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여성 사주 훔쳐 죽은 이와 '영혼결혼식'?

2016-03-12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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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1 (서울=뉴스1) 이후민 기자 = #. 사촌형이 희귀병을 앓다 작년에 죽고 난 뒤 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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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이후민 기자 = #. 사촌형이 희귀병을 앓다 작년에 죽고 난 뒤 큰어머니 꿈에 자꾸 형이 나왔다. 용하다는 무당을 찾아가 물었더니 "죽은 아들이 장가도 못 가고 병원 신세만 지고 떠난 게 한이 되서 그런 것 같다"고 했다. 젊은 나이에 죽은 아가씨를 수소문하기가 쉽지 않았고,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산 사람의 사진과 사주 정보를 이용해 대충 아는 사람이라고 둘러대고 무당을 통해 영혼결혼식을 올렸다.

지난 7일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산 사람의 사주 정보를 이용해 영혼결혼식을 올렸다는 내용의 글이 올라왔다. 글 내용의 사실 여부는 확인이 되지 않았지만, 네티즌들은 이 글이 인터넷에 올린 개인정보를 악용하는 경우 중 가장 기분 나쁜 사례라며 갑론을박을 벌였다.

영혼결혼식은 원래 결혼을 약속한 사람 중 한 사람이나 두 사람 모두가 죽은 경우 혼백을 위로하기 위해 치르는 일종의 종교적 의식이다.

지난 1982년 2월 광주 망월동 구묘역에서 열린 윤상원 열사와 박기순 열사의 영혼결혼식이 잘 알려진 예다. 또 2007년 숨진 배우 고 정다빈씨가 2011년 5월 경기도 양평 용천사에서 영혼 결혼식을 올려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렇다면 인터넷에 올라온 글대로 죽은 사람과 누군지도 모르는 산 사람의 사진과 사주 정보 등 개인정보만으로 영혼결혼식을 올리는 게 가능할까.

고 정다빈씨의 영혼결혼식을 직접 담당했던 용천사의 주지 청봉스님은 "절대 불가능한 이야기"라고 잘라 말했다.

청봉스님은 뉴스1과의 통화에서 "실제로 모르는 사람의 개인정보만으로 영혼결혼식을 치렀다면 그건 돈만 바라는 사기꾼에게 잘못 걸린 것"이라며 "영혼결혼식은 원래 알던 사이인 사람이거나 절의 신도끼리 소개를 받은 뒤 신중하게 양가의 논의를 거쳐 결정하는 것이 보통이다"고 말했다.

청봉스님은 "불교에서는 삶과 죽음을 따로 있다고 보지 않는다"며 "육신이 죽었어도 영혼이 죽은 것은 아니기 때문에 전생에서 육신에 의지하며 생긴 업장이나 번뇌, 욕심 등 한을 풀어주고 영혼을 살려주기 위해 짝을 지어주는 것"이라고 영혼결혼식의 의미를 설명했다.

또 "영혼결혼식은 살아있는 사람의 맘을 편하게 해줄 수 있는 하나의 방편인 셈"이라며 "제사를 지내주고 나면 실제로 그 가족들이 맘이 편해졌다고 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고 말했다.

영혼결혼식의 절차 역시 실제 결혼식과 비슷하게 진행된다. 양가 가족들이 서로 만나 의논을 한 뒤 결혼을 치를 날짜를 정한다. 양쪽 집안의 위패를 만들고 둘의 영혼을 씻긴 뒤 깨끗한 영혼인 상태에서 천도를 지낸다.

또 처녀 총각 인형을 앞세워 고인들이 생전에 쓰던 각종 물건들과 함께 병풍 뒤에 합방을 시켜주고 이를 모두 태우는 것으로 큰 의식이 끝난다.

결혼식을 올릴 땐 "다시는 나쁜 일을 겪지 않고 언제나 목마르지 않고 배부른 곳, 좋은 곳에 태어나 깨끗하게 살라"는 기원을 담아 두 영혼을 위로한다는 것이 청봉스님의 설명이다.

그렇다면 개인정보가 영혼결혼식에 쓰였다는 사실을 안 당사자는 이를 이용해 결혼식을 올린 사람을 고소할 수 있을까.

한 경찰서 사이버팀 관계자는 "개인정보를 이용해 영혼결혼식을 강제로 치렀다는 것 만으로 처벌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피해자를 특정해 영혼결혼식을 치렀다는 사실을 인터넷에 올려 그 사람이 모욕감을 느끼도록 만든다면 '모욕죄'에 해당해 처벌할 수 있다"며 "범죄 성립 여부가 애매하지만 피해를 당했다고 느낀다면 경찰에 고소나 고발 대신 진정을 할수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결국 인터넷에 올린 개인정보 탓에 산 채로 영혼결혼식을 강제로 올렸다고 하더라도 큰 피해는 없지만 처벌할 방법도 없다는 것. 찝찝한 마음이 들기 전에 개인정보를 소중히 여기는 것이 이같은 황당한 피해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박춘식 서울여대 정보보호학과 교수는 "요즘은 자기가 죽고 나서 자신의 정보가 인터넷에 떠돌지 않도록 지워주는 직업이 나올 정도로 개인정보 유출이 심각하다"며 "개인정보 유출을 사회·제도적으로 막으려 해도 한계가 있기 때문에 제일 좋은 것은 본인이 조심하는 것"이라고 당부했다.

또 "특히 민감정보인 주민등록번호나 병력, 범죄전력 등의 경우 취급에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며 "자기 신상에 관한 정보를 각종 기관이나 SNS에 덜 제공하는 등 노력해야 개인정보로 인한 피해를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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