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동휠체어 탄 채 사고 당한 어머니와 아들, 보도 놔두고 도로 이용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2019-02-26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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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동휠체어도 보행자…하지만 사고현장 보도 이용 사실상 불가
울퉁불퉁 보도블록·한복판 가로수·시설물 불쑥…휠체어 통과 못 해

울퉁불퉁한 사고현장 인도 / 이하 차근호 기자
울퉁불퉁한 사고현장 인도 / 이하 차근호 기자

(부산=연합뉴스) 차근호 기자 = 26일 전동휠체어를 타고 가던 장애인 엄마와 아들이 택시에 받혀 사상한 사고의 원인 중 하나로 열악한 장애인 보행환경이 지목된다.

사고가 발생한 부산 영도구 동삼 1동 한 복지관 앞 도로에는 인도가 있다.

휠체어의 경우 전동으로 움직이더라도 보행자로 취급돼 인도로만 다녀야 한다.

하지만, 이들 모자가 굳이 인도를 놔두고 차로를 이용하던 중 사고를 당한 것에는 이유가 있다.

부산지방경찰청 한 관계자는 "인도가 보도블록으로 돼 있는데 울퉁불퉁한 구간이 많아 휠체어를 몰기 어려웠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현장을 둘러본 취재진도 이런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사고현장 옆 인도는 보도블록이 일부 침하하거나 솟아올라 울퉁불퉁했다.

사고 시각처럼 깜깜한 밤 가로등 불빛에만 의지해야 하는 상황에서 인도로 휠체어를 몰다가는 자칫 넘어지거나 다칠 가능성도 있어 보였다.

인도에 횡단보도가 연결돼 있었지만, 턱을 깎아 놓지 않은 곳도 눈에 들어왔다.

인도 턱을 깎아 놓지 않은 사고현장 인도
인도 턱을 깎아 놓지 않은 사고현장 인도

이들 모자가 다녔을 주변 도로 사정은 더 열악했다.

보행로 한복판에 가로수나 도로 시설물이 불쑥 튀어나와 있어 휠체어로는 통과할 수 없는 곳이 있었다.

인도를 차지하고 있는 노점상 시설물과 화단, 버스정류장 등도 휠체어 통행을 방해했다.

가로수 탓에 '휠체어 못 지나가요'
가로수 탓에 '휠체어 못 지나가요'

실제로 이 때문에 보행로 대신 전동휠체어를 도로에서 타는 장애인을 목격할 수도 있었다.

영도구 장애인협의회 한 관계자는 "이곳은 급경사와 내리막이 많고 도로 폭이 좁아 휠체어가 인도를 이용할 수 없는 경우가 너무 많다"면서 "장애인이 차도를 이용하다가 사고를 당했으니 과실이 있다고 단정적으로 말하기 전에 장애인 보행환경을 한 번 더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도로 시설물 불쑥
도로 시설물 불쑥

26일 0시 10분께 부산 영도구 동삼동 한 왕복 2차선 도로에서 전동휠체어와 택시가 충돌해 전동휠체어에 함께 타고 있던 장애인 어머니가 숨지고 아들이 다치는 일이 발생했다.

늦은 시각까지 일한 어머니를 마중 나간 아들이 오르막길에서 어머니 부담을 덜어 드리려고 어머니와 함께 전동휠체어를 타고 가던 중 변을 당했다.

모자의 사고 소식이 알려지자 이웃들은 매우 안타까워했다.

아들 손씨는 지체 장애 5급, 어머니는 청각 장애 4급으로 두 사람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서로를 의지하며 힘이 됐던 것으로 알려진다.

좁은 인도 탓 도로 이용하는 장애인
좁은 인도 탓 도로 이용하는 장애인

기초생활수급비와 장애인 수당을 받지만, 경증 장애인에 속해 한 달에 받는 돈이 90만원에 못 미쳤고, 그나마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어머니가 청소 일을 도우며 돈을 받아 생계를 유지했다.

지체 장애 3급인 아버지도 있었지만, 아버지는 3년 전 먼저 세상을 떠난 것으로 알려진다.

영도구 한 관계자는 "어머니가 2001년부터 집안 가장 노릇을 하며 일을 했던 것으로 안다"면서 "어머니는 비장애인이었지만, 고생을 많이 하고 나이가 들면서 청력이 심하게 감퇴해 최근 장애 판정을 받았다"고 전했다.

부산시 장애인협의회 한 관계자는 "고단한 하루 끝에 모자가 휠체어에 함께 앉아 잠시 쉬며 체온을 나누던 그때 비극이 덮쳤다는 사실이 너무 눈물 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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