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대 마스크 착용 막는 복면금지법 위헌” 홍콩 고등법원 판단

2019-11-18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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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경찰관에 지나친 재량권 줘…홍콩 기본법과 양립 불가”
캐리람 비상대권 주는 '긴급법' 적용 힘들어져…수세몰린 시위대 숨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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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연합뉴스) 안승섭 특파원 = 홍콩 시위 사태가 격화하는 가운데 홍콩 고등법원이 시위대의 마스크 착용을 금지한 '복면금지법'에 위헌 결정을 내려 수세에 몰린 시위대의 숨통이 다소 트이게 됐다.

18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이날 우리나라의 대법원에 해당하는 홍콩 고등법원은 야당 의원 등 25명이 "복면금지법이 홍콩의 실질적인 헌법인 '기본법'에 위배된다"며 제기한 소송에서 이들의 손을 들어줘, 홍콩 정부가 마스크 착용 금지를 강제할 수 없게 됐다.

홍콩 정부는 지난달 5일부터 시행한 복면금지법은 공공 집회에서 마스크나 가면 착용을 금지할 뿐 아니라, 집회 참여 여부와 상관없이 경찰관이 공공장소에서 마스크 등을 착용한 시민에게 이를 벗을 것을 요구할 수 있도록 했다.

이를 어기면 최고 1년 징역형이나 2만5천 홍콩달러(약 370만원) 벌금에 처할 수 있다.

야당 의원들은 "복면금지법 시행의 근거가 된 '긴급정황규례조례'(긴급법)는 의회인 입법회를 거치지 않고 홍콩 행정장관에게 무제한의 권력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홍콩 기본법에 어긋난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또한, 복면금지법이 공공질서에 해를 끼치지 않는 평화 집회에서 마스크 착용 등까지 금지해 기본적인 자유를 제한한다고 주장했다.

1922년 제정된 긴급법은 비상 상황이 발생하거나 공중의 안전이 위협받을 때 행정장관이 입법회 승인 없이 광범위한 분야에서 공중의 이익에 부합하는 법령을 제정, 시행할 수 있도록 한 법규이다.

긴급법이 적용되면 행정장관은 체포, 구금, 추방, 압수수색, 교통·운수 통제, 재산 몰수, 검열, 출판·통신 금지 등에 있어 무소불위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비상대권'을 부여받는다.

행정장관에게 부여되는 비상대권의 수준이 이처럼 막강하기 때문에 홍콩 역사에서 긴급법이 적용된 것은 1967년 7월 반영(反英)폭동 때 단 한 번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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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는 야당 의원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긴급법이 (비상 상황이 아닌) 공공 안전이 위협받는 어떠한 경우에도 행정장관에게 법령을 제정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고 보는 것은 기본법과 양립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복면금지법이 경찰관에게 공공장소에서 시민에게 마스크를 벗을 수 있도록 요구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 것은 그 재량권의 범위가 현저하게 넓다는 점에서 '불균형적 조치'"라고 지적했다.

다만 비상 상황에서 긴급법이 적용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판단하지 않았다.

캐리 람(林鄭月娥) 홍콩 행정장관은 긴급법에 근거해 복면금지법을 전격적으로 발동했지만, 이번 위헌 결정으로 앞으로는 긴급법 적용이 쉽지 않아 보인다.

캐리 람 장관이 시위를 진압하고자 긴급법을 적용해 야간 통행 금지나 소셜미디어 제한, 심지어 계엄령 시행까지 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었지만, 이제 긴급법을 적용한 시위 진압은 사실상 힘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

지난달 5일 복면금지법이 시행된 후 이를 위반해 경찰에 체포된 사람은 남성 247명, 여성 120명 등 총 367명에 달한다. 이 가운데 24명이 재판을 받고 있다.

이번 복면금지법 위헌 결정이 수세에 몰린 시위대의 숨통을 다소 틔워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홍콩 경찰이 이날 새벽부터 시위대 '최후의 보루'라고 할 수 있는 홍콩 이공대에 진입해 시위 진압 작전을 펼치자 시위대는 격렬하게 저항하고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수세에 몰리는 분위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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