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서 가정폭력을 인식하는 방식, 존재하는 방식

2014-11-20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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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서 가정폭력을 인식하는 방식, 존재하는 방식

우리 사회에서 가정폭력을 인식하는 방식, 존재하는 방식

변신원(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교수)

최근 경기도 안산에서 10년 넘게 가정폭력에 시달렸던 여성이 살해, 암매장된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 여성이 숨지기 이틀 전에도 아들이 아버지가 어머니를 폭행하고 있다며 여러 차례 112에 신고하였으나 가정에서 흔히 있을 수 있는 일로 치부하여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않은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2011 5, 대한민국에서 가정폭력은 영국이나 일본보다 5배나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가정폭력을 부부싸움의 연장선으로 가볍게 여기거나 배우자를 소유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가정폭력 피해자의 절반 가까이가 10년 넘게 가정폭력에 시달렸다고 호소했다. 하지만 이 가운데 7.9%만 별거나 이혼을 택했을 뿐 대부분은 참고 사는 것으로 나타났다. 왜 가정폭력 피해는 이렇게 노출되지 않는 것일까. 일상적으로 가정폭력을 생각하는 우리의 인식방법을 점검해 보자.

[양평원]

첫째, 정상가족이데올로기. 대부분의 사람들은 화목한 가정의 환상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가정폭력문제를 노출하지 못한다. 우리 집이 폭력 가정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주변에서 이상하게 볼 것이 분명한데 차라리 아무 말도 말아야 한다고 결정한다. 가정폭력의 발생비율이 그렇게 높은데도 우리는 이 허울을 벗지 못한다.

둘째, 불편부당한 폭력까지 가정교육이라고 주장하면 통용된다. 왜곡된 훈육의 인식은 구타행위, 인격모독 및 기타를 가르침의 방법으로 오인한다. 그러나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명분하에 사용되는 폭력은 잘못된 문제해결방식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태도는 가족 내에서 다른 폭력을 학습하는 원인이 된다. 때로는 엄마가, 때로는 아이들이 폭력을 학습한다. 폭력은 어떤 짐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상적인 일이 된다.

셋째, 가해자는 당당하고 피해자가 부끄러워한다. 가해자는 “내가 오죽하면 그랬겠는가? 다 잘 살아보자고 그런 것이다.”라고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한다. 피해자는 폭력유발자가 된다. 가해자가 이해받고 피해자가 오히려 의심받는다면 누가 피해를 이야기 하겠는가.

이런 잘못된 사고방식이 가정폭력을 지속시키는데 일조한다. 폭력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고 가해자는 자신의 폭력행위를 합리화한다. 그래서 가정폭력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가정폭력의 단순한 부부싸움에 불과한 것이 아니며 가정 내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 폭력에 대한 민감성 등을 학습해야 하는 것이다.

가정폭력을 사소한 싸움으로 치부하는 의식이 경찰의 수사에도 영향을 미쳐 돌이킬 수 없는 피해로 연결된 사례는 많다. 2012년에는 가정폭력 신고전화를 받고 가해자에게 확인전화를 걸어 출동하지 않아 비난을 받았고, 경찰이 피해자의 신고를 받고도 '부부싸움' 운운하며 안일하게 대처하여 그 피해자가 납치범에게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가정폭력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각되었으며 인권교육의 중요성이 부각된 것이다.

가정폭력은 가정 내 일이 아니고 사회문제이다. 세상에 맞을 짓이란 없다. 비하되거나 조롱되어야 할 인격도 없다. 부족하면 채워줘야 하고 안 되면 도와줘야 한다. 그러므로 폭력에 대해 “피해자 유발론”이 설 자리가 있어서는 안된다. 가정폭력의 피해자는 부끄러워해야하는 사람이 아니고 보호, 지원 받을 대상이다. 가해자는 자신의 가해행위에 대해 엄격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 이런 원칙이 서야 가정폭력 발생율이 줄어들 것이다.

마지막으로 알아두어야 할 것은 많은 경우 폭력 행위자는 피해 대상의 잘못과 관계없이 자신의 분노와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폭력에 노출된 약자를 가해한다는 것이다. 국이 짜면 짜서 싱거우면 싱거워서 화를 내고 구타를 한다면 무슨 수로 폭력을 피할 수 있겠는가. 이처럼 폭력은 그저 자기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이 아니라 약자에 군림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폭력에 대한 이해를 통해 자신의 나약함과 분노를 감추기 위해 시작된 폭력의 행위가 타인을 지배하는 행위양식으로 자리잡지 않도록 폭력에 대해 더욱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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