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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남, 대중의 마음은 그리지 못하고 있다.

    • • 조영남씨의 대작그림논란은 태도와 마음의 문제이다.
    가수 겸 방송인인 조영남(71)씨의 '대작(代作) 사건’이 이슈다. 조씨는 그림을 많이 그려왔다. 그것은 분명한 것 같다. 하지만 지금 문제가 되는 이슈에 대중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심정인지 그림을 그리지 못하고 있는게 분명하다. 조씨는 사건이 논쟁거리가 되면서 언론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표현했지만 그 표현의 방식에 대중들은 또다시 불신만 가지게 되었다. 

     

    "조수를 안 시키면 먹고살지 못하는 것 같아 먹고살게 해 주기 위해 쓸데없는 그림도 그리라고 했는데..."

     

    이 발언 자체가 조씨의 인격이 드러났다. 인격은 사람의 무늬다. 무늬는 한 해를 살면서 한 줄씩 만들어가는 나이의 무늬이고, 어떻게 한 해를 보냈냐에 따라 그려지는 그림이다. 사람은 저마다 인격이 다르다. 즉 자신이 살아온 세월에 어떤 내용의 그림을 그렸냐에 따라 그 인격의 무늬는 다른 것이다. '돈'을 가진 사람이 '돈'을 가지지 않은 사람에게 보이는 무시와 멸시는 일시적으로 견뎌낼 수는 있어도, 지속적인 아픔이 스스로 사라지지는 않는다. 결국 어떠한 방식으로든 드러나게 되어있다. '조수'라는 말의 주파수도 신뢰를 가지고 존중하면서 이야기를 할 때는 보조해주도 도와주는 의미를 가진 긍정의 단어이지만, 중심이 아닌 없어도 되는 존재라는 의미로 사용될 때는 부정의 늬앙스를 가진다. 더욱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 말은 '먹고살지 못하는 것 같아 먹고살게 해 주기 위해'라는 표현에서 조씨가 조수역할을 했다는 송씨에게 어떤 식으로 대했을지 눈에 선하게 그려진다. 내가 너를 먹고살게 해 주는 주인이다는 식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했을 것이다. 먹고, 자고, 입는 것은 본능에 해당한다. 본능에 대한 비언어적인 전달은 언어로 직접 전달하지 않지만 몸으로 받아들이는 방법에서는 더 직선적이다. 그래서 더욱 송씨의 마음에 아픈 상처가 남아 있었을 것이다. 조수역할을 했다는 송씨의 지인은 이렇게 말했다. 

     

    "오랫동안 겪은 인간적 모멸감이 폭발한 것 같다"

    이 말 속에 '모멸감'이라는 말과 '폭발'이라는 단어가 잔잔하게 머리속을 떠나지 않는다. 모멸감( )이란 '조롱할 모(侮)'와 '버릴 멸(蔑)'이 합쳐진 말에 '느낄 감'이 결합한 말이다. 전형적인 갑질하는 자가 보이는 모습이다. 폭발이란 '불이 일어나며 갑작스럽게 떠진다'는 뜻이다. 보통 사람과 사람 사이에 관계가 틀어지면 입을 통해 '화'를 낸다. 화(anger, 火 ) 체가 불이고 뜨거운 에너지다. 가슴에서 답답함으로 형성되는 이 에너지는 그대로 가슴에 남아있으면 위염, 간염 등과 같이 '염'으로 이어질 수도 있고, 더 심하면 다양한 질병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화병은 한의학에서 간의 생리 기능에 장애를 일으키고 머리와 옆구리의 통증이 오게 되고 가슴의 담담함으로 수명장애를 일으키는 병으로 보고 있다. 그림을 그리는 송씨와 방송인이자 가수인 조씨, 둘 모두가 예술가의 기질이라면 다른 일반인들보다 예민한 기질일 것이다. 그런 섬세하고 예민한 기질 두 명의 관계가 틀어졌을 때, 마음의 화를 조절하는 방법에 문제가 생겼을 가능성이 높다.

     

    가수는 노래를 부르며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지만 풀기도 한다. 화가는 그림을 그리면서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지만 풀어내는 도구로 사용한다. 그래서 예술가인 것이다. 그런 둘의 생각의 전달과 감정의 절달이 맞지 않았을 가능성은 전달방식이 작업실이라는 하나의 공간이 아니라 휴대폰과 같은 원격이었다는 것이다. 서로의 눈을 보고, 순간순간의 감정과 느낌을 얼굴을 보면서 전달해도 부족할텐데, 원격을 통해 의사소통하려고 했다는 것 자체가 문제다. 붓 터치 하나의 섬세함과, 색도의 섬세함에 따라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엄청난 차이를 보이는 것이 바로 예술이다. 그러한 예술 속에서 원격을 통해 이루어진 작품이라는 것 자체가 또하나의 '그림알파고'인 셈이다.

     

    대중들은 인문학의 영역에 알파고가 침범하는 것 자체에 거부감을 느끼고 있다. 특히 얼마전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대전에서 패하는 못습을 지켜보았기 때문에 대중의 마음 속에는 기계가 인간을 넘어설 수 있다는 불안감을 가지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술계마자 작가 스스로의 100% 독창적인 아이디어와 작가의 온몸을 통해 전달된 그림이 아닌, 단 일부라도 일명 조수라는 다른 그림 전문가의 손을 빌렸다면 작가의 머리를 빌린 알파고에 불과한 것이다. 아이디어는 많지만 실현할 수 없고, 공부는 하고 싶지만 사법고시는 폐지될 예정이고, 부르고 싶지만 임의 행진곡은 국가로 부터 무시되고, 국민은 듣고 싶고 이야기 나누고 싶지만 지시와 명령과 같은 결론만 내 뱉는 대통령까지... 약자에게는 어느하나 열려진 문이 없다.

     

    국민은 정치인들의 알파고가 아니다. 국민이 주인이고, 국민이 정치인들을 뽑아주는 주체이다. 마찬가지로 조영남씨의 그림에 대한 논란에서도 핵심은 조수가 아니다. 조영남씨의 태도와 말투 그리고 진정성 있는 사과와 고백이다. 이미 대중은 정확한 사실(fact)만 머리에 담는다. 그림을 온전히 100% 그리지 않았다는 것과 금전적으로 약자인 송씨가 한 점당 단 10만원만 받고 정신적으로 심적으로 멸시 당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 점에 대해서 오직 사과만 하더라도 대중 속에 '그려러니'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하지만 자신의 억울함과 자신의 입장에서 갑질의 태도만 일괄하는 조영남씨를 향해 불신만 더욱 싸일 것이다.

     

    by 이재연(국제문화대학원대학교 상담사회교육전공 주임교수 / 세종시 휴 아동청소년심리상담센터장)

    더생각 loving3025@naver.com
    국제문화대학원대학교 상담사회교육전공 주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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