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 월드컵 총정리” 인물로 본 역대 월드컵 (영상)

2018-06-12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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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일 종목으로 축구만큼 전 세계인을 사로잡는 스포츠는 드물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서 우승한 독일 대표팀 / 피파 공식 홈페이지
2014년 브라질 월드컵서 우승한 독일 대표팀 / 피파 공식 홈페이지

4년 마다 돌아오는 세계인의 축제 월드컵. 올림픽과 월드컵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가장 큰 차이점은 단일 종목으로 전 세계인을 사로잡는다는 것이다.

1930년 제1회 대회부터 지난 2014년 제20회 브라질 월드컵까지 축구사를 빛냈던 선수들을 통해 월드컵 역사를 정리해본다.

1. 1930년 제1회 우루과이 월드컵

국제축구연맹(FIFA)이 주관한 첫 번째 월드컵은 남미 우루과이에서 열렸다. 1930년 7월 13일부터 30일까지 18일간 개최됐다. 우루과이가 초대 우승국이 됐고 아르헨티나가 준우승을 차지했다.

유튜브, FIFATV

줄리메(Jules Rimet)

1904년 프랑스, 네덜란드, 스페인 등 7개국이 모여 국제축구연맹을 만들었다. 줄리메는 국제축구연맹 창설에 직접 관여하진 않았지만 꾸준히 관심을 보였다.

줄리메컵을 전해주는 줄리메 회장 / 피파 공식 홈페이지
줄리메컵을 전해주는 줄리메 회장 / 피파 공식 홈페이지

1919년 프랑스 축구연맹(FFF)이 창설되고 회장을 맡는다. 그는 1921년 피파 제3대 회장을 맡게 된다. 제1회 대회부터 쓰인 우승컵은 프랑스 조각가 아벨 라플레르(Abel LaFleur)가 순금으로 제작했다. 피파는 월드컵 축구대회 창시자 줄리메를 기리며 '줄리메컵'으로 이름붙였다.

2. 1934년 제2회 이탈리아 월드컵

초대 월드컵이 남미 우루과이에서 개최돼 제2회 대회는 유럽에서 열자는 의견이 많았다. 원래 스웨덴이 개최하기로 되어있었지만 대공황 여파로 자진해서 사퇴하자 이탈리아에서 개최되게 된다.

피파는 당시 이탈리아를 통치하던 베니토 무솔리니(Benito Mussolini)를 염려해 이탈리아 개최에 난색을 표했으나 어쩔 수 없이 개회권을 주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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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개국이 참가했지만 지난해 우승국 우루과이가 불참하고 강호들이 대거 빠지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무솔리니는 월드컵을 체제 홍보수단으로 이용했다. 2년 후 히틀러가 베를린 올림픽에서 무솔리니를 그대로 따라 하기도 했다. 결승에서 체코슬로바키아를 2 대 1로 이긴 이탈리아가 우승했다.

주세페 메아짜(Giuseppe Meazza)

주세페 메아짜의 이름은 이탈리아 축구 역사에 영원히 기록돼 있다. 이탈리아는 독재자 무솔리니 주도하에 엄청난 우승 의지를 보였다.

하지만 대표팀에 있던 지역감정이 조직력을 쌓는데 방해요소가 되고 있었다. 메아짜는 토리노 출신 유벤투스 선수들을 다독이며 이탈리아를 '원 팀(One Team)'으로 만들었다.

쥬세페 메아짜 / 인테르 공식 홈페이지
쥬세페 메아짜 / 인테르 공식 홈페이지

조국에게 1934년 월드컵 우승을 가져다줬다. 이탈리아 우승에 다른 국가들은 "파시스트 국가에서 심판을 매수했다"는 비난하기도 했다.

1980년 산 시로(San Siro) 구장을 소유하고 있던 밀란 시는 68세를 일기로 사망한 메아짜를 기리기 위해 구장 이름을 바꾼다. 193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우승하며 논란을 잠재웠다.

3. 1954년 제5회 스위스 월드컵

피파 창설 50주년을 맞아 피파 본부가 위치한 스위스에서 열린 월드컵이다. 우리나라가 역사상 처음으로 참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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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조별리그-토너먼트' 방식이 적용된 대회다. 역대 최다인 총 45개국이 참가 신청해 16개국이 참여했다. 서독이 우승했지만 대회 내내 관심을 끈 것은 '무적의 마자르'로 불린 준우승팀 헝가리였다.

페렌츠 푸스카스(Ferenc Puskas)

그는 1950년대 유럽 축구를 이끈 헝가리 대표팀의 에이스였다. '왼발의 마술사'로 불리며 조국 헝가리의 월드컵 준우승을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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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승전에서 서독에 패배했지만 대회 전체에서 엄청난 활약을 보이며 MVP를 차지했다. 1958년 레알 마드리드에서 뛰며 레알 전성기를 이끌기도 했다.

푸스카스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피파는 그의 이름을 딴 상을 제정했다. 2009년부터 한 해 동안 가장 멋진 골을 넣은 선수에게‘푸스카스상(FIFA Puskas Award)’을 수여하고 있다

4. 1958년 제6회 스웨덴 월드컵

동서냉전 영향으로 지난 대회 스위스에 이어 중립국 스웨덴서 개최된 대회다. 58년 월드컵에서 축구 역사에 길이 남을 선수가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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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스트 퐁텐(Just Fontaine)이 13골을 득점하며 역대 월드컵 한 대회 최다 골 기록을 세웠고 이 기록은 현재도 깨지지 않고 있다. 소련의 전설적 골키퍼 레프 야신(Lev Yashin)이 펠레와 함께 데뷔했다.

펠레(Pele)

대회 MVP를 차지한 디디(Didi)와 가린샤(Garrincha) 등 스웨덴 월드컵을 빛낸 브라질 선수들은 많았다.

그 중에서 가장 빛난 별은 17세 소년 펠레(Pele)였다. 그는 가린샤, 디디와와 함께 환상적인 삼각 편대를 이뤄 브라질 공격을 이끌었다. 펠레는 결승전에서 두 골을 터뜨리며 전세계를 사로잡았다.

5. 1962년 제7회 칠레 월드컵

1960년 대지진으로 개최국 칠레 월드컵이 불가능할 것으로 보였지만 불굴의 의지로 대회를 준비한 칠레는 전 세계 국가들을 초청했다.

가린샤를 중심으로 펠레의 부상 공백을 잘 메운 브라질이 체코슬로바키아를 꺾고 우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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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린샤(Manuel Francisco dos Santos)

가린샤는 피파 선정 역대 드리블러 1위에 뽑힌 선수이면서 62년 브라질의 월드컵 우승을 이끈 주역이다. 그는 어린 시절 소아마비를 겪어 신체적인 결함이 있었고 지능도 부족해 초등학생 수준의 언어를 구사했다.

그는 스웨덴 월드컵서 4골을 기록해 최다 득점 선수와 MVP를 동시에 거머쥐었다. 이후 유명세를 견디지 못해 알코올 중독과 연이은 부상으로 예전 기량을 찾지 못했다.

1962년 월드컵서 가린샤는 칠레와 4강전에서 두 골을 넣고 퇴장당했다. 언론은 이후 득점한 선수가 퇴장당하면 "가린샤 클럽에 가입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하석주 선수는 1998년 멕시코 경기에서 프리킥 득점 후 퇴장당해 가린샤 클럽 두 번째 회원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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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1974년 제10회 서독 월드컵

1970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브라질이 통산 3회 우승하며 '줄리메컵'을 영구소장하게 됐다. 서독 월드컵은 현재 우승팀에게 수여되고 있는 '피파월드컵'이 처음 주어진 대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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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도 '줄리메컵 세계축구선수권대회'에서 '피파월드컵'으로 정식 변경됐다. 서독이 네덜란드를 이기고 통산 두 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요한 크루이프(Johan Cruyff)

'게르만 폭격기' 게르트 뮐러(Gerd Muller)와 '카이저' 프란츠 베켄바워(Franz Anton Beckenbauer)의 활약으로 서독이 우승했지만 MVP는 요한 크루이프(Johan Cruyff)가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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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이프는 '토털축구의 아버지'로 불리는 리누스 미셸(Rinus Michels) 감독의 전술과 철학을 그라운드에서 재현했다. 비록 준우승에 그쳤지만 토털축구는 축구 전술에 큰 영향을 끼쳤고 공간의 중요성이 강조되기 시작했다.

그는 아약스와 바르셀로나에서 전설로 불리며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7. 1986년 제13회 멕시코 월드컵

24개국이 참가한 멕시코 월드컵은 대회 전부터 말이 많았다. 콜롬비아가 개최국으로 확정된 상태였지만 경제 사정이 악화되자 개최권을 반납했고 멕시코가 대회를 이어받았다.

유럽, 남미, 북중미, 아프리카뿐 아니라 오세아니아도 독립적으로 출전권을 배분받은 대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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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고 마라도나(Diego Armando Maradona)

펠레가 브라질서 '황제'로 불린다면 마라도나는 아르헨티나에서 '신'으로 칭송받는다.

득점왕을 차지한 잉글랜드의 게리 리네커(Gary Lineker), 서독의 하랄드 슈마허(Harald Anton Schumacher) 등 많은 선수가 활약했지만 마라도나에 빛이 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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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손' 사건을 비롯해 잉글랜드 선수 6명을 제치고 넣은 골 등 월드컵 역사에 영원히 기록될 장면을 만들었다.

그는 86년 월드컵 우승 이후 이탈리아 나폴리로 건너가 87년 클럽 역사상 첫 우승을 안겼다. 그는 2010년 아르헨티나 감독으로 선임돼 월드컵에 나서기도 했다.

8. 1994년 제15회 미국 월드컵

94년 월드컵은 세계 최대 경제 대국이었지만 축구 불모지기도 했던 미국에서 개최됐다.

우승한 브라질의 호마리루(Romario), 득점왕에 오른 불가리아 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Hristo Stoichkov) 등 수많은 스타를 낳은 대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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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토 바조(Roberto Baggio)

월드컵에서 수많은 선수가 패배의 쓴맛을 봤지만 바조만큼 철저하게 불운했던 선수도 찾기 힘들다. 이탈리아 전술의 꼭지점인 트레콰티스타(trequartista)의 대표선수로 '판타지 스타'로 불렸다. 미국 월드컵 16강부터 4강까지 매 경기 골을 넣는 활약을 하며 이탈리아를 결승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결승에서 승부차기를 실축해 패배의 원흉으로 몰렸다. 94년 월드컵 이후 소속팀 유벤투스로 복귀했지만 잦은 부상과 슬럼프로 순탄한 선수생활을 이어가지 못하다가 은퇴했다.

9. 1998년 제16회 프랑스 월드컵

20세기 마지막 월드컵을 줄리메의 조국 프랑스에서 마무리한다는 의미로 치러진 대회다. 피파는 더 많은 국가에 월드컵 출전을 허용하고 기존 24개국에서 32개국으로 출전국가 수를 늘렸다.

'아트사커'로 불리며 세계축구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은 프랑스가 브라질을 이기고 첫 우승을 차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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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네딘 지단(Zinedine Zidane)

알제리계 이민자 아들이었던 지단은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첫 우승 트로피를 안긴다. 그는 결승전에서 헤딩으로만 두 골을 넣었고 완벽하게 미드필드를 지배해 브라질 공격을 묶었다.

이후 유로 2000 대회에서도 우승하며 프랑스의 국민적 영웅으로 떠올랐다. 2002년 월드컵 때 부상으로 조별탈락한 후 2006년 심기일전해 준우승으로 이끌었다.

10. 2002년 제17회 한일월드컵

21세기 첫 월드컵은 유럽과 남미가 아닌 아시아에서 공동개최됐다. 전 대회 우승국 프랑스를 비롯해 유럽 강호들이 조별리그에서 탈락해 이변이 속출했다.

개최국 대한민국은 4강에 진출하며 아시아 국가로는 처음으로 준결승에 오른 나라가 됐다. 결승전에서 독일에 승리한 브라질이 통산 5회 우승을 확정했다. 대한민국의 홍명보, 유상철 선수는 월드컵 베스트 일레븐에 뽑히며 명성을 드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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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버 칸(Oliver Kahn)

괴물 같은 선방으로 우승권과 거리가 있던 독일 대표팀을 결승으로 이끌었다. 특히 한국과의 4강전은 그의 활약이 없었다면 이길 수 없는 경기였다.

올리버 칸은 대회 내내 보여준 활약을 인정받아 골키퍼 최초로 월드컵 MVP를 차지한다.

11. 2010년 제19회 남아공 월드컵

아프리카 첫 월드컵은 2010년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개최됐다. 개최국 남아공이 조별 탈락한 것을 비롯해 아프리카 팀들이 지리적 이점을 살리지 못하고 부진한 사이 스페인이 승승장구했다.

대한민국은 이 대회서 사상 첫 원정 16강에 진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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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스 이니에스타 (Andres Iniesta Lujan)

스페인 대표팀은 '무적함대'로 불리며 항상 우승 후보로 거론됐다. 하지만 16강, 8강, 조별예선 탈락하는 등 월드컵과 유난히 인연이 없었다.

사비(Xavi)와 이니에스타를 앞세운 스페인은 전에 없던 패스 축구로 축구 전술에 새로운 발자취를 남겼다.

이니에스타는 2010년 월드컵 당시 MVP 투표에는 뽑히지 못했지만 많은 전문가들이 스페인 대표팀의 중심이라고 칭송했다.

그는 유로 2008과 유로 2012에서도 스페인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특히 유로 2012에서는 MVP를 차지하며 자신의 진가를 증명했다.

12. 2014년 제21회 브라질 월드컵

"축구는 90분간 경기하고 독일이 우승하는 스포츠다"라는 게리 리네커의 말은 축구사에서 독일이 갖는 위치를 잘 나타낸다.

유로 대회와 월드컵에서 준우승 콤플렉스에 시달렸던 독일은 착실히 유소년을 키웠고 2014년 마침내 결실을 봤다.

준결승에서 브라질을 대파하고 결승에서 리오넬 메시(Lionel Messi)가 이끄는 아르헨티나를 1대0으로 이기고 우승을 차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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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오넬 메시(Lionel Messi)

KBS 축구 해설위원 한준희 씨는 "우리는 메날두 시대에 살고 있다. 이것을 부인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2010년대 들어 메시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Cristiano Ronaldo)는 세계 축구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메시는 사실상 혼자 힘으로 아르헨티나 대표팀을 결승전으로 이끌었지만 준우승에 그쳤다.

그는 프로선수로서 거의 모든 대회서 우승했다. 마지막 남은 트로피가 있다면 바로 월드컵 트로피였다. 메시는 대회 MVP에 선정됐지만 눈물을 흘리며 경기장을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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