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회장 별세] 이건희 "여성이 왜… 시대에 뒤떨어진 인식 바꾸자"

2020-10-25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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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차별 없애고 여성 인력 확대했던 이건희 회장
기혼 여성 안정상태서 직무 충실할 수 있도록 배려

이하 삼성전자 제공
이하 삼성전자 제공

“다른 나라는 남녀가 합쳐서 뛰고 있는데, 우리는 남자 홀로 분투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바퀴 하나는 바람이 빠진 채로 자전거 경주를 하는 셈이다. 이는 실로 인적 자원의 국가적 낭비라고 아니 할 수 없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1997년 에세이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에서 말한 내용이다. 이 회장은 향년 78세 나이로 25일 서울 일원동 서울삼성병원에서 별세했다. 그는 생전 여성 인력 활용과 남녀차별 관행을 없애는 데 무게를 뒀다.

이 회장은 23년 전 에세이를 통해 “국가 차원에선 저렴한 비용으로 이용할 수 있는 탁아소나 유치원 시설을 많이 제공함으로써 여성이 사회생활을 하는 데 따르는 경제적 부담을 줄여 줘야 한다”며 “기업도 여성에게 취업 문호를 활짝 열고 취업 활동을 지원하는 인프라를 구비해 줘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여자라는 이유로 채용이나 승진에서 불이익을 준다면, 이에 따라 당사자가 겪게 될 좌절감은 차치하더라도 기업의 기회 손실은 무엇으로 보상할 것인가”라고 밝히면서 여성 채용을 적극적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처럼 이 회장의 가치관은 고스란히 삼성 경영 방침에 녹아들었다. 이 회장은 평소 우리 사회와 기업이 여성 잠재력을 잘 활용한다면, 훨씬 큰 발전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며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그는 여성 인재를 등용하기 위해서 기존의 남녀차별 관행을 모두 걷어내는 일을 급선무로 꼽았다.

삼성은 1992년 4월 여성전문직제를 도입하고 1차로 비서전문직 50명을 공개채용해 전문지식과 우수한 자질을 보유한 여성인력을 본격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그해 9월에도 소프트웨어직군에서 100명의 우수 여성인력을 공채하는 등 여성 전문직제를 확대했다.

1993년 신경영 체제 이후엔 하반기 대졸사원 공채에서 여성 전문인력 500명을 선발한 것을 시작으로, 대규모 여성인력 채용을 본격화했다. 1995년 7월, 삼성은 열린 인사 개혁을 계기로 그동안 여사원이 제한받아왔던 각종 기회를 보장하고 활동영역을 크게 넓혔다.

그해 최초로 여성 지역전문가 5명을 선발했고, 외국어 생활관이나 해외 어학연수 등 장단기 어학연수 기회도 여성에게 똑같이 보장했다. 또, 주재원을 파견하고, 사내강사나 신입사원 교육의 지도선배로 활용하는 등 저변을 넓혀갔다.

삼성은 사무직 여사원들에게 적용해 오던 근무복 제도를 1995년 3월부터 폐지하고 자율에 맡겨, 각자 개성을 살린 복장을 할 수 있게 했다. 특히 이 회장은 기혼 여성들이 정서적으로 안정된 상태에서 직무에 충실할 수 있도록 배려할 것을 강조했는데, 이를 위해 서울과 전국 주요 사업장에 기혼 여성을 위한 어린이집을 설치하기도 했다.

이 회장의 이 같은 경영방침은 2020년 삼성의 방향성으로 직결됐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 8월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을 찾아 육아를 병행하고 있는 여성 임직원들과 간담회를 가지면서 “시대에 뒤떨어진 인식을 바꾸자”고 표명한 바 있다.

당시 이재용 부회장은 “유능한 여성 인재가 능력을 충분히 발휘해 차세대 리더로 성장하고, 롤모델이 될 수 있는 조직문화를 함께 만들어 가자”며 여성 인재 확보와 육성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home 김성현 기자 story@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