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에 확산한 '캣맘 119 호출' 사건의 진실… 사실은 이랬습니다

2023-08-24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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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 고양이 도우려던 한 아파트 주민
'극성 캣맘'으로 오해 받은 사연

선한 의도로 한 행동이 되레 화(火)로 돌아왔다.

한 아파트 주민이 차들이 오가는 주차장 입구에 방치된 새끼 고양이들을 돕고자 했다가 '극성 캣맘'으로 몰려 악플(악성 댓글) 세례를 받는 일이 벌어졌다. 도움을 요청하려 쓴 글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무분별하게 퍼지면서 왜곡된 탓이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고양이 자료 사진이다. / savitskaya iryna-shutterstock.com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고양이 자료 사진이다. / savitskaya iryna-shutterstock.com

지난 23일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캣맘, 119 호출 사유'라는 제목을 단 게시물이 빠르게 확산했다. 해당 게시물엔 한 고양이 관련 온라인 카페에 올라온 글이 캡처 사진 형식으로 담겨 있었다. 아파트 지하 주차장 진출입로에 어미 없는 새끼 고양이 4마리가 놀고 있어 위험해 보인다는 게 글의 골자였다.

카페에 글을 올린 원글 작성자 A 씨는 고양이 구조에 119구조대가 동원된 것으로 보이는 현장 사진을 공개하며 '고양이 4마리 중 1마리를 잡았는데 관리실 측에서 119에 넘기려는 걸 제가 강하게 말해 다시 풀어 줬다'고 당시 상황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게시물을 접한 일부 네티즌이 '고양이 구조에 119를 왜 부르느냐', '캣맘이 행정력을 낭비했다' 등의 견해를 덧붙여 여러 커뮤니티에 해당 내용을 공유했다. 그러자 논란이 일파만파로 커졌다. "업무 방해 아니냐", "출동 비용이 얼만 줄 아냐" 등의 반응이 쏟아진 것. 일부는 '극성 캣맘'이라며 원글 작성자를 험담하기도 했다.

그러나 위키트리 확인 결과 A 씨는 고양이를 구조하려고 119에 신고한 적이 없었다. 아파트 관리실 측에서 119에 도움 요청을 한 게 A 씨가 한 일로 잘못 퍼지면서 누리꾼들에게 뭇매를 맞은 것이다. A 씨는 24일 위키트리와의 통화에서 고양이를 구조할 때 있었던 일을 공개했다.

A 씨는 최근 새끼 고양이 4마리가 아파트 지하 주차장 인근에 있는 걸 목격했다고 말했다. 아파트 주변 환경 영향인지 좀처럼 길고양이가 없었는데, 어미도 없는 고양이 여러 마리가 나타나자 걱정이 앞섰다. 하필이면 며칠간 큰 비가 쏟아질 것이란 기상청 예보가 나온 탓이다.

며칠째 고양이들이 같은 곳에서 포착되자, A 씨는 아파트 관리실에 고양이들이 안전한 곳으로 이동할 수 있게 조처해 달라고 요청했다. 행여 차량에 치이는 사고라도 나면 고양이는 물론 아파트 주민도 피해를 입을 수 있어서다. A 씨 외에 일부 주민도 관리실에 같은 요청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A 씨는 관리실에 요청한 뒤에도 온라인에 검색해 보며 스스로 고양이를 도울 방법이 없는지 찾아보는 등 계속 마음이 쓰였다고 한다. 그러다 지난 21일 일이 터졌다.

지하주차장 우수관 트렌치(우수 구멍)에 고양이들이 갇혀 오도 가지도 못하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1마리는 어찌어찌 빠져나왔지만, 나머지 3마리는 덮개를 다 들어내야 꺼낼 수 있을 정도로 안쪽으로 깊숙히 들어갔다.

A 씨가 관리실에 이 사실을 알리자 관리실이 119에 신고해 도움을 요청한 것으로 파악됐다. 구조대원이 온 걸 지켜본 A 씨는 현장에 출동한 구조대원 2명이 "119는 구조된 고양이를 인계해 보호소 등 관련 기관에 보내는 역할을 한다"고 관리실 측에 설명하는 걸 들었다고 한다. 인명 구조와 연관이 없는 단독 동물 구조 업무는 소방 권한이 아님을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구조대는 어린 고양이를 구조하는 데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려 한 것으로 전해졌다.

관리실 측은 나머지 구조를 포기하고 1마리라도 119에 인계하려고 했고, A 씨는 모두를 구조하지 못할 거라면 가족으로 추정되는 고양이들이 함께 지내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다. 보호소 등으로 인계된 고양이들이 일정 시기 내에 입양되지 못하면 안락사될 수도 있다는 얘길 어렴풋이 들었기 때문이다.

결국 고양이 4마리는 이날 이후에도 별다른 거처를 찾지 못했고, A 씨는 수소문해 고양이를 도울 방법을 찾아 나섰다.

고양이 정보를 얻는 온라인 카페에 글을 남기는가 하면 집 주변 동물 관련 센터에도 문의했다. 온라인에 퍼진 119 논란 글은 이때 쓰인 것이다.

A 씨는 집 주변 동물 관련 센터에 문의하는 과정에서 고양이 구조에 도움을 주고 이후 입양 절차도 돕겠다는 얘길 들었다. 그는 센터 도움을 받아 새끼들을 구조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고양이 1마리와 이미 살고 있던 터라 고민이 많았지만, 입양될 때까지 4마리를 임시 보호하거나 입양이 안 되면 모두 품어야겠단 생각까지 했다고 한다. 어미 잃고 자동차 사고 위험에 처한 고양이들이 눈에 밟혔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양이는 이후 어디론가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관리실 측에 고양이들을 보면 연락을 달라고 요청해 뒀지만 감감무소식이었고, 이후 관리실로부터 "고양이 1마리를 습지에 풀어줬다", "1마리는 119에 인계했다"는 얘길 들었다고 한다.

A 씨는 "도저히 외면할 수 없어 새끼 고양이들을 돕고 싶었는데 사라져 버렸다"며 "순수한 마음으로 도와주고 싶었던 것 뿐"이라고 털어놨다.

그는 "'캣맘'이라고 하면서 심한 말을 하는 댓글도 봤다. 평소 고양이 밥을 주러 다니지도 않고 사람들이 흔히 칭하는 캣맘도 아니지만, 이 일로 동물을 사랑하는 여러 사람이 같이 욕먹는 것 같아서 마음이 좋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고양이들에게 도움을 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온라인에 나를 오해하는 글만 퍼져 너무 속상하다"고 했다.

home 강보라 기자 story@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