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특히나 많아" 대형 참사들 다룬 한국영화들이 경계해야 하는 '이것'

2019-09-01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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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지하철 사건 다룬 '힘을 내요, 미스터리'
성수대교 붕괴 사건 다룬 영화 '벌새'

이하 '벌새' / 이하 엣나인필름 제공
이하 '벌새' / 이하 엣나인필름 제공

(서울=연합뉴스) 조재영 기자 = 한국영화들이 전 국민에게 큰 트라우마를 남긴 재난과 참사를 스크린으로 소환하고 있다.

1995년 삼풍백화점 참사를 모티프로 한 영화 '가을로'(2006)나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를 소재로 한 '로봇, 소리'(2016) 등 그동안 참사를 다룬 작품들이 간간이 나오긴 했지만, 올해는 유독 여러 편이 쏟아졌다.

여전히 후유증과 아픔을 안은 채 살아가는 이들이 많은 상황에서 사회적 비극을 영화라는 오락적 틀 안에 담아내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잊힌 기억과 문제의식을 다시 환기하고, 트라우마를 함께 극복하려는 시도는 한국영화가 가진 공적 기능의 하나로, 바람직하다는 평가가 많다. 다만 주제 의식 없이 소재로 활용하는 데만 집중하는 '소재주의'나 의무감과 강박감에 빠지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지난달 29일 개봉한 '벌새'(김보라 감독)는 성수대교 붕괴 사고가 발생한 1994년을 배경으로 중학교 2학년 은희의 일상을 그린다. 영화가 주목하는 것은 그 시절 학교와 가정, 사회에 만연한 폭력성이다. 학교에서는 입시라는 명분으로, 가정에서는 가부장제라는 틀 안에서, 사회에서는 성장제일주의 혹은 선진국으로의 도약이라는 열망 아래서 폭력적 상황이나 폭력성이 당연시된다. 영화는 그런 시대적 공기와 폭주하는 국가적 열망이 압축된 사고가 성수대교 붕괴 참사라고 말한다. 끊어진 다리의 참상은 어린 은희의 눈과 뇌리에 깊이 박힌다. 김보라 감독은 "사회적 재난과 정치적 사건이 개인의 삶과 어떻게 촘촘히 엮어있는지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하 '힘을 내요, 미스터리' / 이하 뉴 제공
이하 '힘을 내요, 미스터리' / 이하 뉴 제공

오는 11일 개봉하는 '힘을 내요, 미스터리'는 '좀 모자라는' 아빠와 혈액암을 앓는 어린 딸이 만난 지 하루 만에 우연히 함께 여행을 떠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중반까지는 낯익은 코미디 장르지만, 뒤로 갈수록 본색을 드러낸다. 아빠의 과거가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와 오버랩되면서부터다. 코미디와 재난의 이종교배는 익숙하면서도 꽤 위험한 시도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관객의 반감만 살 수 있다.

그러나 최근 '엑시트'의 흥행 성공에서 보듯 잘 만들면 대중적 호응을 얻을 수 있다. 주제 및 스토리, 연기, 연출 삼박자가 모두 맞아떨어져야 한다는 이야기다. '힘을 내요, 미스터리'는 오로지 반전을 위해 내달린다. 그래도 이 영화는 어느 정도 관객의 마음을 움직일 것을 보인다. 다른 단점들을 덮을 만큼 진정성이 느껴져서다. 이계벽 감독은 "그 당시 (참사 현장에 있었던) 소방관들을 만나면서 '영화를 안 만들면 안 되겠다'라는 생각을 했다"며 "세월이 많이 흘렀는데 상처가 깊고, 여전히 고통 속에 살고 계신 것을 알고 난 뒤에는 다시 뒤돌아볼 수 없었다. 그분들에 관한 이야기를 진솔하고 자세히 그려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생일' / 뉴 제공
'생일' / 뉴 제공

올해 5주기인 세월호 참사를 다룬 상업영화도 이미 2편 나왔다. 아들을 잃은 유가족 이야기를 다룬 '생일'(이종언)은 진정한 애도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섣부른 위로를 건네기보다 유가족 모습을 있는 그대로 담담하게 비추는 정공법을 택했다. 관객은 그저 그들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슬픔과 상실감에 공감하며 눈물을 흘리게 된다.

'악질경찰'(이정범)은 세월호를 범죄 액션 장르에 녹인 경우다. 각종 비리와 범죄를 일삼던 경찰이 자신보다 더 악인을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얼개다. 그 속에 세월호 참사 희생자 친구를 등장 시켜 연결고리를 만들었다. 희생된 아이들에 대한 어른들의 죄책감을 표현하려 했지만, 다소 투박한 연출과 스토리 탓에 큰 호응을 얻지는 못했다.

강유정 평론가는 "역사적인 참사를 재연할 때는 시간적 거리가 있어야 관객들이 허구가 결합한 역사로 영화를 받아들인다"며 "시간상으로 가까운 일일수록 접근할 때 조심해야 한다. 한국전쟁도 관련 상업영화가 나오기까지 40년이 걸렸다"고 말했다.

전찬일 평론가는 "한국영화는 2000년대를 거치면서 우리 사회와 관련된 다양한 발언과 문제 제기를 통해 공론장적 기능을 해왔다"면서 "한국영화들이 비극의 역사를 늦게라도 반성적으로 짚으면서 이를 극적, 오락적으로 승화시켜 대중에 환기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라고 평했다.

그는 다만 "한국 관객들은 실화 소재에 여전히 예민하게 반응하는 편"이라면서 "애도를 통해 사회와 개인의 트라우마를 극복하려고 노력하되, 지나친 강박이나 의무감으로 접근할 경우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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