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본문

“나도 난민입니다” 콩고 부족 왕자 출신 욤비

    • • 지난 2013년 KBS '인간극장-굿모닝 미스터 욤비'에 출연해 얼굴이 알려진 욤비 토나(Yiombi Tho

    지난 2013년 KBS '인간극장-굿모닝 미스터 욤비'에 출연해 얼굴이 알려진 욤비 토나(Yiombi Thona). 그는 콩고민주공화국에서 탈출해 한국에 정착한 '난민'이다.

    최근 유럽으로 밀려드는 시리아 난민 문제에 국제사회 관심이 집중된 가운데, 2002년 콩고에서 정치적 탄압을 피해 한국으로 탈출한 욤비의 생각을 들어봤다.

    난민 신분으로 한국에서 어렵게 살아왔던 그는 2년 전 광주대 자율·융복합전공학부에 조교수로 채용됐다. 그는 학교에서 인권, 다문화, NGO 등을 가르치고 있다.

    이하 욤비 토나 제공


    "내가 북한에 가는 줄 알았다"

    콩고민주공화국 키토나 부족 '왕자'였던 욤비는 킨샤사 국립대에서 대학원까지 졸업한 엘리트였다. 그는 콩고비밀정보국에서 일하다가 정권 비리를 캐내면서 옥고를 치르게 됐다. 동료의 도움으로 간신히 탈출한 그는 2002년 중국을 거쳐 한국에 왔다.

    그는 "한국에 오게 된 건 순전한 우연이었다"고 말했다. 콩고에서 나온 그는 먼저 중국으로 건너갔으나 중국에서는 난민 신청이 불가능했다. 그는 태국 비자를 받으려고도 했지만 실패했다. 그가 다음으로 찾은 나라가 한국이었다. 욤비는 "나는 내가 북한에 간다고 생각했었다. 단순한 이유였다. 많은 사람이 북한을 '한국'이라고 알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전했다. 

    욤비에게 북한이 두렵지 않았냐는 질문을 던졌다. 그는 "두렵지 않았다. 사실 남한 사람들은 북한과의 관계 때문에 북한을 두려워한다. 하지만 다른 나라 사람에겐 그렇지 않다. 북한은 인권을 탄압하는 수많은 나라 중 하나일 뿐이다"라고 했다.


    "난민 지위를 얻는 데 6년"

    2002년 한국에 입국한 그는 난민 지위를 얻지 못하고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공장을 전전했다. 하지만 운 좋게 그는 국내 난민 지원 단체에서 활동가로 일하게 되면서 공장일을 그만두게 됐다. 마침내 2008년, 그는 행정 소송을 거쳐 정식적으로 난민 인정을 받았다. 그는 "한국에서 난민 인정을 받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7일 홍일표 새누리당 의원이 공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한국에 들어온 난민인정률은 3.6%다. 유엔난민기구(UNHCR) 2010년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 난민인정률은 38%다. 전 세계 평균에 비교하면 한국 난민 수용 비율은 현저히 낮다.

    난민 인정을 받은 그는 그제야 콩고 정글에서 숨어 살아가던 나머지 가족들을 한국으로 부를 수 있었다. 난민 지위를 얻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6년간 그는 사랑하는 가족들과 3~4개월에 한 번씩 간신히 연락을 취하며 머나먼 한국 땅에서 외로이 지낼 수밖에 없었다.


    "우리 아이 둘은 무국적자"

    그는 한국에서 아이 두 명을 낳았다. 하지만 그 아이는 둘 다 무국적자다. 

    고 법에 따르면 해외에서 태어난 콩고인 부부의 아이는 6개월 안에 현지 콩고 대사관에서 국적 신청을 해야 한다. 만약 신청하지 않고 6개월이 지나면 아이는 콩고 국적을 얻지 못하게 된다. 반면 한국 법은 외국인이 낳은 아이는 자동으로 부모의 국적을 따르게 돼 있다. 

    콩고에 돌아가고자 하는 그는 한국에 귀화 신청을 하지 않은 상태다. 콩고에도, 한국에도 국적 신청을 하지 않은 그의 아이 둘은 국적이 없다. 그는 "나는 콩고 국적을 유지해야 한다. 나는 다시 고국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한국도 '난민 문제'를 겪은 나라

    1950년대 한국 전쟁과 1980년대 민주화 운동으로 한국도 전 세계의 관심을 받았던 나라라고 그는 설명했다. 그는 "당시 많은 한국인이 다른 나라에 난민 신청을 했었다"고 강조했다. 이어 "한국의 첫 번째 대통령(이승만 전 대통령)도 망명했었고, 김대중 전 대통령도 그랬다"고 말했다. 고 이승만 전 대통령은 4·19혁명 이후 하와이로 망명했고,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일본, 미국으로 망명했었다.

    그는 "한국 사람들이 난민법에 대해 잘 모른다"며 아쉬워했다. 이어 "2013년 한국에서는 난민법이 제정됐고, 한국은 난민과 관련된 제네바 협약을 체결한 국가이기도 하다. 문제는 법의 이행이다. 난민 관련 법은 사법부에서만 알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난민들은 법에 쓰여진 것과 같이 한국인처럼 살아가야 하지만, 실상은 마치 감옥에서 사는 것처럼 살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시리아 문제는 시리아 때문이 아니야

    시리아 난민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기로 한 독일에 쏟아지는 일각의 비판에 대해 그는 "만약 자신이 시리아에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보라"고 했다. "그냥 앉아서 죽기를 기다릴 건가?" 그가 덧붙였다.

    시리아와 같은 난민 문제가 생기게 하지 않으려면 그는 '투표'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만약 유럽이 난민을 받아들이기 싫다면, 답은 그거다. 시리아를 비롯한 나라들에 전쟁을 일으키지 않는 사람을 뽑는 거다. 이건 그들이 자초한 일이다"라고 말했다.

    욤비는 러시아와 서양의 충돌로 시리아 문제를 설명했다. 

    "러시아는 시리아 정권이 유지되기를 원하고, 서양은 그렇지 않다. 시리아 분쟁은 외부 요인으로 발생한 면이 크다" 

    그는 문제가 생긴 가장 큰 요인이 시리아의 천연자원이라고 했다. 

    그는 "콩고 분쟁도, 리비아, 이라크도 모두 같은 이유다. 이 일을 일으킨 당사자는 자신들이 만든 문제의 결과를 책임지지 않으려 한다. 러시아와 서양은 시리아 난민 문제의 큰 부분을 감당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케도니아 인근에서 줄지어 기차를 기다리는 난민 / Stoyan Nenov 로이터 = 뉴스1
     

    내 나라 떠나는 난민 심정은 '고통'

    그는 콩고를 떠나던 당시를 회상하며 "고통스러운 마음 없이 고국을 떠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며 "나는 여전히 우리나라가 그립다. 내가 콩고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이유다"라고 말했다.

    그는 "2016년 콩고에 총선거가 있다. 헌법에 따르면 현재 정권을 잡고 있는 대통령은 선거에 다시 출마할 수 없다. 이번이 마지막 임기다. 하지만 그는 헌법을 바꿔서 다시 출마하려고 시도하고 있다"며 콩고 현지 상황이 점점 악화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콩고에는 여전히 욤비의 가족이 남아 있다. 89세 된 그의 어머니, 두 형제, 그리고 여동생. 특히 그의 남동생은 체포되지 않기 위해 숨어다니고 이름도 계속 바꾸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가 말했다. "내 꿈은 다시 고국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나라 발전에 이바지하고 싶다"
     

    권수연 기자

우측 영역

우측 영역

사이드 배너 영역

SPONSORED

우측 영역

사이드 배너 영역

사이드 배너 영역

사이드 배너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