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방은 언제 처음 생겼을까?” 대한민국 만화 역사 총정리

2018-08-30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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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국제만화축제’ 현장에서 살펴 본 국내 만화 역사와 트렌드를 정리했다.

'부천국제만화축제'에 전시된 '땡이네 만화가게' 세트장 / 이하 박민정 기자
'부천국제만화축제'에 전시된 '땡이네 만화가게' 세트장 / 이하 박민정 기자

글로벌 만화축제 ‘부천국제만화축제’가 지난 15일부터 19일까지 5일간 한국만화박물관과 부천영상문화 단지 일원에서 개최됐다.

올해로 21주년을 맞은 ‘부천국제만화축제’는 '만화, 그 너머'라는 주제로 국내 만화 역사를 돌아보는 전시를 마련했다. ‘부천국제만화축제’ 현장에서 살펴 본 국내 만화 역사와 트렌드를 정리했다.

◈ 1909년 : 국내 만화 역사의 시작

근대만화는 신문이라는 종이 매체와 함께 시작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대한민보’에 실린 이도영의 목판인쇄만화 ‘삽화’를 우리나라 만화 시작으로 본다. 우리나라 최초 만화가로 알려진 이도영은 일제 주권침탈 행위에 저항한, 날카로운 풍자를 담은 작품을 발표했다.

1920년 ‘조선일보’, ‘동아일보’가 창간되는 등 다양한 신문들이 줄을 이었다. 이와 함께 독자투고 형식의 시사 만화들이 발표됐다. 1930년대 후반, 한반도를 일본침략전쟁의 전초기지로 만든 조선총독부는 모든 신문과 잡지를 폐간 시켰고 연재만화들도 자취를 감췄다.

◈ 1945~1950년대 : 새로운 시대 도약하는 만화

1945년 8월 15일 해방과 함께 여러 매체가 복간, 창간되기 시작했다. 만화를 연재할 수 있는 매체가 많아지면서 다양한 장르 만화가 탄생했다. 시사만화, 어린이 만화가 특히 인기를 끌었다.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어려움이 닥쳤지만 피난지 부산이나 대구에서는 얇은 두께의 만화가 출간되며 명맥을 이어갔다. 이 당시 만화는 전쟁의 이데올로기 홍보수단인 ‘삐라’ 제작에도 활용됐다.

전쟁이 끝난 뒤 만화는 피폐해진 동심을 달래주는데 큰 역할을 했다. 어린이 만화잡지 ‘만화세계’가 큰 인기를 끌었다. 이후 ‘만화학생’, ‘7천국’ 등이 창간되면서 만화잡지 붐을 일으켰다. 이 시기 신문사들이 연재만화를 싣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다.

‘날쌘돌이’, ‘엄마 찾아 삼만리’ 등 장편만화가 출간돼 인기를 끌었다. 이같은 대중적 인기를 바탕으로 1950년대 후반에 국내 최초 만화방이 생겼고 이후 전국으로 확산됐다.

◈ 1960년대 : '만화붐' 일었지만...

1950년대 후반 처음 등장한 만화방은 1960년대에 들어 전국으로 확대됐다. ‘라이파이’, ‘약동이와 영팔이’, ‘도전자’ 같은 만화들이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 1960년대 중반에는 날마다 만화방 수백개가 생겨나고 하루에 50여권씩 만화책이 쏟아져 나오기까지 했다.

1959년 전국 2000곳이던 만화방은 1960년대 말에는 1만 9000곳으로 늘었다. 만화 붐이 일었지만 당시 정부는 사전심의 제도를 도입했고, 이는 한국만화 기반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 1970년대 : 대중잡지 흥행이 만든 다양한 만화들

잡지 '새소년', '소년중앙', '어깨동무'
잡지 '새소년', '소년중앙', '어깨동무'

1970년대는 다양한 대중잡지가 생겨났다. 이같은 매체 발달은 다양한 만화 장르가 탄생하는 계기를 제공했다.

‘선데이서울’과 ‘일간스포츠’에 연재된 성인만화들은 고된 노동에 지친 어른들의 휴식처가 되는 오락문화 역할을 했다. ‘소년중앙’, ‘어깨동무’, ‘새소년’ 등을 통해 다양한 명랑만화들도 인기를 끌었다.

◈ 1980년대 : 경제적 성장이 만든 ‘만화계 황금기’

만화잡지 '보물섬'
만화잡지 '보물섬'

1980년대는 경제적으로는 고도성장을 이루었지만 정치 사회적으로는 크게 암울한 시기였다. 이런 양면성은 만화문화에도 고스란히 영향을 미쳤다.

1982년 프로야구 개막과 함께 이현세, 허영만, 박봉성 등이 내놓은 스포츠 만화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또 김동화, 황미나, 신일숙, 김혜린 등 새로운 순정만화 작가들이 등장해 ‘일본풍 순정만화’ 틀에서 벗어나 ‘한국형 순정만화’를 확립해가기 시작했다.

신일숙 '아르미안의 네 딸들'
신일숙 '아르미안의 네 딸들'

1982년에 창간된 ‘보물섬’은 김수정의 ‘아기공룡 둘리’, 이진주 ‘달려라 하니’ 등 인기작품을 탄생시키면서 큰 인기를 끌었다. 이후 ‘만화광장’, ‘주간만화;’ ‘르네상스’, ‘아이큐 점프’ 등 만화잡지 창간 붐을 불러일으켰다.

정부의 정치탄압에 대항해 사회 비판적인 만화들도 쏟아져 나왔다. 박재동의 ‘한겨레 그림판’, 주완수의 ‘보통 고릴라’ 등이 큰 호응을 얻었다.

◈ 1990년대 : 대중문화 콘텐츠로 자리 잡은 만화

‘사회적 안정기’로 접어든 1990년대 만화계는 질적, 양적으로 급성장을 이뤘다. 특히 만화잡지 전성시대라고 할 만큼 다양한 독자층을 위한 만화잡지들이 나오며 큰 인기를 끌었다.

어린이를 겨냥한 ‘소년챔프’, ‘아이큐점프’, ‘팡팡’, 소녀층을 겨냥한 ‘요요’, ‘미르’, ‘댕기’, ‘나나’ 등이 창간됐다. 청소년을 주 독자층으로 삼은 ‘영챔프’, ‘영점프’, ‘윙크’, 성인을 겨냥한 ‘투엔티세븐’, ‘빅점프’, ‘미스터 블루’ 등도 나왔다.

소녀층을 겨냥한 잡지 '칼라', '밍크', '터치', '윙크' 등이 부천국제만화축제 세트장 소품으로 만들어져 전시돼있다
소녀층을 겨냥한 잡지 '칼라', '밍크', '터치', '윙크' 등이 부천국제만화축제 세트장 소품으로 만들어져 전시돼있다

만화를 원작으로 한 드라마, 게임, 영화 등이 제작됐고 이는 만화가 대중문화 콘텐츠의 고부가가치 소스로 인정을 받기 시작했음을 의미했다. 김진 ‘바람의 나라’, 원수연 ‘풀하우스’, 양영순 ‘누들누드’, 배금택 ‘영심이’, 허영만 ‘비트’ 등은 ‘한국만화의 미디어믹스 시대’를 마련한 대표적 작품이다.

◈ 2000년대 : 웹툰의 탄생

2000년대 이후 초고속으로 발전한 인터넷 환경을 기반으로 웹툰이라는 새로운 만화형식이 등장했다.

책 페이지를 넘겨보는 형식이 아닌, 모니터 화면을 이용해 밑으로 길게 내려가면서 볼 수 있는 새로운 형태 만화가 나왔다.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까지 한국만화는 온라인 공간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변화의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초기 웹만화 형식은 1990년대 말부터 등장하기 시작하는데 작품은 주로 개인홈페이지나 온라인 카페 등을 통해 발표됐다.

본격적인 웹툰 시대로의 도입은 2003년 강풀 작가가 발표한 웹툰 ‘순정만화’와 함께 시작한다. ‘순정만화’는 누계 6000만 클릭을 돌파하며 본격적인 웹툰시대 서막을 열었다.

강풀 '순정만화' / 이하 다음웹툰
강풀 '순정만화' / 이하 다음웹툰

‘순정만화’는 강풀 작가가 2003년 미디어 다음 ‘만화 속 세상’에 연재한 작품으로 연우와 수영의 순정적인 사랑 이야기가 주 스토리다.

강풀 작가가 ‘순정만화’를 연재하면서 보여준 발전된 ‘세로스크롤 연출’은 향후 한국 웹툰 양식으로 정착하게 됐다. 이는 웹툰을 출판만화와 구별짓는 중요한 특징이 되기도 했다.

이밖에도 조석 ‘마음의 소리’, 양영순 ‘천일야화’, 윤필 ‘검둥이 이야기’, 지강민 ‘와라! 편의점’, 하일권 ‘목욕의 신’ 등 웹툰이 많은 인기를 끌었다. 2012년에는 윤태호 작가 웹툰 ‘미생’이 돌풍을 일으키기도 했다.

윤태호 '미생'
윤태호 '미생'

◈ 진화하는 웹툰

한국 웹툰 시장은 2000년대 중반을 지나며 인터넷 포털 사이트의 만화 코너 등을 중심으로 더욱 성장했다. 확대된 시장을 무대로 다양한 신인 작가들이 데뷔해 새로운 활력을 불러일으켰다. 작품 소재나 형식도 더욱 다양해졌다.

호랑 작가 공포 웹툰 '옥수역 귀신'
호랑 작가 공포 웹툰 '옥수역 귀신'

현재 웹툰은 한국만화를 대표하는 가장 강력한 주류가 됐다. 출판을 넘어 영상, 광고, 디자인, 캐릭터 등 2차 시장으로 영역을 확대하는 등 그 새로운 가능성을 높여가고 있다.

home 박민정 기자 story@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