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전 대통령이 오만 대학에서 한 강연 내용

2014-03-18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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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명박 전 대통령 페이스북]이명박 전 대통령이 "인류의 공동목표인 기후변화에 대비하

[사진=이명박 전 대통령 페이스북]

이명박 전 대통령이 "인류의 공동목표인 기후변화에 대비하는 녹색성장과 저개발국가의 경제발전을 하는 일에 도움을 주면서 남은 생애도 보람있게 살고자 한다"고 말했다.

18일 '오만 경제포럼' 참석 차 오만을 방문 중인 이 전 대통령은 술탄 카부스 대학에서 진행한 강연 내용을 페이스북에 공개했다.

이날 강연에서 이 대통령은 과거 현대건설에서 근무했던 시절을 회상하며 "어린 시절 제 꿈은 월급받는 일자리를 갖는 것이었지만 그 후 저는 수많은 사람에게 일자리를 만들어 줄 수 있는 위치에 서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어 "대기업 CEO로서 일구었던 전 재산을 대통령 재임 시절, 사회에 환원했다"며 "어린 시절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살았고, 그 사람들의 도움으로 오늘의 제가 있기에 이를 되돌려주는 마음으로 그렇게 했다"고 밝혔다.

또 "국제원조로 살아가던 대한민국은 제가 대통령으로 재임하던 2009년, OECD 개발원조위원회에 가입하면서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나라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원조를 주는 나라'가 되었다"며 "제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아주 보람있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다음은 이 전 대통령이 페이스북에 올린 강연 내용이다.

술탄 카부스 대학생 여러분,

정말 반갑습니다.

오만 최고의 국립종합대학인 술탄 카부스 대학에서

오만과 중동의 앞날을 짊어질

젊은 대학생 여러분과 대화하는 시간을 갖게 된 것을

큰 기쁨으로 생각합니다.

저는 세계 여러 나라를 방문하면서

대학생들과 만나는 기회를 많이 가졌습니다.

그 때마다 학생들과 나눈 대화가 참으로 인상깊어

지금도 생각이 많이 납니다.

여러분을 보니 오늘도 아주 좋은 시간이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이 자리에 함께 하신 여러분,

한국과 오만은 올해로 수교 40년이 되었습니다.

우리 양국은 여러 면에서 공통점이 있습니다.

오랜 역사와 전통을 이어가고 있고,

국민들이 평화를 사랑하고, 친절하며,

관용적인 성품을 지니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 양국은 1974년 수교 이래

국제무대에서 서로 긴밀하게 협력해 왔고,

문화 및 인적 교류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특히 대통령 재임시인 2011년 1월,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되었던 삼호 주얼리호의 선장이

총상을 입고 위독했을 때

술탄 카부스 병원에서 수술과 치료를 잘 해주어

생명을 건졌습니다.

당시 우리 국민 모두가 다 마음을 졸이며

선장이 살아 돌아올 수 있기를 기원했습니다.

다행히 선장이 위기를 넘기고 회복되었고,

지금도 우리 국민은 ‘오만왕국’이라고 하면

그 때 일을 생생하게 기억하며 감사의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술탄 카부스 대학생 여러분,

대한민국의 지난 반세기와 나의 일생을

간략하게 여러분들 앞에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오래전입니다만 1953년,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에

1인당 GDP는 40달러가 되지 못했습니다.

전쟁으로 모든 것이 다 파괴되었습니다.

먹는 것, 입는 것 모두를 다

국제사회의 무상원조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대한민국은 자원도 없습니다.

석유도 개스도 전혀 나지 않습니다.

자본이나 기술은 더욱이 없었습니다.

경험도 물론 없었습니다.

그러나 불과 반세기만에 대한민국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모두 이루어낸 나라가 되었습니다.

한국의 1인당 GDP는 2만 4천 달러를 훨씬 넘어섰고,

경제규모는 이제 세계 15위에 올라섰습니다.

저는 대통령 재임 시에 세계 많은 나라를 방문하면서

세계의 많은 정상들로부터 같은 질문을 받았습니다.

“자원을 100% 수입에 의존하고,

경험도 없는 한국이

경제발전을 이렇게 이룰 수 있었던 주된 원동력이 무엇입니까?”

저는 아무 주저함 없이

“그것은 교육의 힘”이라고 대답해 왔습니다.

무상원조로 살아가는 극도의 가난 속에서도

우리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고등교육을 시켰습니다.

그렇게 길러진 높은 수준의 인적 자원이

아무 것도 없는 나라에서

경제성장의 기적을 만드는 중심 인물들이 되었습니다.

교육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었다고

감히 말씀드릴 수가 있습니다.

오만 또한 오래 전부터

정부와 국민 모두가 교육에 큰 힘을 쏟아 왔고,

오늘날 높은 진학률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특히 여기 술탄 카부스 대학에 와서

여학생이 이렇게 많은 것을 보면서

오만 미래가 정말 기대가 됩니다.

한국도 옛날에는 여성 활동이 활발하지 못했습니다.

오랜 전통이 여성들이 사회적 활동하는 것을 막아왔습니다.

그러나 산업화가 되는 과정에서 우리 대한민국은

여성의 경제활동과 사회 참여가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렇게 됨으로써 한국의 경쟁력 또한 계속 높아지고 있습니다.

남성과 여성 인력 모두를 확보하는 것이야 말로

국가경쟁력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입니다.

그런 점에서 오만은 중동에서 앞서 가는 나라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술탄 카부스 대학생 여러분,

나는 교육이야말로

현실을 바꾸는 위대한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은 물론, 제 일생도

가난 속에서 교육을 통해 삶이 변화된

하나의 큰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당시, 대한민국 모든 사람이 다 가난했습니다마는

우리 가족은 그 중에서도 아주 가난한 쪽에 속했습니다.

저는 중학교를 겨우 마치고

낮에는 일하고, 밤에 야간 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했지만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일용노동자가 되었습니다.

그 때 제 꿈은 월급 받는 일자리를 갖는 것이었습니다.

4년 간의 대학 과정은

매일 새벽, 시장 쓰레기를 치우면서 돈을 벌어

간신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대학 졸업 후에 중소기업인 현대건설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월급 받는 직장에서 일하게 된 것,

드디어 꿈이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에는 작은 중소기업에 불과했지만

저는 혼신을 다해서 그 회사가 커지기 위해서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작은 건설회사가 자동차를 만들기 시작했고,

대형 유조선을 만들기 시작했고, 또 제철도 하기 시작했고

여러 분야로 사업이 확대되었습니다.

저는 그 일을 하는 한 가운데서 중심이 돼서 일을 했고,

입사 5년 만에 이사가 되고,

12년 만에 대한민국에서 최연소 CEO가 되었습니다.

제가 입사할 때는 종업원이 100명도 되지 않았던 기업이

세계적인 대기업이 되었고,

제가 회사를 떠날 때는 종업원이 16만명이 넘는

그룹으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됨으로써 저 개인도 발전하고, 회사도 발전하고, 대한민국도 발전하는 것을 몸소 겪고 보아 왔습니다.

어린 시절 제 꿈은 월급받는 일자리를 갖는 것이었지만

그 후 저는 수많은 사람에게 일자리를 만들어 줄 수 있는 위치에 서게 되었습니다.

이는 제 생에 있어서 가장 큰 보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몸담았던 기업이 성장하고

대한민국 경제가 성장하는데 있어서

중동과의 인연을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제가 CEO가 되었을 때

회사는 세계 모든 대륙을 무대로 해서 활약하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20세기 최대의 역사(役事)’라고 불렸던

사우디아라비아의 주베일 산업항 공사를 성공적으로 해냈고,

사실은 이곳 오만에서도 1980년에 미나 알 파할(Mina Al Fahal) 정유공장 건설에도 참여를 했었습니다.

그 외에도 UAE, 쿠웨이트, 이란, 이라크, 바레인, 리비아 등

여러 중동 국가들에 진출하여 이룩한 사업들은

중동의 발전과 대한민국 발전에 모두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중동지역에 유럽 기업들이 먼저 진출했습니다만

한국 기업들이 진출하면서 경쟁이 강화되었기 때문에

중동 국가 발전에도 아주 도움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많은 한국인들이 중동에 나와 일을 했고,

지금도 이 지역과의 인연은 계속 되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과 오만과의 우호 협력 관계가

날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오만의 제1위 LNG 수출대상국이며,

그간 여러 한국 기업들이

오만의 주요 프로젝트에 참여해 왔고 지금도 참여를 하고 있습니다.

철도사업, 정유사업 등 한국 기업들이 높은 경쟁력을 갖고

참여를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요즘 오만에서 한국산 자동차, 전자 제품에 대해서

인기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대한민국 자동차를 처음 만들 때 참여했던 사람이기 때문에

감회가 남다릅니다.

이제는 상품만 왔다갔다 할 뿐만 아니라,

오만의 젊은 대학생들과 한국의 학생들이

활발하게 교류하기를 바랍니다.

오늘날 젊은이들은 국경없이

서로 마음을 나누고, 소통하고 있습니다.

지구촌의 미래를 이끌어갈 한국과 오만의 학생들이

서로 만나고 교류하는 기회가 더욱 많아지길 이 자리에서 기원합니다.

술탄 카부스 대학생 여러분,

저는 여러분에게

무엇보다도 꿈을 가지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꿈이 있으면 미래를 계획하고 준비할 수 있습니다.

꿈이 있으면 오늘 당장은 힘들고 어렵다고 하더라도

이를 이겨낼 수 있는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꿈은 꿈을 꾸는 것만으로는 이룰 수 없습니다.

도전해야 합니다.

도전하고 또 도전하면 반드시 이룰 수 있습니다.

실패가 두려워서 도전하지 않는 사람보다,

설사 실패하더라도 도전을 한 사람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고, 얻을 수 있습니다.

더욱이 여러분은 젊습니다.

실패해도 다시 도전하고 도전할 기회를 가질 수 있는 특권이 있습니다.

술탄 카부스 대학에서 교육받는 여러분은

오만을 이끌어갈 미래 지도자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을 위해서만 살아가면 안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이웃을 위해서,

또한 조국 오만을 위해서 열심히 일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저는 기업을 떠나 국회의원과

인구 1,100만 서울특별시의 시장을 역임하고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대기업 CEO로서 일구었던 전 재산을

대통령 재임 시절, 사회에 환원하였습니다.

어린 시절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살았고,

그 사람들의 도움으로 오늘의 제가 있기에

이를 되돌려주는 마음으로 그렇게 하였습니다.

국제원조로 살아가던 대한민국은

제가 대통령으로 재임하던 2009년,

OECD 개발원조위원회에 가입하면서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나라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원조를 주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이 국제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였고,

이는 제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아주 보람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수많은 실패와 도전을 거쳐서 꿈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제 새로운 꿈을 꾸고 있습니다.

인류의 공동목표인 기후변화에 대비하는 녹색성장과

저개발국가의 경제개발을 하는 일에 도움을 주면서

남은 생애도 보람있게 살고자 합니다.

여러분들도 끊임없이 도전하여

자신과 사회와 조국을 위해 품은 꿈을 꼭 이루어주시길 바랍니다.

경청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home 김도담 기자 story@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