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 리포트 번외편] 아저씨 속옷이었던 BYC가 갑자기 2030 여성들까지 사로잡은 이유

2022-02-08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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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라·벅스·BYC·진로·모나미의 '회춘 마케팅'
헤리티지 포기하고 과감한 혁신으로 회춘에 성공

이 장수 브랜드는 어떻게 회춘에 성공했을까

모든 브랜드는 고객에게 오랫동안 사랑받기를 원한다. 브랜드들은 저마다 고객의 관심을 지속시키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그래서 세상에 나온지 오래된 브랜드는 고민이 많다. 계속 등장하는 신생 브랜드와 경쟁해야 하기 때문이다.

장수하는 브랜드는 저마다의 헤리티지(유산)를 갖고 있다. 헤리티지는 그 브랜드의 독보적 아이덴티티를 만들지만 동시에 양날의 검이 되기도 한다. 당장 고객이 원하는 니즈를 갖고 등장하는 신생 브랜드와 달리, 장수 브랜드는 그동안 쌓인 브랜드 가치를 쉽게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경로의존성(path dependence)’이라는 용어로도 설명된다. 경로의존성은 성공이 입증된 경로가 나중에 비효율적임을 알면서도 쉽게 벗어날 수 없는 경향성을 뜻한다.

게다가 경우에 따라 오래된 헤리티지는 트렌드에 민감한 Z세대에게 고리타분한 인상을 심어주기도 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장수 브랜드는 종종 자사 로고를 변경하거나 유행하는 업체와의 콜라보를 선보이지만, 브랜드에 대한 관심을 지속시키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이때 과감하게 노선을 바꾸는 장수 브랜드도 있다. 이들은 지금껏 고수한 방식을 버리고 파격적인 전략으로 새로운 헤리티지를 써내려가고 있다. 회춘 전략으로 이미지 쇄신과 함께 시장에서의 입지까지 변화시키는데 성공한 장수 브랜드 5곳을 소개한다.

상품의 회춘: 뉴트로를 기회 삼아 상품을 재편성한 휠라

휠라
휠라

휠라(FILA)는 1911년 이탈리아에서 탄생한 패션 브랜드다. 주로 스포츠웨어를 판매하던 휠라는 본진인 유럽 시장에서 부진을 겪고 2007년 휠라코리아에 인수돼 한국 브랜드가 됐다.

휠라는 골프 웨어, 트레킹화 등 중장년층 타깃의 상품을 주력으로 판매해왔다. 젊은 층은 상대적으로 나이키, 아디다스 등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를 선호했기에 휠라는 중장년층의 전유 브랜드라는 올드한 이미지가 있었다.

디스럽터 2 / 휠라 홈페이지
디스럽터 2 / 휠라 홈페이지

그러나 2010년대 후반 휠라의 전성기가 시작됐다. 1990년대 ‘디스럽터’ 모델을 현대식으로 재해석한 ‘디스럽터2’가 대박을 터뜨린 것이다. 뉴트로 열풍으로 시작된 ‘어글리 슈즈’ 유행이 휠라의 물꼬를 텄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신발 전문 매체 풋웨어뉴스는 디스럽터2를 ‘2018 올해의 신발’로 선정하기도 했다.

휠라 인스타그램
휠라 인스타그램

이에 힘입어 휠라는 주력 상품군을 Z세대 취향에 맞는 캐주얼한 제품 위주로 개편했다. 광고 모델도 김유정, 방탄소년단(BTS) 등 MZ세대를 대표하는 연예인으로 기용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디스럽터2를 시작으로 휠라의 다양한 제품이 젊은 세대 사이에서 유행하면서, 휠라는 젊고 트렌디한 이미지로 탈바꿈하는데 성공했다. 2016년 1조 원 미만이었던 휠라의 매출은 2018년 3조 원을 돌파했다.

플랫폼의 회춘: 힙한 플레이리스트 채널을 운영하는 벅스

유튜브, 'essential;'

요즘 감성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유튜브 또는 커뮤니티에서 위와 같은 화면을 한 번쯤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는 바로 유튜브 채널 ‘essential;’(이하 에센셜)의 시그니처 썸네일이다. 에센셜은 구독자 87만 명을 보유한 음악 플레이리스트 채널이다. 에디터도 노동요로 에센셜의 선곡 리스트를 자주 듣고 있다. 에센셜은 특정 분위기를 절묘하게 표현하는 선곡과 함께 특유의 감각적인 썸네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SNS에서 홈 인테리어용으로 에센셜 영상을 TV에 띄운 사진을 자주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어디선가 혜성처럼 등장했을 것 같은 이 채널, 사실은 설립된 지 20년도 더 된 음원 플랫폼의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가? 채널의 주인장은 바로 NHN벅스(이하 벅스)다.

벅스 / 에센셜 로고
벅스 / 에센셜 로고

벅스는 2000년부터 음원 플랫폼으로 서비스를 시작했다. 하지만 벅스는 음원 시장에서 멜론, 플로, 지니뮤직 등 후발주자에 밀려 적은 점유율을 가지고 있다. 이런 상황의 벅스가 도대체 왜 이름에서부터 벅스가 전혀 연상되지 않는 에센셜을 운영하는 걸까?

사실 이전부터 벅스는 앱 내에서 음악 선곡을 전문으로 하는 뮤직PD 제도를 운영하고 있었다. 뮤직PD는 지원한 벅스 회원 중 벅스의 내부 심사를 거쳐 선정되며, 뮤직PD에게는 포인트와 이용권 등의 혜택이 존재한다.

뮤직PD의 플레이리스트는 벅스의 검증을 거쳤기 때문에 수준급 퀄리티를 갖췄지만, 벅스 이용자가 적은 이유로 널리 알려지지 못했다. 유튜브 채널 에센셜은 이 뮤직PD 제도를 홍보하기 위한 목적으로 오픈됐다.

전략은 성공적이었다. 에센셜의 구독자들은 “멜론 해지한다”, “에센셜 알고부터 에센셜만 듣는다”, “에센셜 덕분에 벅스 가입했다” 등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각 영상은 최소 약 10만 회에서 최대 약 255만 회까지 엄청난 조회 수를 기록 중이다.

에센셜은 유튜브로 노래를 감상하는 트렌드를 잘 파고들었다는 분석이다. 대개 음악을 장르 별로 구분만 해주는 음원 플랫폼과 달리, 유튜브로는 엄선된 플레이리스트를 즐길 수 있으며 같은 노래를 듣는 다른 사람의 반응도 관찰할 수 있다. 변화하는 음원 플랫폼의 역할에 에센셜이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모델의 회춘: 누구도 예상 못한 모델로 이미지 변신한 BYC

모델 변경이 이미지 쇄신의 ‘신의 한 수’였다는 평을 받는 브랜드로는 BYC가 있다.

BYC
BYC

BYC는 1946년 창립돼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내의류 전문 브랜드다. 당시 BYC가 판매하는 상품으로는 엄마가 입는 내복으로 고유명사가 된 ‘빨간 내복’, 그리고 일명 ‘난닝구’라고 불린 런닝이 대표적이다. BYC는 그 옛날에도 중장년층을 타겟으로 한 브랜드였다.

BYC 인스타그램
BYC 인스타그램

그랬던 BYC가 2020년 오마이걸 아린을 전속 모델로 선정하는 파격적인 결정을 내렸다. 뿐만 아니라 속옷 광고의 관례를 벗어난 아린의 화보를 공개해 SNS에서 큰 화제를 모았다. 보는 것만으로 편한 파자마 화보, 속옷을 입지 않고 들고 찍은 화보를 공개한 것이다.

BYC의 신선한 행보에 많은 네티즌이 감탄했다. “예전 BYC 느낌이 아니다”, “모델 제안한 사람 상 줘야 한다”, “광고 정말 러블리하게 잘 찍었다”, “모델 바뀐 거 이제 알았는데 진짜 영해졌다”, “예전엔 아저씨 브랜드 느낌이었는데 진짜 상큼해졌다” 등의 반응이 쏟아졌다.

이와 같은 소비자의 뜨거운 반응에 BYC는 한국섬유산업협회가 발행한 한국패션마켓트렌드 내 2020년 상반기 구매율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BYC는 내친김에 아린과 모델 재계약을 추진했다. Z세대 모델 효과를 톡톡히 누리는 셈이다.

캐릭터의 회춘: 1954년생 두꺼비로 20대 사로잡은 진로

진로의 두꺼비는 브랜드의 헤리티지를 트렌디하게 잘 활용한 케이스다. 진로는 일제강점기였던 1924년부터 소주를 판매한 브랜드다. 지금은 하이트맥주에 인수되며 ‘하이트진로’가 됐다.

하이트진로 / 진로 인스타그램
하이트진로 / 진로 인스타그램

특유의 두꺼비 그림이 그려진 진로의 소주는 1954년부터 판매되기 시작했다. 한 인터뷰에 따르면, 진로의 두꺼비표 소주는 1980년대까지 시장 점유율 40%대를 유지했다고 한다. ‘진로 이즈 백’은 당시 판매되던 두꺼비표 소주를 현대의 취향에 맞게 재출시한 제품이다.

진로 인스타그램
진로 인스타그램

특히 ‘진로 이즈 백’을 장식하고 있는 3D로 새단장한 두꺼비 캐릭터가 젊은 세대의 관심을 끌었다. 진로의 두꺼비는 초롱초롱한 눈, 볼록 나온 배 등 독보적인 귀여움을 소유하고 있다. 진로의 두꺼비는 진로 공식 인스타그램의 주인장으로 활동하며 Z세대 소비자와 활발한 소통을 이어가고 있다. 날이 갈수록 높아지는 두꺼비의 인기에 하이트진로는 두꺼비 굿즈를 판매하는 ‘두껍상회’라는 이색 팝업스토어를 오픈하기도 했다.

진로의 두꺼비 캐릭터는 옛날 두꺼비표 소주를 즐겼던 중장년층에게 당시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스위치가 되어준다. 두꺼비표 소주를 접해보지 못한 젊은층에게는 새롭고 신선한 캐릭터로 다가간다. 특이하게도 중장년층과 젊은층 모두를 포섭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디자인의 회춘: 문구 덕후 수집욕 자극하는 감성 선보인 모나미

한국인이 흔히 ‘볼펜’ 하면 십중팔구 떠올리는 그 물건이 있다. 바로 모나미의 153 볼펜이다.

1963년부터 생산을 시작한 모나미 153 볼펜은 한국인의 ‘국민 볼펜’ 자리를 당당히 차지하고 있다. 이렇게 모나미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에 따른 이미지도 고착된지 오래다. ‘가성비 좋음’, ‘집에 하나씩 있는 볼펜 브랜드’, ‘흰색&검은색 조합’ 등의 이미지 말이다.

모나미 인스타그램
모나미 인스타그램
모나미 홈페이지
모나미 홈페이지

모나미의 브랜드 이미지는 ‘한정판’을 활용해 새로운 감성의 디자인을 선보이면서 변화하기 시작했다. 소장하고 싶은 예쁜 디자인의 문구 제품을 한정판으로 판매하는 전략을 내세운 것이다. 모나미는 벚꽃, 광복절, 한글날 등 여러 테마에 맞춰 감성적인 디자인의 제품을 계속해서 선보이고 있다. 최근에는 2022년 호랑이의 해를 기념으로 ‘153 어흥이 에디션’을 출시하기도 했다.

모나미 인스타그램
모나미 인스타그램

모나미는 한정판 뿐만 아니라 다양한 브랜드와의 콜라보도 적극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반스와 협업한 운동화, 배스킨라빈스와 협업한 컬러펜 다이어리 세트, 홍진경과 협업한 문구세트가 그 예시다. 모나미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문구 덕후의 수집 욕구 자극하는 힙한 문구 브랜드로 거듭나는데 성공했다.

에디터의 한 줄 평)

모든 브랜드는 시장의 트렌드에 따라 흥망성쇠의 길을 걷는다. 이에 도태되지 않기 위해 굳건한 헤리티지를 가진 장수 브랜드도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편 앞서 소개한 브랜드는 모두 국내 기업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앞으로도 이들의 회춘 행보를 긍정적으로 지켜보도록 하자.

home 허주영 기자 story@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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