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공산국가냐, 왜 싸게 못 주냐?”신도림·강변 휴대폰 상가 체험기

2017-11-07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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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차만별 지급되는 '불법 보조금'을 누가, 어떻게, 왜 지급하는지 알아봤다

지난달 28일(토) 위키트리가 신도림 테크노마트 6층 집단상가를 찾아 휴대폰 구매과정을 체험했다.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이하 단통법)이 시행된 지 3년, 지난달부터 단통법 핵심 조항이었던 ‘공시지원금 상한제’가 폐지됐다. ‘공시지원금 상한제’란 통신사가 신규 휴대폰에 대해 제공하는 지원금(공시지원금)을 일정액 이상으로 올리지 못하도록 하는 제도다.

SNS에서는 '공시지원금 상한제'가 폐지되니 이제 공식적으로 많은 지원금을 받고 휴대폰을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공시지원금이 늘면 유통점이 암암리에 제공해온 불법보조금도 줄어들 것이라는 분석도 많았다.

정말 공시지원금은 늘고, 불법보조금은 사라졌을까? 서울시 휴대폰 '성지'로 불리는 신도림과 강변 테크노마트 상가를 찾았다.

◈ "어디까지 보셨어요?" 천차만별 지급되는 '불법 보조금'

지난달 28일(토) 신도림 테크노마트 6층에 위치한 휴대폰 집단상가.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1m도 채 안 되는 간격을 두고 수많은 판매점들이 눈에 띄었다. 좁은 통로 사이사이는 간이의자에 앉아 휴대폰 상담을 받는 손님들로 가득했다. 장내는 판매점 직원과 손님이 나누는 말로 시끌벅적했다.

몇 걸음을 떼자마자 한 판매점 직원이 기자를 불렀다. "찾는 휴대폰 기종 있으세요?" 기자는 발걸음을 멈추고 "갤럭시 노트 8(64G)요"라고 말했다.

휴대폰을 새로 구입할 때 선택해야할 사항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통신사를 유지한 채 휴대폰 기기만 바꾸는 '기기변경', 통신사와 기기를 동시에 바꾸는 '번호이동', 새 번호로 개통하는 '신규가입' 중 하나를 택하는 것이다.

둘째는 통신사가 단말기 값 일부를 지원하는 '공시지원금' 제도와 단말기 값 대신 매월 통신 요금을 25% 할인해주는 '선택약정제도' 중 하나를 고르는 것이다.

기자는 SK텔레콤에서 LG 유플러스로 '번호이동'을 하고, 통신사에서 '공시지원금'을 받겠다고 말했다. 직원은 "어디까지 알아보셨어요?"라고 물으며 계산기를 건넸다. 마침 상담을 받는 판매대에 써 붙여진 '가격 언급 절대 금지'라는 문구가 보였다.

처음 방문했다는 기자 대답에 직원은 정체 모를 표가 그려진 서류를 뒤적였다. 계산기에 60만원(이하 현금 완납 기준, 공시지원금을 포함한 단말기 가격)을 두드려 조용히 기자에게 보여줬다. 직원은 "59 요금제(데이터 스페셜 A 요금제, 부가세 포함 6만 5890원) 6개월 유지해주시고, 부가서비스 만 원짜리 한 달간만 유지해주세요"라고 조건을 붙였다.

신도림 테크노마트 휴대폰 집단상가 판매점에서 기자가 직원이 건넨 계산기에 알아온 가격을 입력하고 있다. / 차형조 기자
신도림 테크노마트 휴대폰 집단상가 판매점에서 기자가 직원이 건넨 계산기에 알아온 가격을 입력하고 있다. / 차형조 기자

기자는 이후 방문한 판매점에서 "어디까지 알아보셨어요?"라는 직원 질문에 앞선 가게가 언급한 가격을 '선 제시'했다. 판매점은 '선 제시' 한 금액보다 낮은 금액으로 기자를 유혹했다. 이러한 행동을 몇 차례 반복하자 단말기 가격은 49만 원까지 내려갔다.

"어디까지 알아보셨어요?"에는 '불법 보조금'이라는 속뜻이 숨어 있었다. 현행법상 유통점(대리점 또는 판매점)은 통신사가 제공하는 '공시지원금'에서 15%까지만 추가로 보조할 수 있다. 그 이상 깎아주는 건 불법이다.

사용하는 요금제에 따라 공시지원금과 추가지원금 액수는 달라진다. 예컨대 LG유플러스에서 '데이터 스페셜 A' 요금제를 사용하는 경우, 공시지원금 15만 9000원, 추가지원금은 15%인 2만 3850원이다. 이 조건에서 구매자가 합법적으로 받을 수 있는 지원 금액은 총 18만 2850원이다. 이날 기자가 방문한 판매점들은 약 31만 원에서 많게는 약 42만 원까지 불법보조금을 지급하고 있었다.

무작위 방문한 신도림 테크노마트 판매점 5곳 단말기 가격
무작위 방문한 신도림 테크노마트 판매점 5곳 단말기 가격

'공시지원금 상한제'가 폐지된 10월 1일 이후 기존 상한선이었던 지원금 33만원보다 많은 금액을 지원하는 휴대폰은 KT 전용폰 '갤럭시 J7' 2017년형 뿐이었다. 최신 핸드폰은 10월 전후로 공시지원금 수준이 같았다.

공시지원금이 오르지도, 불법 보조금이 사라지지도 않은 것이다.

◈ 불법 보조금 지급이 가능한 이유

우리나라 핸드폰 유통구조는 복잡하다. 먼저 단말기 제조사(삼성전자, LG전자, 애플 등)가 스마트 폰을 생산하고, 이동통신사(SK텔레콤, KT, LG유플러스)는 이동통신 서비스를 제공한다. 유통점(대리점 및 판매점)이 이 둘을 결합해 판매한다. 외국과 달리, 단말기와 이동통신 서비스를 별개로 판매하지 않는다.

문제는 유통점 수익구조에서 출발한다. 단말기 유통점들은 고정적인 수익을 보장받는 게 아니다. 휴대폰 단말기 1대를 판매할 때마다 통신사로부터 판매 장려금(리베이트)을 받는다. 여기서 일부 유통점들이 더 많은 손님을 끌어모으기 위해 리베이트를 소비자들과 나눠 가진다. 이들이 손님들에게 지급하는 금액은 보통 통신사 '공시지원금에서 15%'를 초과하기에 '불법 보조금'이라 불린다.

윤문용 녹색소비자연대 ICT 정책국장은 "판매점이 고정적인 수입을 가질 수 없는 현행 구조에선 불법 보조금이 사라질 수 없다"고 말했다.

윤 국장은 신도림이나 강변 등 집단상가에서 특정 기간에 많은 불법보조금이 지급되는 이유도 설명했다. 그는 "통신사가 특정 요금제에 특정 단말기를 판매했을 때 평소보다 많은 리베이트(불법 스팟성 리베이트)를 제공하기도 한다"라고 설명했다.

'공시지원금 상한제' 폐지 이후 공시지원금이 오르지 않는 이유도 있었다. 윤 국장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고시에 따라 통신사는 공시지원금을 올릴 경우, 선택약정 지원 금액도 올려야 한다"고 했다. 통신사 입장에서 비용을 들여가며 자충수를 둘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 "누구 로비를 받아서 만든 단통법인지 모르겠다"

지난달 28일 오후 강변 테크노마트 6층 휴대폰 집단상가 풍경 / 차형조 기자
지난달 28일 오후 강변 테크노마트 6층 휴대폰 집단상가 풍경 / 차형조 기자

신도림과 강변 상가를 방문한 시민 10중 8, 9는 기자 인터뷰 요청을 피했다. 인터뷰에 응하더라도 "주위에 카메라가 찍고 있는 것은 아닌지", "개인 신상정보가 노출되는 건 아닌지"를 거듭 확인하곤 했다. '갤럭시 노트 8'을 구입한 한 30대 여성은 인터뷰 도중 기자가 단말기 구매 가격을 묻자 "그런 거 위(판매점)에서 말하지 말랬다"라면서 급히 자리를 떴다.

인터뷰를 응해준 6명 시민은 모두 자신이 불법보조금을 받은 사실을 인정했다. 신도림에서 만난 20대 초반 남성 A 씨는 "SK(텔레콤)에서 기기변경을 하고 선택약정 할인을 받아 LG 'V30'을 샀다"라며 "(판매점에서) 13만 원 정도 보조금을 받았다"라고 속삭였다.

강변에서 만난 20대 후반 남성 B 씨는 "삼성 '갤럭시S 8 플러스(64G)'를 구매했다"라면서 "LG에서 KT로 번호 이동하고 선택약정 할인을 받았다"라고 했다. 그는 "'65.8 요금제' 3개월을 사용하고, 1만 2600원 상당 부가서비스를 한 달 동안 유지하는 조건으로 (기계를) 53만 5000원에 구매했다"라고 덧붙였다. '갤럭시S 8 플러스' 출고가가 99만 원임을 고려했을 때 45만 원가량이 불법 보조금으로 지급된 것이다.

인터뷰에 응한 시민은 평균 판매점 7곳을 둘러본 후 구매를 결정했다. 신도림에서 '삼성 갤럭시 S7'을 구매한 20대 후반 여성 C 씨는 "여덟 군데를 돌았는데 기곗값이 제가 산 가격 5만 원부터 30만 원까지 다양하게 있었다"라고 말했다.

시민들은 현행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에 대한 불만도 드러냈다. 남성 B 씨는 "누구의 로비를 받았는지 정말 말도 안 되는 법을 만들어 놨다"면서 "사고팔겠다는 사람이 있는데 자율 경쟁 시장에서 이게 말이나 되는 일이냐"라고 격하게 반응했다. 강변에서 엘지 V30을 구입한 20대 후반 여성 D 씨는 "이왕이면 싸게 사는 게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라면서 "그것보다는 단말기 가격 자체에 거품을 빼줬으면 좋겠다"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 판매점주 "여기가 공산국가냐, 싸게 주고 싶은데 왜 싸게 못 주냐?"

판매점주들도 불법 보조금이 공공연하게 오가는 사실을 인정했다. 강변 테크노마트 휴대폰 집단상가에서 일하고 있는 판매점 업주 E 씨는 "소비자들이 단돈 만 원이라도 싸게 사려고 이곳에 오는 건 사실이다"라고 운을 뗐다. 이어 그는 "(불법 보조금을) 안 주는 쪽으로는 불가능하다. 보조금을 주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100% 거짓말"이라고 말했다.

판매점주들은 소비자들에게 박리다매로 휴대폰을 공급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같은 장소에서 판매점을 운영하는 F 씨는 "(업주들은) 휴대폰 한 대 기준으로 적게는 1만 원에서 20만 원 이상까지 다양하게 (이윤을) 남긴다"라고 답했다. 그는 이어 "손님도 많을 뿐더러, 많은 업체들이 서로 경쟁을 하다보니 자연히 가격은 내려가는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E 씨 역시 "박리다매로 판다는 말이 적절하다"라고 전했다.

판매점주들은 현행 단통법에 대해서도 강한 불만을 표했다. E 씨는 "이게 공산국가가 아닙니까? 싸게 주고 싶은데 왜 싸게 못 주는 거에요? 세탁기도 만원이라도 싼 집을 찾아가는 마당에…"라고 호소했다.

그는 현재 통신사가 유통점에게 주는 판매장려금은 합법인데, 이를 유통점이 손님에게 나눠주는 행위를 불법으로 규정한 것은 모순이라고 주장했다. 고정적인 수입이 없는 판매점주들이 자신 수익을 나눠 손님을 유치하는 행위는 현 구조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 단언했다.

현재 불법 보조금 지급으로 (단통법 제 3조, 지원금 차별 금지조항) 판매점들에게 부과되는 과태료는 100만 원(영세유통업자 기준, 1회 위반시)부터 1000만 원까지(4회 위반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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