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버리는 상자 '베이비박스' 운영자가 한 말

2015-07-30 16:00

add remove print link

'베이비룸'은 아이를 놓고 가기 전 한 번만 생각할 시간을 가지라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베이비박스 페이스북

"박스까지 왔다가 그 작은 문도 차마 열지 못해 아이를 그냥 시멘트 바닥에 두고 가. 옆집 주차장, 주변 슈퍼 앞, 공중전화부스까지... 하혈하며 핏덩이 아이를 들고 이곳을 찾는 산모들이 아이를 놓고 황급히 도망가는 그 모습이 나로서는 너무 가슴 아팠지. 좀 더 효율적으로 아이를 보호할 길이 어떤 것일까 고민하다 작은 방을 만들었어. 산모가 한 번만이라도 직접 아이와 교감하고, 침대에라도 눕혀 볼 수 있게 말이야"

대한민국 최초로 '베이비박스'를 설치해 버려지는 아이들을 보살펴온 주사랑공동체교회 이종락 목사(61)가 한 말이다.

베이비박스 / 이하 위키트리

입양시설에 보내지 못하는 버려진 아이, 부득이한 사정으로 아이를 키울 수 없게 된 산모가 아이를 두고 갈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베이비박스'에 변화가 생겼다.

2015년 8월부터 건물 안으로 들어가 아이와의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만든 '베이비룸'이 운영되고 있다. '베이비룸'은 아이를 놓고 가기 전 한 번만 생각할 시간을 가지라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주사랑공동체교회를 찾아 이종락 목사와 이야기를 나눴다. 이 목사는 미혼모와 아이들을 위해 마련한 공간을 직접 설명했다.

베이비박스 아이들과 미혼모를 위한 공간으로 탈바꿈

현재 관악구 난곡동에 있는 주사랑공동체교회는 리모델링으로 온전히 '베이비박스'와 '베이비룸'을 위한 공간으로 바뀌었다. 건물 왼편 담장에는 기존 그대로 '베이비박스'가 설치돼 있으며, 우측에는 '베이비룸'을 향하는 계단이 만들어졌다.

초창기 이곳에 살고 있던 이 목사가 양자로 입양하거나 후견인으로 등록해 키운 19명의 아이는 리모델링이 시작되면서 금천구 시흥동 주사랑공동체교회로 거처를 옮겼다.

주사랑공동체교회 오른쪽에 있는 계단을 올라 벨을 누르면 '베이비룸'으로 들어갈 수 있다. 내부에는 이곳을 찾은 이들이 쉴 수 있는 소파와 아이 침대가 있다.

이 목사는 "단 십 분만이라도 미혼모가 따뜻한 공간에서 태어난 아이를 보고 교감할 수 있도록 만든 공간"이라며 "미혼모의 요청이 있기 전까지는 아무도 이곳에 들어가지 않는다. 아이 침대 위에는 상담이 필요하면 누르라는 설명과 함께 벨이 설치돼 있다"라고 설명했다.

교회는 '베이비룸'에 아이를 놓고 떠나려는 이들이 상담을 통해 마음을 바꿔 아이를 키울 것을 약속하면 자립할 수 있는 일자리를 소개해 주고 당분간 지낼 수 있는 공간도 제공한다.

실제 건물 1층에는 미혼모들이 출퇴근하며 거주할 공간이 마련돼 있었다. 교회는 미혼모가 아이를 맡기고 일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곳은 6개월에서 1년 사이 장기 거주자들의 공간이다.

1층에 있는 집 2채에는 각각 2개의 방과 화장실, 주방이 마련돼 있다

또 건물 3층에는 미혼모가 원한다면 아이와 짧게는 하루에서 이틀 동안 머물다 갈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됐다. 내부에는 미혼모들이 쉴 수 있는 침대, 소파 등이 있다.

미혼모들이 머물다 갈 수 있는 3층 공간이다

엄마 잃은 '작은 천사'들이 머무는 곳

교회 정문으로 들어가 왼쪽 문을 열고 작은 거실을 지나면 들어온 아이들이 머무는 공간이 있다. 방문 당일 이곳에 있는 아이는 총 4명. 이들 머리맡에는 이름표와 함께 '시설', '위탁'이라는 표시가 적혀 있었다.

'시설'은 말 그대로 여러 단계 조사를 거쳐 보육원으로 보내지는 아이, '위탁'은 형편이 어려워 이곳에 잠시 맡겨진 아이를 뜻한다.

베이비박스에는 일주일에 많게는 8명, 1달에 20~25명, 2009년 12월부터 현재(28일)까지 760명의 아이가 버려졌다.

아이들은 대부분 10대 청소년(60%), 미혼모, 미혼부, 생모의 친구나 가족 등을 통해 버려진다. 또 성폭행, 근친상간, 외국인 불법 노동자의 아이, 외도로 낳은 아이 등 다양한 사연으로 이곳에 온다. 이 목사는 98%가 태어난 지 일주일이 채 되지 않은 아이들이라고 말했다.

베이비박스를 통해 아이가 들어오면 미아 신고를 하고 112지구대 조사를 받는다. 이후 시설로 보내지는 아이들은 구청, 어린이 시립병원, 보호소 등을 거쳐 보육원으로 간다. 이들은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에 이곳을 떠난다.

아이들이 있는 공간에는 현재 세 명의 사회복지사가 3교대 근무를 한다. 이날 한 복지사에게 지난 주말 태반을 그대로 단 채 이곳에 버려졌다는 남자아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지난 토요일 한 산모가 이곳에 방문하겠다는 전화를 했어요. 그런데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아이를 '베이비박스'에 두고 사라졌죠. 오후 5시쯤 태반까지 달고 들어온 그 아이의 탯줄은 이곳 거실에서 잘랐어요. 이후 아이 엄마가 게시판에 찾으러 오겠다는 글을 남겼더군요. 전화 주겠다는 말이 있었을 뿐 기약은 없었어요. 이번 주까지 연락이 없으면 아이는 시설로 보내집니다.

내부에서 본 베이비박스. 출생일을 꼭 적어달라는 메모가 있다

아이가 '베이비박스'에 오면 내부에서는 벨이 울려요. 그럼 빠르게 달려가 내부로 연결된 문을 열어 핏덩이 아이를 두고 가려는 이들의 손을 잡아요. '아주 잠깐만이라도 이야기 나누고 가세요'라고 말합니다. 아이를 키울 수 없기에 이곳을 찾았겠지만 그래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기 위해서죠. 어느 정도 지원받을 수 있는 부분도 설명하고요.

또 아이를 위해 뭐라도 기록을 남기기 위해서입니다. 언제 어디서 태어났는지라도... 편지 한 통 없이 아이를 두고 부리나케 달아나는 이들에게서는 아이에 대한 어떤 정보도 얻을 수 없거든요. 다들 형편이 어려워 이곳에 왔겠지만, 아이를 웬만하면 키우라고 설득해요. 그런데도 거절하는 분들이 많죠..."

아이를 두고 떠나는 미혼모들은...

이종락 목사

이종락 목사는 이곳을 찾는 미혼모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그는 "미혼모에게는 100% 우울증이 있다. 그 우울증은 여러 유형으로 나타나는데 그들은 '아이를 질식사시키고 자살하려 했다', '아이를 학대했다' 등의 끔찍한 이야기들을 쏟아내기도 한다"며 "아이를 낳고 정신이 온전치 못한 상태에 있는 이들을 다독여 온전한 삶을 살아가고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것 또한 아주 중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목사는 이곳에 다시 찾아와 아이를 데려가는 이들도 15% 남짓 된다고 밝혔다. 또 도움을 요청하거나 이곳에서 아이를 되찾아 간 49명의 가족이 현재 교회로부터 최소한의 지원을 받아 아이를 키우고 있다고 전했다.

이날 목사는 3년 전 비닐 쇼핑백에 포개져 '베이비박스'에 버려진 한 쌍둥이 자매 사연을 전했다. 이 목사는 "지난해 쌍둥이 중 한 명이 장애가 있어 수술해야 하는 상황이라 방송에 소개됐었다. 그런데 이 방송을 본 생모가 '제가 여유가 좀 생겼습니다. 다시 아이를 찾고 싶어요'라며 우리에게 전화했고 아이를 찾을 수 있는 곳을 가르쳐 줬다"라고 말했다.

그는 교회 측에 감사 인사를 전하던 미혼모와 당시 쇼핑백에 버려졌던 아이들을 회상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베이비박스'가 없었다면 이미 이 세상에 없을지도 모를 아이들이다.

쌍둥이 사연은 2014년 KBS 1TV '사랑의 리퀘스트'에 소개됐고, 이날 노래를 하기 위에 무대에 오른 가수 백지영 씨가 눈물을 보여 주목받기도 했다.

KBS 1TV '사랑의 리퀘스트' 방송 영상 캡처

정부 지원 없이 운영되는 보육시설의 현실

주사랑공동체교회는 시설이 좁고 아이들이 살기 적합하지 않다는 이유로 정식 보육시설 허가를 받지 못해 정부 지원도 없다. 목사는 이곳 한 달 운영비가 3000만 원 이상이라고 했다.

현재 교회를 가장 많이 후원하고 있는 곳은 미국 베이비박스 후원 단체 'Kindred Image(킨드리드이미지)'였다. 또 교회 헌금, 개인이나 단체의 후원금, 이곳 사연을 접한 이들이 교회로 보내오는 아이 옷과 생필품 등이 모여 운영되고 있었다.

사회복지사들이 3교대로 근무하고 있지만 여러 명의 아이를 혼자 돌보기란 쉽지 않아 이곳에 방문하는 봉사자들이 일손을 돕고 있다. 봉사자들은 모두 기초 교육을 받은 후 아이들과 만난다. 이마저도 여의치 않을 때는 조태승 부목사와 복지사가 양 손에 젖병을 들고 밥을 먹일 때도 있다.

시민들이 보내온 옷과 생필품들

시설을 둘러싼 찬반논란

이 시설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관악구청은 베이비박스가 영아 유기를 조장하고 있다며 불법 행위라는 내용의 공문을 해마다 보내고 있다. 유기 자체를 막을 수 없다면 생명과 안전이라도 보장해야 한다는 교회의 입장과 그 자체가 유기를 조장한다는 반대 입장이 충돌하는 것이다.

이에 목사는 "불법 시설임을 지적하는 형식상의 공문일 뿐 이곳을 철거해야 한다는 내용은 보내지 않는다"며 "아이들이 있는 공간이 제대로 된 시설로 빨리 인정받길 바란다"고 밝혔다.

또 "이곳에 아이를 놓고 가는 사람들은 성폭행, 미성년자, 혼외임신 등을 이유로 출생신고를 도저히 할 수 없는 지경에 있는 이들이다. 지금의 정책대로라면 어린 생모와 그들의 아기 둘 다 보호받지 못한다. 정부가 익명출산을 인정하고 입양특례법을 재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로써는 법적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출생신고를 못 하거나 까다로운 입양 제도, 미혼모에게는 턱없이 부족한 복지체계 등을 이유로 이곳에 아이들이 버려지고 있다. 또 미혼모들은 아이를 입양 보내면 각종 문서에 혼외자를 낳았다는 사실이 남겨지는 것이 두려워 아이를 유기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제도적 문제가 지적되자 최근에는 가족관계증명서에 미혼모의 자녀출산 기록 등이 나타나지 않게 하고 미혼부도 출생신고를 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이 추진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사랑공동체교회에 찾아온 변화

주사랑공동체교회는 산부인과 2곳과 협약을 맺어 병원비가 없어 '병원 출산'을 하지 못하는 미혼모들에게 무료 출산을 지원하고 있다.

또 홀트아동복지회(@prholt)와 한 종합식품회사 측이 교회와의 협약을 약속했다.

미혼모들이 아이를 두고 떠나며 남긴 편지

home 김도담 기자 story@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