넘게 모아야 서울에서 아파트를 살 수 있단 얘기다. 그것도 한 푼도 안 쓰고. 이게 사람 사는 세상인가.

한국의 저출산 문제가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심각한 까닭이 있다. 나라가 키워줄 테니 ‘씀풍씀풍’ 낳기만 하라고? 기가 막히는 말이다. 수십 년 발버둥쳐도 집 한 채 사기 어려운 나라에서 무슨 똥배짱으로 아이를 낳아 ‘집의 노예’로 살게 한단 말인가. 나중에 자식 보기 부끄러워 출산을 꺼리는 전세 난민에게는 적어도 염치가 있다.

부동산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리는 만큼 집값이 왜 올랐는지는 논하기 어렵다. 다만 하나는 확실하다. ‘골수 친노’인 조기숙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마저 혀를 내두를 정도로 상황이 절박하다는 점이다.

조 교수는 문재인 대통령 최측근 인사로부터 “문 대통령이 ‘일본처럼 우리도 집값이 폭락할 테니 집을 사지 말고 기다리라’고 했다”는 말을 들었다면서 문 대통령의 부동산 인식이 정확한지 점검해야 한다고 주장해 파문을 일으켰다. 집값 문제는 어느덧 골수 친노마저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정도의 사안이 됐다.

누리꾼들에게 충격을              안긴 문제의 사진. 전셋집을 구하려고 10여명이 한 아파트의 복도에서 길게 줄을 서고 있다. / 사진=MLB파크
누리꾼들에게 충격을 안긴 문제의 사진. 전셋집을 구하려고 10여명이 한 아파트의 복도에서 길게 줄을 서고 있다. / 사진=MLB파크

욕 뱉기는 쉽다. 현 정부가 그랬다. 두 전직 대통령을 삿대질하는 것만으로 너무도 쉽게 진보나 정의의 감투를 썼다. ‘우리가 아무리 허접해도 이명박근혜보단 낫지 않아?’ 그간 문재인정부의 큰 허물들이 들춰지지 않았던 건 상당 부분 부패하고 무능했던 전직 대통령들 덕분이었다.

학습 효과로 그걸 알았던 때문일까.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부동산 폭등을 초래한 원인 중 하나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간 누적된 부동산 부양 정책 때문”이라고 들먹였다. ‘대깨문’들에겐 갸륵한 충성심이겠지만, 옥살이 중인 두 전직 대통령까지 들춰가며 정부 실정을 감싸는 건 염치없고 볼썽사나운 일이다.

이런데도 과거 정부만 탓할 것인가

진보 성향 시민단체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 14일 노무현정부와 문재인정부에서 아파트값이 가장 크게 올랐다는 조사 결과를 내놨다. 30평 강남 아파트 가격이 두 정부에서만 총 13억9000만원 오르고 전세가도 6억1000만원 상승했다고 경실련은 지적했다.

경실련에 따르면 김영삼정부 때인 1998년까지 3억원 미만이었던 30평 강남 아파트는 약 18억이나 올라 2020년 21억원이 됐다. 노무현정부에선 6억3000만원, 문재인정부에선 7억6000만원이 뛰었다. 박근혜정부에선 3억2000만원, 김대중정부에선 2억9000만원, 김영삼정부에선 8000만원 상승했다. 현 정부 인사들의 ‘단골 욕받이’인 이명박정부에선 되레 2억원이 떨어졌다.

이런데도 과거 정부만 탓할 텐가. 제발 염치를 갖추자. 지붕까지 뚫은 집값을 보고도 염치가 생기지 않는다면 눈치만이라도 챙기자. 전셋집을 구하려고 10여명이 줄을 선 살풍경을 눈앞에 두고도 남 탓만 읊을 것인가. 집값 잡으려다 애먼 국민만 잡는 짓을 대체 언제까지 지켜봐야 하는가.

서울 마포구 염리동에 위치한 마포자이3차 전셋집에 사는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쫓겨날 처지에 놓였다. / SBSCNBC뉴스 유튜브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 지난 30년간 서울 아파트, 전세가의 변동 분석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경실련 유튜브

home 채석원 기자 jdtimes@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