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연자실 골키퍼 뒤로하고 포효하는 유상철

2019-11-23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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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월드컵에서 유상철 하면 누구나 기억하는 장면
최근 췌장암 투병 중이라는 소식 전해진 유상철

2002년 6월 4일 한일월드컵 축구대회 D조 폴란드와 첫 경기에서 한국의 두 번째 골을 성공시키고 환호하는 유상철 / 연합뉴스
2002년 6월 4일 한일월드컵 축구대회 D조 폴란드와 첫 경기에서 한국의 두 번째 골을 성공시키고 환호하는 유상철 / 연합뉴스

[※ 편집자 주 = 세월이 흘러도 잊히지 않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기쁨과 환호, 슬픔과 탄식, 공포와 절망 등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국민 이목을 집중시킨 사건과 인물들입니다. 연합뉴스는 잊을 수 없는 그런 순간들을 그 장면을 포착한 사진과 함께 돌아보는 작은 코너를 마련했습니다.]

(서울=연합뉴스) 임동근 기자 = '월드컵 축구 결승골 환호하는 유상철'이라는 제목 아래 연합뉴스가 2002년 6월 4일 저녁 10시 6분 34초에 발행한 이 사진에는 다음과 같은 설명이 있다.

"4일 저녁 부산에서 열린 월드컵 D조 한국의 첫 경기 폴란드와의 경기에서 두 번째 골을 성공시킨 유상철이 낙담한 폴란드 골기퍼 앞을 지나치며 환호하고 있다./특별취재단/체육/월드/ 2002.6.4 (부산=연합뉴스)"

이런 설명 중에는 약간의 혼란을 유발하는 구절이 있다. "두 번째 골을 성공시킨 유상철"이라는 표현은 유상철이 이 경기에서 혼자서 두 골을 넣었다는 뜻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지만, 실제는 그의 골은 "한국팀의 두 번째 골"이었다.

더불어 이 골은 '결승골'은 아니며, 한국의 추가골이었다.

연합뉴스 사진 데이터베이스(DB)에는 이 사진을 '특별취재단', 곧 당시 한일월드컵 취재를 위해 연합뉴스가 꾸린 취재단 이름으로 발행한 것으로만 나오지, 그 취재단 어떤 사진기자가 촬영했는지는 전연 정보가 없다.

이 기념비적인 장면을 촬영한 기자를 확인하고자 당시 취재단 일원인 배재만 현 사진부장한테 문의했더니 "내가 찍은 것"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사진 속 유상철은 2002년 6월 4일 부산월드컵경기장에서 붉은색 유니폼을 걸치고는 나는 듯 달리며 기쁨을 감추지 못한다. 이런 장면은 그의 골을 막지 못했다는 자책으로 글러브를 낀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엎드린 폴란드 골키퍼와 절묘한 대비를 이룬다. 승자의 기쁨과 패자의 절망이 교차하는 장면을 절묘하게 포착했다. 절망한 골키퍼는 당시 세계 최고의 수문장이라 일컫던 예지 두덱이었다. 그는 당시 영국 프리미어리그 리버풀 소속이었다.

유상철은 조별리그 D조 폴란드와 첫 경기에서 후반 8분 위력적인 중거리포로 두 번째 골을 터뜨렸다. 그의 오른발을 떠난 공은 두덱의 손을 스치고는 골문 왼쪽 상단에 꽂혔다.

전반 26분 '황새' 황선홍의 선제골에 이어 터진 골에 승리를 직감한 5만4천여 붉은악마는 열광의 도가니였다.

경기 결과는 2-0 완승. 월드컵 본선 진출 6번째 만에 맞은 15번째 경기에서 마침내 일궈낸 감격의 첫 승리자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2002년을 기억하는 사람들이라면 유상철 하면 누구나 저 사진 속 장면으로 각인한다.

지금은 프로축구 K리그1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으로 있는 유상철(48)이 최근 췌장암 투병 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지며 많은 이를 안타깝게 한다.

지난 5월부터 인천 사령탑을 맡아 팀의 2부리그 강등 저지에 집중하던 중 건강이 악화해 병원에 입원했다가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을 접한 것이다.

유 감독은 지난 19일 인천 구단 홈페이지에 올린 '팬 여러분께 드리는 편지'를 통해 췌장암 4기 진단을 받은 사실을 밝히면서 "포기하지 않고 버티고 또 버티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였다.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 우리의 영웅 유상철이 병마를 이기고 다시 설 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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