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 구충제로 '말기암'을 완치했습니다” 인터넷에서 빠르게 확산

2019-09-20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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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 구충제 판벤다졸 복용 후 말기암 완치사례 있는 것은 사실
임상시험 근거 부족하고 동물실험에선 효과 없었던 것으로 드러나
그렇더라도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환자들의 복용은 못 막을 듯

말기암 환자가 반려견 구충제를 복용하고 완치됐다는 주장이 해외와 한국의 유튜브 동영상과 블로그 등에서 급속도로 유포돼 진위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유튜브 방송 ‘월드빌리지 매거진 TV’는 최근 ‘말기암 환자 구충제로 극적 완치, 암세포 완전관해, 암환자는 꼭 보세요!’란 동영상을 올렸다. 이 유튜브 방송은 개 구충제를 먹고 폐암을 완치한 한 남성의 사연을 전한 기사를 소개했다.

기사에 따르면 이 남성은 2016년 말기 소세포 폐암을 진단받은 뒤 암세포가 전신에 전이돼 3개월밖에 살지 못한다는 판정을 받았다. 이후 의사들이 이 남성을 1년 더 생존할 수 있도록 임상시험에 등록했다. 임상에 등록하는 동안 이 남성은 한 수의사로부터 개 구충제인 펜벤다졸을 복용하라는 제안을 받았다. 수의사는 펜벤다졸을 복용하고 6주 안에 암을 완치한 환자가 있다고 주장했다.

소세포 폐암 말기 환자의 생존율은 1%, 평균 수명은 3개월에 불과하다. 잃을 게 없다고 판단한 남성은 모험을 감행하기로 했다. 개 구충제를 복용하기로 한 것. 남성은 임상시험을 하는 동안 의사들에게 펜벤다졸 복용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3개월 뒤 의사들의 임상시험은 실패로 끝났지만 유일하게 남성은 살아남았다. 놀랍게도 CT 촬영 결과 암세포가 완전히 소멸된 것으로 밝혀졌다.

기사 속 내용은 사실일까? 해당 기사에 등장하는 남성의 사연은 사실인 것으로 알려졌다. 판벤다졸은 암세포의 사멸을 유도하는 것은 과학적으로 밝혀진 바 있다. 실제로 세계적 권위를 인정받는 네이처지가 발행하는 온라인 저널 ‘사이언티픽 리포트’에는 판벤다졸의 암세포 사멸 유도 기능을 조명하는 논문이 실린 바 있다.

그렇다면 판벤다졸을 암환자에게 복용하라고 권유할 순 있을까. 무작정 복용을 권유하긴 어려울 듯하다. 암을 치료했다는 사례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임상시험 근거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사이언티픽 리포트’가 소개한 논문도 인체가 아닌 세포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 불과하다. 특히 동물을 대상으로 실시한 연구에서 판벤다졸이 암을 치료하는 효과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명승권 국립암센터 국제암대학원대 가정의학과 교수는 19일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결론부터 말하자면 현재까지 사람을 대상으로 실험한 연구와 그 이전 단계인 환자증례 연구 및 환자군 연구 결과는 단 한 건도 발표된 적이 없다”고 말했다. 명 교수는 “구충제를 다른 약과 함께 먹을 때 혹시 모를 부작용을 막기 위해 반드시 담당 주치의와 상담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강아지 구충제로 말기암 완치? 해외 블로그서 빠르게 확산 명승권 국립암센터 교수 “임상 근거 부족” 부작용도 우려강아지용 구충제. 게티이미지뱅크강아지 구충제가 암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주장이 유튜브를 통해 빠르게 퍼지고 있다. 말기 암 환자와 가족들은 “지푸라..
한국일보
그렇더라도 암환자들의 판벤다졸 복용을 막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말기암 환자들의 경우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판벤다졸을 복용할 가능성이 있다. 다른 암 치료제보다 가격이 저렴한 점도 판벤다졸에 대한 접근성을 높일 수 있다. 다만 암에 걸리면 체력이 약해지는 만큼 의사와 상의해 혹시 발생할지도 모를 부작용을 막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home 채석원 기자 jdtimes@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