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팬이라면 강추!” 장면별로 보는 창작 판소리 뮤지컬 ‘적벽’

2018-04-04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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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에서는 이미 입소문이 뜨겁다.

이하 정동극장 제공
이하 정동극장 제공

판소리 적벽가를 역동적인 군무와 함께 현대적으로 풀어낸 공연 '적벽'이 2018년 버전으로 다시 돌아왔다.

'적벽'은 현재 전해지는 조선시대 판소리 다섯 바탕 중 하나인 적벽가를 토대로 만든 창작 뮤지컬이다. 지난해 정동극장이 처음 선보인 후 올해 새롭게 업그레이드 돼 오는 15일까지 정동극장에서 상연되고 있다.

원작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적벽대전이 주요 배경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삼국지 영웅 유비-관우-장비와 조조, 제갈공명, 조자룡 등 여러 인물들이 등장한다. 도원결의부터 삼고초려, 적벽대전과 화용도까지 스토리를 압축적으로 담고 있어 삼국지 팬이라면 흥미롭게 볼 만한 장면들이 많다.

특히 올해 버전은 지난해 버전과 달리 더욱 화려한 색감과 모던한 무대 구성으로 관객들을 새롭게 맞이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진시황릉 무덤에서 시작해 전반적으로 무채색이었지만 올해에는 하얀 색과 붉은 색을 많이 썼다. 또 힙합과 스트릿댄스, 현대무용을 이용해 빠른 리듬을 부여하는 한편 배우들 중 판소리 전공자 비중을 높여 음악적 전달력을 높이는 데도 신경을 썼다.

김봉순 안무가는 "흘러가는 리듬만 하던 배우들이 끊어지는 리듬을 하려 하니 적응하기 어려웠는데 워낙 젊은 친구들이고 끼가 많아서 그런지 즐기며 잘 해내더라"라고 말했다.

온라인에서는 '적벽'에 대한 입소문이 뜨겁다. 인터파크 예매 홈페이지에 많은 관람객들이 호평을 남겼다. "90분 내내 시선을 뗄 수 없었다", "화려한 군무와 판소리 합창에 저절로 박수갈채가 쏟아진다", "부채가 흔들릴 때마다 제 마음도 미친듯이 흔들렸다" 등 재밌었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인터파크 홈페이지
인터파크 홈페이지

관람객들을 사로잡은 '적벽'의 비결은 무엇일까. 김봉순 안무가는 "판소리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데 집중했다"라며 "그 중에서도 우리가 백미로 꼽는 장면은 동남풍부터 조자룡이 활 쏘는 장면까지다. 적벽대전 장면도 강한 인상을 줄 수 있게 소품과 세트를 연결해 신경을 썼다. 도원결의를 다시 한 번 다짐하는 마지막 장면도 테마곡인 만큼 매우 중요했다"라고 말했다.

여기 '적벽'에서 볼 수 있는 명장면을 정리해봤다. 한나라 말엽 혼란스러운 시대 상황이 영상으로 나오면서 시작하고, 도원결의부터 화용도까지 크게 8가지 장면으로 구성된다. 그 중에서도 눈 여겨 볼 만한 장면 세 가지를 준비했다.

#1. 삼고초려 - 장비(익덕)의 분노

이하 정동극장 제공
이하 정동극장 제공

유비(현덕)가 제갈공명을 얻으러 직접 발걸음을 했지만 공명은 핑계를 대며 만나주지 않는다. 성질 급한 익덕은 씩씩거리며 "이 무례한 자를 당장 끌어내야 한다"며 불평을 터뜨린다.

풍채가 남다른 익덕이 팔자걸음을 걸으며 씩씩거리다 분노를 힙합으로 승화시키는 장면이 단연 눈길을 끈다. 빠른 리듬에 척척 떨어지는 칼군무도 놀랍지만 익덕을 맡은 배우가 일견 개그맨 조세호 씨와 비슷한 분위기를 자아내 더욱 흥미롭다. 김봉순 안무가는 "(익덕 역할 배우는) 작년에 강호동 씨나 가수 싸이를 닮았다는 얘기도 들었다. 아예 체형에서 장비 느낌이 나온다"라고 귀뜸했다.

#2. 적벽대전 - 동남풍이 불고 조조의 군선이 불타는 장면

'따그닥, 따그닥, 따그닥' 주유가 보낸 두 장수가 말을 타고 급히 제갈공명을 쫓는다.

'휙휙, 쉬웅쉬웅' 소매가 쉴 새 없이 펄럭이며 동남풍이 몰아친다.

'스윽, 스윽' 으슥한 밤 황개가 탄 배가 조조군으로 들어선다.

'화르르르르르' 붉은 불꽃비가 무수하게 쏟아진다. 조조의 병사들은 추풍낙엽처럼 무력하게 스러진다.

단연 하이라이트라고 할 만큼 스펙타클한 장면의 연속이다. 무대엔 말이 없는데 배우들은 말을 타고 있고, 배가 없는데 조용한 물살을 따라 나아가는 배가 보인다. 불꽃 하나 없이도 조조의 군영은 활활 타오른다. 의상과 소품, 조명, 연기, 안무가 종합적으로 만들어내는 상상 속 환영이다. 배우 열 아홉 명만으로도 실감 나는 전쟁씬 연출이 가능함을 보여준다.

#3. 군사점고 - 병사들의 설움

조조는 비겁한 압제자로 전락하고, 평민 군사들에게 조롱받는다. 원본 '삼국지연의'에는 없는 내용이지만 판소리 장르 특성상 한국적인 버전으로 적벽가에서 재창조된 장면이다.

패전으로 여기 저기 부상을 입고 힘겨워하는 병사들 모습이 묘사된다. 조조가 부상병들을 토사구팽하듯 버리려 하자 반발이 인다. 병사들은 노골적으로 조조를 비꼬고 놀린다.

"너는 전장에 잃은 것은 없느냐?"

"예 잃은 건 별로 없소"

"야 그 놈 신통헌 놈이로구나 말은 다 어쨌느냐?"

"팔았지요"

"야 이 놈아 말 없으면 무엇을 타고 간단 말이냐"

"아따 원 승상님도, 타고갈 건 걱정 마시오 들것에다 담아메고 가든지 정 편케 가실량이면 지게에다 짊어지고 설렁설렁 가면 짐 붓고 더욱 좋지요"

"야 이 놈아 내가 앉은 뱅이 의원이냐 지게에다 지고 가게. 기 놈 눈구녁 뽄이 큰 일 낼 놈이로고."

"눈이사 승상님 눈이 더 큰 일 내게 생겼지라"

- 적벽가 '군사점고' 중 (출처: (사)한국판소리보존회)

김봉순 안무가는 "'삼국지'는 영웅들의 이야기이지만 적벽가는 패잔병들의 이야기다. 그 패잔병들은 우리가 하고자 하는 것, 옳은 것은 무엇인지 질문한다. 2016년 촛불집회에서도 나왔듯이 (평범한 사람들이) 시대를 바꿔보자는 이야기이지 영웅을 만들어내는 이야기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우리가 정말 옳은 걸 옳다고 얘기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유관장 세 사람의 도원결의는 '우리도 할 수 있어, 우리도 한 번 가봐' 이런 부분을 얘기하는 것 아닐까 싶었다. 남들이 'No'할 때 우리는 'Yes'를 하는 것. 하지만 한 사람이 'Yes'를 하는 것과 세 사람이 'Yes'를 하는 것은 너무 다르다. 내 주변에 나와 같은 의지를 갖고 '그래, 네 말이 맞아'라고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그리고 그것이 옳다면 결국 민중들도 따라가리라 이런 의미가 아닐까 생각한다."

정동극장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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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Jeongdong Theater 정동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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