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음주 뺑소니'로 구속된 피고인을 풀어준 이유

2019-08-24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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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고법 형사1부 '치유 법원 프로그램' 도입
프로그램을 피고인이 스스로 이행하면 일종의 '선물'로 유리한 형량이 주어져

연합뉴스 TV 제공-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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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성도현 기자 = "이번 사건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고, 큰 실망도 했을 것입니다. (남편이) 본인의 실수를 받아들이고 행동 양식을 바꿔 (음주운전을) 반복하지 않게 해주시길 바랍니다."

24일 법원에 따르면 서울고법 형사1부 정준영 부장판사는 전날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도주치상 등 혐의로 기소된 허모(34) 씨에 대한 항소심 재판에서 아내를 증인석으로 불러 당부의 말을 전했다.

정 부장판사는 "배우자께서도 같이 협력해주셔야 한다"며 보석에 대한 보증금 납부 대신 아내가 남편을 보증하도록 했다. 허씨가 제대로 이행하지 않으면 보석이 취소되고 재수감된다.

허씨는 지난 1월 음주운전 사고 후 달아난 혐의 등으로 1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아 석 달째 구금돼 있다. 이날 법정에 온 아내는 9살짜리 딸과 4살짜리 아들을 생각하며 법원에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재판부는 전날 허씨에 대해 직권으로 보석 결정을 하며 석방했다. 피고인이 잘못을 뉘우치고 일정 기간 술을 마시지 않도록 '치유 법원 프로그램'을 시범적으로 진행한다는 취지다.

재판부는 앞으로 3개월 동안 이 프로그램을 시행하면서 허씨의 생활 상태를 종합해 판결 선고에 반영할 방침이다. 검찰과 변호인 측도 이에 동의했다.

보통 형사재판에서는 피고인 측이 선처를 구하는 식으로 진행되지만, 이 프로그램을 피고인이 스스로 이행하면 일종의 '선물'로 유리한 형량이 주어지는 것이다.

재판부는 허씨의 이행 상황을 점검하고 가정을 돌보도록 하기 위해 오후 10시 이전에 귀가하도록 했다. 허씨는 온라인 카페에 동영상을 포함해 일일 보고서를 올려야 한다.

재판부는 검찰 및 변호인 등과 매주 1회 모바일 채팅 방식으로 점검 회의도 할 계획이다. 허씨는 한 달에 1번 직접 재판정에 나와 지난 한 달 동안의 생활에 대해 진술해야 한다.

재판부가 "3개월 동안 술을 마시지 않을 수 있나"라고 묻자 허씨는 "절대 안 마시겠다"며 다짐했다. 재판부는 "얼마나 열심히 노력하느냐에 따라 중요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독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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