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빨간 압류딱지가...” 읽는 사람 부끄럽게 만든 '반전 대숲 글'

2019-12-07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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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교 대나무숲 페이지에 올라온 익명의 글
여러 사람 격려·응원받은 대나무숲 글 작성자

한 익명의 작성자가 남긴 글이 여러 사람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지난 5일 페이스북 페이지 '연세대학교 대나무숲'에는 '#66264번째 외침'이라는 타이틀로 익명의 글 하나가 올라왔다. 해당 글 작성자는 "집에 빨간 압류딱지가 붙었다"는 말로 글을 시작했다.

작성자는 하루아침에 집 안에 온통 빨간 압류딱지가 붙게 된 자신의 가정사를 털어놨다. 그는 "아버지가 카드빚을 장기간 연체하셔서 집안의 물건들에 가압류 딱지가 붙은 상황"이라고 밝혔다.

기사와 관련 없는 사진 / SBS '8시 뉴스'
기사와 관련 없는 사진 / SBS '8시 뉴스'

작성자는 침착하게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흔히 보던 깡패들이 쳐들어와서 물건 다 부수고 하는 모습은 아니었다. 그는 "실제로는 매우 정중하게 작은 압류딱지를 붙이셨고, 일부러 안 보이는데 붙여주시고 친절히 절차도 설명해 주셨다"며 "예정된 기간 내에 빚 변제가 안 되면 물건들이 경매에 넘어갈 수도 있다 하셨다"고 설명했다.

기사와 관련 없는 사진 / KBS '광고천재 이태백'
기사와 관련 없는 사진 / KBS '광고천재 이태백'

작성자는 집안에 압류딱지 붙는 지금의 상황을 만든 장본인,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얘기를 시작했다.

그는 "아빠의 젊은 시절은 지금의 나와 상당히 닮아 있다. 돌려 말하기와 숨기기라고는 모르는 솔직한 성격, 새로운 분야에 대한 호기심, 글쓰기를 좋아하는 것과 영어를 잘하는 것, 유일하게 안 닮은 건 여자친구가 끊이지 않던 아빠와는 달리 '나는 연애 횟수가 그리 많지 않다' 뭐 이 정도?"이라고 자신의 아버지를 소개했다.

이어 그는 "아빠는 과거에도, 지금도 나의 우상이다"라며 "50이 넘으셨지만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 제일 노래를 잘 부르시고, 웬만한 20대보다 훨씬 좋은 몸을 가지고 계시며, 어느 상황에서든 할 말은 하시는 아빠"라고 덧붙였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아버지를 비난하기 쉬운 상황이었지만, 작성자는 달랐다. 그는 "그런 아빠가 위축되어 있는 모습을 보는 것, 나에게는 빚보다 스티커보다 그 모습을 보는 게 더 고통이더라"라고 고백했다.

기사와 관련 없는 사진 / 셔터스톡
기사와 관련 없는 사진 / 셔터스톡

작성자는 담담히 자신이 지금 해야 할 일에 대해 써 내려갔다.

그는 "내가 할 일은 단순하다.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나하나 해 나가는 것"이라며 "인턴을 구해서 돈을 벌고, 남는 시간에 활동 하나 더 해서 추가 수입 올리고, 언어와 경제학 공부하고 남는 시간에는 춤 같이 내가 좋아하는 것도 내 돈으로 배우는 것. 그냥 난 지금에 충실하면 된다, 그러면 된다"고 다짐했다.

작성자는 한 가지 더 다짐했다. 그는 "그리고 곧, 정말 곧 돈이 다시는 아빠를 위축시키지 않게 하겠다. 그런 종이 쪼가리에 휘둘리기엔 우리 아빠는 너무 위대하고 너무 존경스러운 사람이기에..."라며 "내가 초딩 때부터 아빠한테 사드린다 했던 페라리도 사 드리고, 아빠가 즐길 수 있으신 것 맘껏 즐기시게 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는 "벌써 2시네 이제 자야지, 아침 7시쯤 일어나야겠다. 다시 지금에 충실한 삶으로 돌아가자. 파이팅"이라는 말로 글을 마무리했다.

기사와 관련 없는 사진 / 영화 '증인' 스틸컷
기사와 관련 없는 사진 / 영화 '증인' 스틸컷

해당 글은 단시간에 퍼지며 여러 사람에게 교훈을 줬다. 댓글 창에는 "아버지는 세상에서 가장 부자시네요. 당신 같은 귀한 보물이 있어서 든든하시겠어요 힘내요", "아무리 최악의 상황에 놓여있더라도 의지와 희망을 잃지 않는다면 못할 거 없다는 말, 이때까지 많이 들어왔지만 믿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글을 보니 그 말이 진짜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그저 글쓴이님의 의지에 존경과 박수를 보내드리고 싶습니다" 등의 베플이 달리며 큰 공감을 얻었다.

연세대학교 대나무숲에 올라 온 글 전문이다.

연대숲 #66264번째 외침:

집에 빨간 압류딱지가 붙었다

며칠 전 아침,

침대에 누워 빈둥빈둥거리던 시간을 방해하는 초인종이 울렸다

택배가 왔나 해서 봤더니 법원에서 오신 분들이

아버지가 카드 빚을 장기간 연체하셔서 집안의 물건들에 가압류딱지를 붙어야 한다고 하셨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무슨 깡패들이 쳐들어와서 물건 다 부수고

사람 얼굴만한 스티커 붙이고

오줌 지릴 정도의 대사를 내뱉는 것만 봤는데

실제론 그런 거 없고 매우 정중하시다.

스티커도 그냥 보면 헬로우x티 아이템일 줄 알 정도로 작고

일부러 안 보이는데에 붙여주시고 친절히 절차도 설명해 주셨다

예정된 기간 내에 빚 변제가 안 되면 물건들이 경매에 넘어갈 수도 있다 하셨다

아빠의 젊은 시절은 지금의 나와 상당히 닮아 있다

돌려 말하기와 숨기기라고는 모르는 솔직한 성격

새로운 분야에 대한 호기심

글쓰기를 좋아하는 것과

영어를 잘 하는 것

유일하게 안 닮은 건 여자친구가 끊이지 않던 아빠와는 달리

나는 연애 횟수가 그리 많지 않다 뭐 이정도?

아빠는 과거에도, 지금도 나의 우상이다

50이 넘으셨지만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 제일 노래를 잘 부르시고

웬만한 20대보다 훨씬 좋은 몸을 가지시고 계시며

어느 상황에서든 할 말은 하시는 아빠

그런 아빠가 위축되어 있는 모습을 보는 것

나에게는 빚보다, 스티커보다 그 모습을 보는 게 더 고통이더라

내가 할 일은 단순하다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나하나 해 나가는 것

인턴을 구해서 돈을 벌고, 남는 시간에 활동 하나 더 해서 추가 수입 올리고

언어와 경제학 공부하구

남는 시간에는 춤 같이 내가 좋아하는 것도 내 돈으로 배우는 것

그냥 난 지금에 충실하면 된다 그러면 된다

그리고 곧, 정말 곧

돈이 다시는 아빠를 위축시키지 않게 하겠다

그런 종이쪼가리에 휘둘리기엔

우리 아빠는 너무 위대하고 너무 존경스러운 사람이기에

내가 초딩 때부터 아빠한테 사드린다 했던 페라리도 사 드리고

아빠가 즐길 수 있으신 것 맘껏 즐기시게 하겠다

벌써 2시네 이제 자야지

아침 7시쯤 일어나야겠다

다시 지금에 충실한 삶으로 돌아가자

파이팅.

home 권미정 기자 undecided@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