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트푸드서 점점 늘어나는 '무인주문 시스템' 빛과 그림자

2017-02-22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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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맥도날드 정동점에 설치된 키오스크 / 위키트리 직장인 김송이(여·28) 씨는 점심시간

서울 맥도날드 정동점에 설치된 키오스크 / 위키트리

직장인 김송이(여·28) 씨는 점심시간에 맥도날드를 자주 이용한다. 김 씨는 요즘 카운터에서 직원을 마주 보며 주문을 하지 않는다. 최근 맥도날드에 고객 스스로 메뉴 검색‧주문‧결제를 할 수 있는 무인주문 시스템인 ‘키오스크’(Kiosk)가 설치됐기 때문이다. 그는 터치스크린 방식 메뉴판을 이용해 버튼 몇 개만으로 '1955버거' 세트를 시켰다.

김송이 씨는 “점심시간에 줄이 긴 경우가 많은데 키오스크를 이용하면 훨씬 빨리 주문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씨는 “느긋하게 메뉴를 보며 주문할 수 있어서 좋다”고 덧붙였다.

영화관, 병원, 공항에서나 볼 수 있었던 키오스크가 최근 외식업계에서 확산하고 있다. 맥도날드는 2015년 8월 프리미엄 버거 메뉴인 ‘시그니처 버거’를 49개 매장에 선보이며 키오스크를 도입했다. 전국 430여 개 매장을 운영하는 맥도날드는 올해 상반기까지 키오스크 시스템을 250여 개 곳으로 늘릴 계획이다.

롯데리아도 2014년부터 무인 결제가 가능한 키오스크를 도입했다. 현재 전국 1300여 개 매장 가운데 460여 개 매장에서 운영하고 있다. 버거킹도 268개 매장 가운데 47개 매장에 키오스크를 설치했다. 패스트푸드점 외에도 미정국수, 역전우동 등 일부 식당들도 키오스크 시스템을 적용했다.

패스트푸드 업계의 키오스크 도입은 세계적인 추세다. 미국 맥도날드는 기존 500여 개 키오스크 매장을 1만 4000여 개 매장으로 늘릴 계획을 지난해 11월 발표했다. 미국 패스트푸드 업체 웬디스, 칼스 주니어, 하디스도 키오스크 매장을 적극적으로 늘리고 있다.

스티브 이스터브룩(Steve Easterbrook) 맥도날드 최고경영자(CEO)가 지난해 11월 뉴욕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키오스크를 시연하고 있다 / 뉴욕 = 로이터 뉴스1

키오스크 전문 업체 ‘올레 키오스크’가 2015년 미국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소비자 55%는 키오스크를 이용하는 이유로 ‘줄을 서지 않아도 된다’고 답했다. 소비자 13%는 ‘사생활 보호’를, 12%는 ‘계산대 직원과 안 만나도 돼서’라고 각각 응답했다.

이 설문조사처럼 많은 소비자들은 키오스크 장점으로 훨씬 짧아진 대기시간을 꼽는다. 사람이 많이 몰리는 점심시간에 긴 줄을 기다릴 필요가 없이 키오스크를 이용해 빨리 주문할 수 있다. 종업원은 일일이 거스름돈을 세거나 고객에게 영수증을 줄 필요도 없다.

카운터 직원을 대면하지 않는 것을 장점으로 언급하는 사람도 있다. 직장인 권택민(남·27) 씨는 “낯을 가리는 성격인데 사람을 안 마주쳐도 되는 점이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패스트푸드 업체가 키오스크 시스템를 운영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인건비 절감’이다. 지난해 6월 미국 패스트푸드 업체 웬디스는 점점 높아지는 인건비 때문에 키오스크를 매장에 설치한다고 밝혔다. 토드 페네고(Todd Penegor) 웬디스 총괄책임자(CFO)는 “셀프 주문 시스템인 키오스크와 모바일 주문으로 모든 매장에 더 많은 노동 효율성을 창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웬디스는 1969년 미국 오하이오 주 콜럼버스에서 데이비드 토머스가 설립한 세계적인 패스트푸드 체인점이다. 웬디스는 맥도날드, 버거킹 뒤를 이어 세번째로 전 세계에서 매장수가 많은 패스트푸드 체인점으로 꼽힌다 / 셔터스톡

미국 주요 패스트푸드 업계는 지난해 6월 키오스크 설치를 선언했다. 캘리포니아 주가 시간당 최저 임금인 10달러(약 1만 1000원)를 2022년까지 15달러(약 1만 7000원)로 인상하는 법안을 그해 4월에 통과시킨 뒤다. 당시 뉴욕 주, 워싱턴 D.C도 최저 임금 인상에 동참했다.

앤디 퍼즈더(Andy Puzder) 칼스 주니어·하디스 최고경영자(CEO)는 매장 직원을 볼 수 없는 자동화 레스토랑을 꿈꾼다고 미국 비즈니스 인사이더(BI) 인터뷰에서 밝혔다.

퍼즈더 CEO는 “사람을 고용하면 많은 돈이 들 것이다. 자동화는 그에 비하면 덜 비싸다”고 매체에 말했다. 그는 이어 “정부가 최저임금을 올리면, 일자리 수가 줄어든다. 공항이나 식료품점뿐만 아니라, 레스토랑에서도 자동화 시스템을 보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미국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인 지난해 12월 8일 앤디 퍼즈더 CEO를 미국 노동부 장관으로 내정했다. 그러나 많은 패스트푸드 노동자들이 퍼즈더 CEO의 노동부 장관 인준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고 결국 퍼즈더 CEO는 임명 철회됐다 / 베드민스터 = 로이터 뉴스1

국내 패스트푸드 업체들은 미국과 다르게 키오스크 설치가 인건비 절감이 아닌 '고객 편의'를 위해서라고 밝혔다. 버거킹 관계자는 “고객 편의성 증대를 위해 키오스크를 도입했다”고 전했다.

한국 맥도날드는 시그니처 버거를 운영하는 매장에 키오스크 시스템이 생긴 뒤 오히려 매장마다 직원 수가 늘어났다고 밝혔다. 맥도날드 관계자는 “카운터 직원 수는 전혀 변동이 없다. 시그니처 버거가 판매되는 '미래형 매장'에는 추가적인 인원이 배치돼 오히려 직원 수가 늘었다”고 말했다.

알바노조 관계자는 “키오스크 시스템이 들어온 뒤 몇몇 맥도날드 직원들은 ‘큰 차이를 못 느끼겠다’더라”며 최근 맥도날드 분위기를 전했다. 알바노조는 2013년 알바생 권리 보장을 위해 설립된 단체다.

롯데리아 관계자는 맥도날드와 달리 롯데리아가 가맹점 개념이기 때문에 매장마다 인건비가 줄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는 입장을 전했다. 그는 “키오스크 덕분에 사람이 몰리는 시간에 직원들의 업무 부담이 감소했다”고 말했다.

단 국내 키오스크 업체들은 인건비 절감을 이유로 키오스크를 홍보하고 있다. 롯데리아·버거킹 키오스크를 제작하는 업체 시아이테크 솔루션은 “키오스크의 장점은 인건비 절감효과”라고 자사의 홈페이지에서 밝혔다.

전문가들은 국내에서도 최저임금 인상과 맞물려 키오스크가 더 보급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이병훈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기업이) 직원을 키오스크나 로봇으로 대체하는 것은 인건비 절감 때문일 수도 있다. 기업은 최저임금 인상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사람을 고용하면 사회복지비용이 들어가거나 노동조합을 만들 수도 있다. 기업은 이런 상황을 피하고 싶어 한다. 몇몇 아파트에서는 임금상승을 이유로 경비원을 해고하고 폐쇄회로(CC) TV로 대체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저널리스트 크레이그 램버트(Craig Lambert)는 저서 ‘그림자 노동의 역습’에서 키오스크나 로봇 같은 테크놀로지가 사람들의 일자리를 줄인다고 주장했다.

크레이그 램버트는 키오스크나 로봇들이 젊은이들의 일자리를 빼앗는다고 주장한다 / 셔터스톡

오스트리아 철학자 이반 일리히(Ivan Illich)가 처음 주장한 ‘그림자 노동’이란 보수를 받지 않고 소비자가 당연히 하는 것으로 포장된 노동을 뜻한다. 직원이 주문을 받는 대신 고객이 키오스크를 이용해 직접 주문하는 것도 ‘그림자 노동’에 속한다.

램버트는 키오스크로 인한 그림자 노동에 대해 “다양한 경력의 기점이 되는 초보적인 일자리를 없애고 있다. 경제 피라미드 맨 밑에 위치한 이 일자리들은 급료가 많지는 않지만 그 위에 있는 모든 것의 기초를 이루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어떠한 구조든 토대가 무너지면 상부구조가 무너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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