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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트리 선정, 2010 트위터 10대 감동 스토리

    • • 트위터는 이슈와 재미의 공간이기도 하지만 감동의 공간이기도 합니다. 2010년 올 한해 트위터리언들의&nbs

    트위터는 이슈와 재미의 공간이기도 하지만 감동의 공간이기도 합니다. 2010년 올 한해 트위터리언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든 감동 스토리들을 한자리에 모아봤습니다.

     

    1.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얼굴

     

    실화를 바탕으로 한 만화가 수 많은 트위터리언들의 눈시울을 자극했습니다. 심한 화상으로 얼굴이 망가진 아버지가 자식들을 돌볼 수 없어 고아원에 맡기고 숨어 살다시피했습니다.  나중에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자식들은 화장만 하지 말아달라는 아버지의 유언을 무시하고 아버지를 화장했습니다. 화장한 뒤 아버지의 짐을 정리하다 아버지의 일기장을 발견한 자식들은 아버지가 화상을 입은 게 어릴 적 자신들의 불장난 때문이었고 그 불장난으로 인해 어머니가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아버지는 일기장에 평생 불에 타는 악몽에 시달리며 살았으니 제발 화장만 하지 말아달라고 유언을 남겼고 자식들은 후회하며 통곡을 했지만 아버지는 이미 화장되어 한줌의 재가 된 뒤였습니다.

     

     


    2. 천사가 남기고 간 것

     

    11살 어린 나이에 2주 밖에 살 수 없다는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브렌든은 하고 싶은 소원을 말해보라는 어머니의 말에 "노숙자들에게 샌드위치를 만들어주고 싶다"라는 소원을 말했습니다. 브렌든의 마지막 소원이 인터넷에 올라오자 수많은 사람들이 브렌든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팔을 걷어부쳤고 브렌든의 남은 시간 2주간 3500여명의 노숙자들이 샌드위치를 받았다는 훈훈한 이야기가 트위터리언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었습니다.

     

     


    3. 어느 초등학생과 할아버지 그리고 아저씨

     

    어느 시골 할아버지가 버스를 탔는데 돈을 못 내자 운전기사가 내리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러자 어느 초등학생이 1만원을 대신 내면서 "앞으로 이런 분들 타시면 공짜로 10번 태워주세요"라고 했습니다. 사연을 올린 글쓴이는 태어나서 어른이라는 게 이렇게 후회가 된 적이 없다며 버스에서 내리는 길에 초등학생 호주머니에 1만원짜리 지폐를 찔러넣어주고는 도망치듯 버스에서 내렸다고 합니다.

     


    저는 평범한 회사생활을 하는 34살의 회사원입니다. 용인 민속촌 근방의 회사에서 근무를 하다가 회사 일로 인해 서울 역삼역 근처 본사에 가게 되었습니다. 용인 회사에 있을 때에는 자가용을 이용하여 출퇴근을 하다가 막상 서울을 가려고 하니까 차도 막힐 것 같고 지하철을 타자니 너무 답답할 것 같아서 오랫만에 버스를 타고 가기로 마음먹고 버스를 기다렸습니다. 서울로 가는 버스는 분당에서 많이 있기에 용인 신갈에서 오리역까지 완행으로 운행되고 있는 버스를 탔습니다.

     

    그때가 7시 50분 정도 되었을 겁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버스는 만원 상태일거라 생각했는데 그날은 보통 때와 다르게 서있는 사람은 3~4명 정도고 모두 앉아있는 상태였습니다. 구성 쯤 도착해서 막 출발을 하려고 할 때의 일입니다. 한 할아버지가 양손 가득히 짐을 들고 버스를 간신히 탔습니다. 한눈에 보기에도 당신의 아들이나 딸에게 주려고 시골에서 가져온 식료품 같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한 10 미터 정도 앞으로 전진을 했을까요? 갑자기 버스가 급정거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놀란 사람들이 앞을 쳐다 보았습니다. 운전기사가 할아버지에게 차비 없으면 빨리 내리라고 하고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어쩔 줄 몰라 하며 한 번만 태워 달라고 애원하다 시피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마음속에서는 운전기사에게 어르신한테 너무한다며 뭐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차마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런 찰라에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갔습니다 그리고는 가방을 내려놓고 여기저기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기사아저씨한테 막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습니다.

     

    '할아버지 잖아욧! (귀가 떨어져나갈 정도의 소리로).... 아저씨 앞으로는 이렇게 불쌍하신 분들 타시면 공짜로 10번 태워주세요' 라고 말하면서 만원짜리를 돈통에 넣는게 아니겠어요? 순간 눈물이 핑~ 돌 정도의 찡~~~함이 제 가슴을 스치고 지나가더군요. 그리고는 할아버지를 자기가 앉아 있던 자리에 모시고 가는게 아니겠어요... 정말 제가 태어나서 이렇게도 창피했던 적이 있었나 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나 아닌 다른 사람들도 같은 마음이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왜 이렇게도 고개를 들 수가 없고, 어른이라는게 이렇게도 후회가 되는 하루 였습니다.

     

    오리역에 다 왔을 때쯤인가 저는 만원을 지갑에서 꺼냈습니다. 그리고는 내리는 문이 열였을 때 그 꼬마 주머니에 만원짜리를 얼른 찔러 넣고는 도망치듯 뛰어 내렸습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제 마음이 편치 않을 것 같았습니다. 반성하는 하루를 살 게 해준 그 꼬마에게 진심으로 머리 숙여 감사합니다.

     


    4. 이런 직장상사와 일해보신 적 있나요

     

    평소 모든 일을 칼같이 해결해 아랫사람들이 죽어나갈 정도로 철두철미한 호랑이 상사 때문에 퇴사까지 생각했던 한 직장인이 아주 큰 실수를 저질러 회사에 큰 피해를 끼치게 됐습니다. 겁이난 직장인은 무단 퇴사하여 집으로 도망쳤는데 호랑이 상사가 집으로 찾아와 직장인을 데리고 전국을 돌며 그가 실수한 것을 만회하고 회사로 복귀합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호랑이 상사는 이 일을 해결하지 못하면 내가 직장을 그만두겠다며 사장에게 사표를 제출하고 직장인과 전국을 돌았던 겁니다. 직장인이 눈물을 쏟으며 감사하다고 하자 호랑이 상사는 "정 고맙거든 나중에 네 후임이 실수했을 때 너도 사표를 던질 각오로 그 일 해결해"라며 담담하게 말했다고 합니다.

     


    "존경할 수는 있는 사람이 있어 행복합니다

     

    입사한 지 이제 1년, 최근까지 한분의 과장님 때문에 매일 같이 퇴사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 과장님이 모자란 사람이라면 차라리 낫습니다. 모든 프로젝트와 일을 칼같이 해결하는 양반입니다. 문제는 부하직원들도 자기처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괴상한 믿음 때문에 아랫사람들이 죽어난다는 것입니다.

     

    3개월 전, 매일 야근에 피곤한 제가 아주 큰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저희가 하청을 주는 공장에 신제품 샘플 제작을 의뢰했는데 1,000개만 받으면 되는 것을 서류 작성 미스로 10,000개를 의뢰한 것입니다. 규정대로 한다면 2중, 3중의 확인 절차가 있지만 대부분 잘 지키지 않는 요식행위였고, 저 역시 대충 넘어간 것이 큰 화근이 되었습니다.

     

    실수를 알았을 때는 이미 3,000개의 제품이 제작된 후였습니다. 이 제품의 출고가는 8만 원, 2,000개면 1억 6천만 원. 저는 무단 퇴사하는 것으로 도망쳐 버렸습니다. 그때는 정말 왜 그랬는지...

     

    하지만, 과장님이 집안에 숨어 있던 저를 멱살을 잡고 끌고 나오시더니 저와 함께 찜질방과 여관을 전전하며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새로운 판매처를 확보하였습니다. 그리고 고작 사흘 만에 2,000개의 신제품을 깨끗이 팔아치웠습니다.

     

    회사로 돌아온 후 더 놀라운 일을 겪었습니다. 회사로 돌아온 저희에게 사장님이 오시더니 과장님에게 과장님의 사표를 돌려주시더군요. 과장님이 자신이 이 일을 해결하지 못하면 그만두겠다며 사장님에게 사표를 맡기고 저와 함께 나선 것이었습니다.

     

    저는 눈물을 쏟으며 연신 감사하다고 말했는데, 과장님은 담담하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해결할 수 있다고 판단했으니까 사표까지 낸 거다. 특별히 널 위해서 그런 것은 아니야. 정 고맙거든 나중에 네 후임이 실수 했을 때 너도 사표 던질 각오로 그 일 해결해."

     

    저희 과장님 존경할만한 분 아닌가요?

     

     

     

     

    5. "마지막 명령이다. 살아서 귀환하라" 천안함 추모시


    천안함 침몰사고로 많은 장병들이 실종되자 그들의 무사귀환을 염원하는 시가 인터넷에 퍼져 많은 네티즌들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동아대학교 의과대학 교수인 김덕규 씨가 지난 3월 29일 해군 홈페이지에 '772함 수병은 귀환하라'라는 제목의 시를 올려 천안함 실종자 46명의 생환을 바라는 마음을 애절하게 표현했습니다.

     


    제목 : 772함 수병은 귀환하라


    772함 수병은 귀환하라
    772함 나와라
    온 국민이 애타게 기다린다.

     

    칠흑의 어두움도
    서해의 그 어떤 급류도 당신들의 귀환을 막을 수 없다
    작전지역에 남아있는 772함 수병은
    즉시 귀환하라.

     

    772함 나와라
    가스터빈실 서승원 하사 대답하라
    디젤엔진실 장진선 하사 응답하라.

     

    그대 임무 이미 종료되었으니
    이 밤이 다 가기 전에 귀대하라.

     

    772함 나와라
    유도조종실 안경환 중사 나오라
    보수공작실 박경수 중사 대답하라

     

    후타실 이용상 병장 응답하라.
    거친 물살 헤치고 바다 위로 부상하라
    온 힘을 다하며 우리 곁으로 돌아오라.

     

    772함 나와라
    기관조종실 장철희 이병 대답하라
    사병식당 이창기 원사 응답하라.

     

    우리가 내려간다
    SSU 팀이 내려갈 때까지 버티고 견뎌라.

     

    772함 수병은 응답하라
    호명하는 수병은 즉시 대답하기 바란다.

     

    남기훈 상사, 신선준 중사, 김종헌 중사,
    박보람 하사, 이상민 병장, 김선명 상병,
    강태민 일병, 심영빈 하사, 조정규 하사,
    정태준 이병, 박정훈 상병, 임재엽 하사,
    조지훈 일병, 김동진 하사, 정종율 중사,
    김태석 중사 최한권 상사, 박성균 하사,
    서대호 하사, 방일민 하사, 박석원 중사,
    이상민 병장, 차균석 하사, 정범구 상병,
    이상준 하사, 강현구 병장, 이상희 병장,
    이재민 병장, 안동엽 상병, 나현민 일병,
    조진영 하사, 문영욱 하사, 손수민 하사,
    김선호 일병, 민평기 중사, 강준 중사,
    최정환 중사, 김경수 중사, 문규석 중사

     

    호명된 수병은 즉시 귀환하라
    전선의 초계는 이제 전우들에게 맡기고
    오로지 살아서 귀환하라
    이것이 그대들에게 대한민국이 부여한 마지막 명령이다.

     

    대한민국을 보우하시는 하나님이시여,
    아직도 작전지역에 남아 있는
    우리 772함 수병을 구원하소서.

     

    우리 마흔 여섯 명의 대한의 아들들을
    차가운 해저에 외롭게 두지 마시고
    온 국민이 기다리는 따듯한 집으로 생환(生還)시켜 주소서
    부디 그렇게 해 주소서.

     

     

    6. 용광로 청년 추모시

     

    29살 청년이 용광로 작업 중 부주의로 섭씨 1600도에 달하는 쇳물에 빠져 사망한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용광로에 빠진 이 청년은 시신도 찾지 못했고 이에 한 네티즌이 용광로 청년의 추모시를 남겨 많은 이의 눈물샘을 자극했습니다.  


    광온(狂溫)에 청년이 사그라졌다.
    그 쇳물은 쓰지 마라.

     

    자동차를 만들지도 말것이며
    철근도 만들지 말것이며
    가로등도 만들지 말것이며
    못을 만들지도 말것이며
    바늘도 만들지 마라.

     

    모두 한이고 눈물인데 어떻게 쓰나?
    그 쇳물 쓰지 말고

     

    맘씨 좋은 조각가 불러
    살았을적 얼굴 흙으로 빚고
    쇳물 부어 빗물에 식거든
    정성으로 다듬어
    정문 앞에 세워 주게.

     

    가끔 엄마 찾아와
    내새끼 얼굴 한번 만져 보자. 하게.

     


    7. 축의금 만삼천원


    이철환 씨의 곰보빵 중 축의금 만삼천원이란 이야기가 많은 트위터리언들의 눈물샘을 자극했습니다. 절친한 친구의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해 아내 편으로 하루종일 사과를 판 돈 만 삼천원을 축의금과 사과를 보낸 친구의 이야기에 감동을 받은 분들이 많았습니다.


     

    10년 전, 나의 결혼식 날이었다.
    결혼식이 다 끝나도록 친구 형주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이럴 리가 없는데...
    정말 이럴 리가 없는데......
    예식장 로비에 서서 형주를 찾았지만
    끝끝내 형주는 보이지 않았다.

     

    바로 그때 형주 아내가 토막 숨을 몰아쉬며
    예식장 계단을 급히 올라왔다.
    "고속도로가 너무 막혀서 여덟 시간이 넘게 걸렸어요.
    어쩌나, 예식이 다 끝나 버렸네..."
    숨을 몰아쉬는 친구 아내의 이마에는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석민이 아빠는 오늘 못 왔어요. 죄송해요...
    석민이 아빠가 이 편지 전해 드리라고 했어요."
    친구 아내는 말도 맺기 전에 눈물부터 글썽였다.
    엄마의 낡은 외투를 덮고 등 뒤의 아가는 곤히 잠들어 있었다.

     

    철환아, 형주다. 나대신 아내가 간다.
    가난한 아내의 눈동자에 내 모습도 담아 보낸다.
    하루를 벌어 하루를 먹고 사는 리어카 사과 장수이기에
    이 좋은 날, 너와 함께 할 수 없음을 용서해다오.
    사과를 팔지 않으면 석민이가 오늘 밤 굶어야 한다.
    어제는 아침부터 밤 12시까지 사과를 팔았다.
    온종일 추위와 싸운 돈이 만 삼천 원이다.
    하지만 힘들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아지랑이 몽기몽기 피어오르던 날,
    흙 속을 뚫고 나오는 푸른 새싹을 바라보며,
    너와 함께 희망을 노래했던 시절이 내겐 있었으니까.
    나 지금, 눈물을 글썽이며 이 글을 쓰고 있지만 마음만은 기쁘다.

     

    '철환이 장가간다...
    철환이 장가간다...
    너무 기쁘다.'
    아내 손에 사과 한 봉지 들려 보낸다.
    지난 밤 노란 백열등 아래서 제일로 예쁜 놈들만 골라냈다.
    신혼여행 가서 먹어라.

     

    친구여, 오늘은 너의 날이다.
    이 좋은 날 너와 함께 할 수 없음을 마음 아파해다오.
    나는 항상 너와 함께 있다.

     

    해남에서 형주가..

     

    편지와 함께 들어 있던 만 원짜리 한 장과 천 원짜리 세 장....
    뇌성마비로 몸이 불편했던 형주가
    거리에 서서 한겨울 추위와 바꾼 돈이다.
    나는 웃으며 사과 한 개를 꺼냈다.

     

    "형주 이놈, 왜 사과를 보냈대요. 장사는 뭐로 하려고..."
    씻지도 않은 사과를 나는 우적우적 씹어댔다.
    왜 자꾸만 눈물이 나오는 것일까..
    새 신랑이 눈물 흘리면 안 되는데..
    다 떨어진 구두를 신고 있는 친구 아내가 마음 아파할 텐데...
    멀리서도 나를 보고 있을 친구 형주가 마음 아파할까봐
    엄마 등 뒤에서 잠든 아가가 마음 아파할까봐
    나는 이를 사려 물었다.

     

    하지만 참아도, 참아도 터져 나오는 울음이었다.
    참으면 참을수록 더 큰 소리로 터져 나오는 울음이었다.
    사람들 오가는 예식장 로비 한가운데 서서..

     

    형주는 지금 조그만 지방 읍내에서 서점을 하고 있다.
    '들꽃서점.'
    열 평도 안 되는 조그만 서점이지만,
    가난한 집 아이들이 편히 앉아 책을 읽을 수 있는
    나무 의자가 여덟 개다.
    그 조그만 서점에서
    내 책 '행복한 고물상' 저자 사인회를 하잖다.
    버스를 타고 남으로 남으로 여덟 시간을 달렸다.

     

    교보문고나 영풍문고에서
    많은 독자들에게 사인을 해줄 때와는 다른 행복이었다.
    정오부터 밤 9시까지 사인회는 아홉 시간이나 계속됐다.
    사인을 받은 사람은 일곱 명이었다.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친구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마음으로만 이야기했다.

     

    "형주야, 나도 너처럼 감나무가 되고 싶었어.
    살며시 웃으며 담장 너머로 손을 내미는
    사랑 많은 감나무가 되고 싶었어...."

     

    = 이철환 『곰보빵』중에서 =

     


    8. "나는 꼴찌였다", 어느 교수의 가슴뭉클한 이야기

     

    어느 대학 교수의 가슴 뭉클한 고백도 트위터리언 사이에 화제가 됐습니다. 이 교수는 중학교 1학년 때 전교에서 꼴찌를 했는데 성적표를 1등으로 위조해 아버님께 갖다 드렸습니다. 학생의 아버지는 아들이 전교 1등을 했다는 소식에 재산목록 1호인 돼지를 잡아 마을 사람들을 대접했다고 합니다. 이후 그 학생은 너무 죄스러운 마음에 이를 악물고 공부를 해 17년 후 대학 교수가 됐고 유명한 대학의 총장까지 하게 됩니다. 

     

    전교 68명중 68등이었다.
    지금도 비교적 가난한 곳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가정형편도 안되고
    머리도 안되는 나를 대구로 유학을 보냈다.
    대구중학을 다녔는데 공부가 하기 싫었다.
    1학년 8반, 석차는 68/68, 꼴찌를 했다.
    부끄러운 성적표를 가지고 고향에 가는 어린 마음에도 그 성적을 내밀 자신이 없었다.
    당신이 교육을 받지 못한 한을 자식을 통해 풀고자 했는데, 꼴찌라니...
    끼니를 제대로 잇지 못하는 소작농을 하면서도 아들을 중학교에 보낼 생각을 한 아버지를 떠올리면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잉크로 기록된 성적표를 1/68로 고쳐 아버지께 보여드렸다.
    아버지는 보통학교도 다니지 않았으므로 내가 1등으로 고친 성적표를 알아차리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다.
    대구로 유학한 아들이 집으로 왔으니 친지들이 몰려와 "찬석이는 공부를 잘 했더냐"고 물었다.
    아버지는, "앞으로 봐야제.. 이번에는 어쩌다 1등을 했는가 배.."했다.
    "명순(아버지)이는 자식 하나는 잘 뒀어. 1등을 했으면 책거리를 해야제" 했다.
    당시 우리집은 동네에서 가장 가난한 살림이었다.
    이튿날 강에서 멱을 감고 돌아오니, 아버지는 한 마리뿐인 돼지를 잡아 동네 사람들을 모아 놓고 잔치를 하고 있었다.
    그 돼지는 우리집 재산목록 1호였다.
    기가 막힌 일이 벌어진 것이다.
    "아부지..." 하고 불렀지만 다음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달려 나갔다.
    그 뒤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겁이 난 나는 강으로 가 죽어버리고 싶은 마음에 물속에서 숨을 안 쉬고 버티기도 했고, 주먹으로 내 머리를 내리치기도 했다.
    충격적인 그 사건 이후 나는 달라졌다.
    항상 그 일이 머리에 맴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17년 후 나는 대학교수가 되었다.
    그리고 나의 아들이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 그러니까 내 나이 45세가 되던 어느 날, 부모님 앞에 33년 전의 일을 사과하기 위해
    "어무이.., 저 중학교 1학년 때 1등은 요..." 하고 말을 시작하려고 하는데..
    옆에서 담배를 피우시던 아버지께서 "알고 있었다. 그만 해라. 민우(손자)가 듣는다."고 하셨다.
    자식의 위조한 성적을 알고도, 재산목록 1호인 돼지를 잡아 잔치를 하신 부모님 마음을,
    박사이고 교수이고 대학 총장인 나는,
    아직도 감히 알 수가 없다.

     

    - 전 경북대 총장 박찬석 -


     

    9. 프랑스 와인이름이 '남대문', 무슨 사연?

     

    프랑스의 유명 와인 이름이 '남대문'이고 라벨에는 '남대문의 그림'까지 들어 있어 많은 트위터리언들의 궁금증을 자아냈습니다. 숭례문의 모습과 함께 숭례문의 역사와 유래까지 상세히 적혀있는 라벨을 가진 이 와인은 2대째 와인 회사를 운영중인 프랑소와 게즈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지난 2005년 관광차 한국에 들렸던 게즈 사장은 숭례문의 위용과 아름다운 모습에 깊은 감명을 받았는데 지난 2008년 숭례문이 전소된 사실과 불탄 숭례문 앞에서 통곡하던 한국인의 모습에 감동을 받아 2008년부터 '남대문' 와인을 생산하게 됐다고 합니다.

     

     

     

    10. 2층에서 떨어지는 아기 구한 여고생

     

    두 살배기 남자아이가 창문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고 열여섯 살 여고생이 담벼락을 뛰어넘어 소중한 생명을 살린 사연도 네티즌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만들었습니다. 광문고 1학년에 재학 중인 김한슬 양은 두 살배기 아기가 2층 창문에 매달려있는 것을 보고 담벼락을 넘어 떨어지는 아기를 받아 아기의 목숨을 구했습니다.

     

     

    편집자 webmaster@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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