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폭력 다룬 웹툰 그린 '단지' 작가 인터뷰

2015-09-10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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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단지' / 이하 레진코믹스(동의를 얻고 게재한 것이다) 가정폭력 문제를 다룬 '괴로

웹툰 '단지' / 이하 레진코믹스(동의를 얻고 게재한 것이다)

가정폭력 문제를 다룬 '괴로운' 웹툰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웹툰 사이트 레진코믹스에서 지난 7월 8일부터 연재를 시작한 일상툰 '단지'는 10일 기준으로 이곳 전체 웹툰 인기순위 4위, 일상툰 부문 인기순위 1위를 차지하며 화제다.

성인을 위한 만화가 많은 레진코믹스에서 일상툰이 주목 받는 건 다소 이례적이다.

일상툰은 작가의 하루 일기를 담은 가벼운 내용이 대다수다. 정철연 씨의 '마린 블루스'나 서나래 씨의 '낢이 사는 이야기'는 비교적 밝은 분위기로 자신의 이야기를 그렸다. 그러나 '단지'에서 만화의 주인공 '단지'가 마주치는 일상은 그보다 훨씬 잔혹하다.

'단지'는 상처받은 한 여성의 고백담이다.

31살 단지는 독립해서 마음 편히 싱글 라이프를 즐기고 있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엄마에게 아빠가 갑자기 입원했다는 전화가 오고, 그는 오랜만에 가족들과 마주친다.

엄마는 세 자녀 가운데 둘째 딸인 단지에게만 아빠의 병간호를 요구한다. 이 사건을 계기로 그는 자신이 오빠와 남동생 사이에서 노골적인 차별을 받았던 일들을 다시 떠올린다.

이어지는 만화에서 어릴 때부터 가정폭력과 아동학대에 노출됐던 단지는 31살이 된 지금까지도 끊임없이 이어지는 폭력에 휘둘린다.

단지의 폭로 때문에 SNS와 인터넷 커뮤니티는 떠들썩했다. 단지 이야기가 충격적이라는 반응이 많았지만, 위안받았다는 반응도 적지 않았다.

그렇다고 단지를 응원하는 독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일방적인 폭로가 아니냐는 의견부터 "왜 가족을 헐뜯느냐"라는 부정적인 반응도 있다.

그래서 일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단지 이야기만 나오면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심지어 한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는 아예 '단지' 단어 자체가 금지어가 됐다.

웹툰 '단지'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자신의 이야기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익명성'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단지(32) 작가와 인터뷰를 할 때 더 조심스러웠다.
레진 코믹스 본사 / 위키트리

인터뷰는 레진코믹스 본사에서 단지 작가와 웹툰 '단지'를 담당하시는 김지아 PD와 함께 지난 8일 진행됐다. 다만 단지 작가가 신분 노출을 꺼려 사진 촬영은 하지 못했다.

만화 주제 때문인지 조심스럽게 시작한 인터뷰였지만, 단지 작가는 편하게 웃으며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히 털어놓았다.

- ‘일상툰’에서 가정폭력 문제가 직접 다뤄지는 경우는 거의 없었어요. 어떤 계기로 자전적인 문제를 그려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나요?

"예전에 그런 가정환경에 처해있을 때 제 버팀목은 만화였어요. 언젠가 제가 이 소재(가정폭력)로 만화를 그려야지 생각했어요. 극한의 감정을 뽑을 때 좋은 만화가 나온다는 이야기가 있잖아요. 이 잔여물이 좋은 만화가 될 거라는 생각이 약간은 있었어요.

그렇다고 순수하게 완전 나의 이야기를 그대로 보여줄 생각까지는 없었어요. 그때 생각했을 때는 그냥 이런 이야기 중에 소재를 뽑아서 각색해야지 생각했었는데, 이런 이야기를 날 것으로 한 이유는….

제가 '단지' 이전에 다른 작품을 다른 매체에서 다른 편집자와 상의를 하면서 연재 준비를 했어요. 그게 불과 6개월가량의 기간이었는데. 그 편집자가 만화를 재미없다고 많이 비판했어요.

'재미없다. 네가 정말로 하고 싶은 얘기야? 네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면 이렇게 재미없을 리가 없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며 상당히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죠. 그래서 고민했죠. 그때 준비하던 이야기가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아니긴 했어요. 그렇게 고민을 많이 했어요.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에 대해서.

제가 독립하면서 편하게 살고 있을 때, 엄마한테 연락이 왔죠. 아빠 병원 빨리 가보라고.

'나는 괜찮아졌어'라고 생각했는데 엄마가 거기서 날 대하는 그런 모습을 보고 다시 옛날 감정이 소용돌이쳤어요. 괜찮아졌던 게 아니었던 거죠. 내가 (엄마한테) 한 번도 이야기한 적이 없으니까, 이 사람은 괜찮은 줄 알고 아무렇지 않은 줄 아는구나 생각했어요.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를 고찰하는 와중에 내가 고민하던 부분을 엄마가 다시 환기해 준거죠. 그게 만화 1화에요."

이하 레진코믹스(동의를 얻고 게재한 것이다.)

- 자전적인 내용이다 보니 민감한 부분도 있으리라 생각되는데요. 혹시 개인적인 문제로 만화에 각색되는 부분이 있나요?

"이름 빼고 각색된 부분은 없어요. 전부 다 100% 사실에요. 물론 제 입장에서 그린 거긴 하지만요. 애초 기획이 내가 가족들에 전해주는 이야기였으니까. 그렇게 할 거면 사실을 이야기해야 하잖아요. 그래서 사실만 그리고 있어요.

애초에 (작품) 구상 자체가 내가 한 번도 하지 못한 이야기를, 엄마한테 '엄마 이랬잖아', '아빠 이랬잖아' 하는 이야기에요.

이렇게 할 거면 거짓말은 하면 안 되는 거잖아요. 그래서 각색을 안 한 거예요. 극적인 재미라면 각색을 할 수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가족들한테 사실을 말하고 싶었어요. 가족들한테. 내가 이런 일을 겪었었는데 기억하세요? 이렇게."

- 가정 내 폭력은 일상적이어서 폭력인지 모르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작가님 어떤 계기로 이 문제를 인식하기 시작하셨나요.

"저도 어릴 때는 몰랐어요. 너무 당연하니까. 말씀하신 것처럼 인지를 못 해요. 생활화돼서. 사회생활을 하면서 인지했어요. 사실 대학생일 때도 크게 느끼지 못했고, 회사 생활을 하면서 느끼게 된 거죠.

확실히 와 닿았던 게 뭐였다면, ‘미X넷’이였죠.

그 이전까지는, 보통 피해자들이 대부분이 '자신의 문제인가?', '내가 잘못했나?' 많이 생각하거든요. 같은 사례를 접하면서 '아, 이게 내 문제가 아니구나' 알게 되거든요.

거기(미X넷)가 여자가 많으니까 시댁 이야기가 대부분인 와중에 저 같은 사람들이 조금씩 글을 써나요. 저는 그걸 찾아보면서 위안을 얻는 거죠. 나 혼자가 아니었어. 이러면서."

- 연재 2개월 사이에 이만한 관심을 끄는 웹툰은 흔치 않을 거예요. 작가님은 지금 ’단지’가 폭넓은 관심을 끄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폭넓은 관심까지는 모르겠어요. 저는 처음에 연재를 시작할 때 마이너한 길을 갈 줄 알았어요. 이렇게 관심이 많을지도 몰랐고요. 레진 구석퉁이에서 조용하게 연재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 메인에 걸리고.

레진코믹스 홈페이지

그랬는데, 그렇게 반응이 좋은 걸 보면 그런 가정이 많은 것 같습니다. 가정에서 차별을 겪은 사람들이 많이 공감하시는 것 같습니다."

- 많은 웹툰 사이트 가운데 레진코믹스에 연재된 계기가 뭔가요? 레진코믹스의 색깔과 살짝 다른 웹툰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레진이 ‘짱’이잖아요. 농담이고요, 아까 이야기 드렸는데 원래는 다른 곳에서 하려고 했습니다. 그건 아예 다른 작품이었고, 그쪽에서 파투가 나면서 바이바이 하게 된 거고. 단지는 먼저 샘플 원고를 쭉쭉 뽑았어요. 여러 매체를 접촉했는데, 레진이 좋다고 했다고 오케이를 하신 거죠."

김지아 PD: "다른 곳에는 두 번 퇴짜를 놨대요. 그럼 나한테 그럼 세 번째로 나한테 온 거야? (웃음) 만화를 봤는데 저는 되게 좋았어요. 파일럿 때 단지는 처음에 흑백이었어요.

작가님한테 '만화가 흑백이면 만족도도 낮고, 밀도도 낮다' 말했죠. 흑백이었을 때는 정말 어두웠거든요. 안 그래도 밝은 이야기가 아닌데, 흑백이면 정말 독자가 받아들일 때 더 어려울 것 같았어요. 일단 컬러로 가서 조금 더 밝은 느낌을 얹어보자.

자신만의 이야기를 솔직하고 담담하게 풀어내는 점이 와 닿았어요. 마음 속에서 고민을 많이 했겠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 이야기는 누군가에게 분명히 감동을 줄 수 있거든요. 그래서 흔쾌히 연재하자 했어요. 저는 딱히 '단지'가 레진코믹스 색깔과 다르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이하 레진코믹스(동의를 얻고 게재한 것이다.)

- 레진코믹스에는 댓글란이 없는데 어떻게 팬들의 반응을 아시나요?

"저는 가끔 검색해서 찾아봐요. 트위터가 검색이 제일 많이 돼서 트위터 위주로 봐요. 그랬는데 요즘에는 덜 보는데, 작품 활동에 집중하기 위해서죠.

한때 2000년대 초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그림을 올리기도 했어요. 대충 2003년부터 2007년까지 활동했는데, 그때 욕을 다 먹어봐서 지금 안 좋은 반응들 보면 크게 상처받지는 않고요. 그냥 가볍게 넘기려고 하고 있죠."

- 단지는 주요 커뮤니티 사이에서 상당한 화제를 얻고 있습니다. 여자한테만 호소할 수 있는 만화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남자들한테도 적잖은 반응이 있습니다.

"원래는 제가 그릴 때 '여자'에 포커스를 맞추진 않았어요. 순수하게 '제' 이야기였거든요.

그러니까 가정 안에서 겪은 불평등에 관한 이야기였던 건데, 독자들은 여성으로서 받는 차별이다. 아니다. 서로 싸우잖아요.

여성의 문제다 아니다. 저는 전혀 상관없어요. 순수한 차별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정확히 말하면 가족이 주는 아픔을 말하고 싶었어요. 그걸 알아보시는 독자는 남자임에도 감정이입을 하시는 거죠. 내가(남자 독자) 받았던 차별을 단지에서 보고. 그러시는 거 같아요.

그분들은 남녀차별이라고 굳이 보시진 않는 거 같아요. 아픔 자체에 주목하시는 거지."

- 일부 독자들은 ‘단지’의 관점이 자기중심적인 생각이라고 비판하기도 합니다.

"애초 구상이 저는. '내가 겪은 일을 우리 가족들한테 말해줘야지'가 처음 기획이었기 때문에, 제 입장에서밖에 말하는 것은 어쩔 수 없어요. 소심해서 한 번도 말을 못했다고 1화에 말했는데, 저는 너무 한이 맺힌 거에요. 그래서 만화를 통해서 말하고 싶었던 건데, 양쪽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공정성은 애초 구상 자체를 안 했어요.

하지만 저도 제 시선에서 그려지는 이야기인지라 감정이 과잉될 수 있는 부분은 인지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초반에 이야기를 구상할 때 가장 신경 썼던 부분은 ‘감정’적인 부분은 최대한 표현하지 않고 ‘사건’위주로만 이야기를 그리는 거였어요.

실제로 그렇게 그린 부분이 1화~10화 분량이고요. 그 이후(10화 이후)의 이야기는 감정적 표현이 과하다고 느끼실 수도 있어요. 실제로 제 감정적인 부분을 설명하는 부분이라 그건 어쩔 수 없더라고요."

- 그럼 가족한테 이 만화의 내용을 말씀하실 생각이 있으신 건가요?

"초창기의 구상일 때는 그랬죠. 지금 작업하면서 느끼는 게 처음 마음 같지 않구나. 애초에는 쉬울 줄 알았어요. 지금은 작업을 하면서 옛날에 그런 일들이 다시 생각나고. 내가 어려워했던 엄마 아빠의 모습이 생각나고. 말처럼 쉽지는 않겠다. 지금은 고민 중이에요. 어떻게 해야 할지."

- 단지를 보는 어떤 사람들은 ‘여성’의 문제로 읽기도 하고, 혹은 주인공이 막내와 장남사이에 끼인 둘째라서 그렇다고도 말합니다.

"그런 식의 갑론을박이 너무... 나는 애초에 고려하지 못했어요. 순수하게 나의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내가 여자이고, 둘째이고 그렇다 보니까.. 그냥 저의 이야기일 뿐인데 어쩌다 보니 저의 포지션이 그렇게 된 거죠. 저는 작업할 때 사회적인 문제를 꼬집어 비판하자는 생각은 없었어요. '우리 집에 문제가 있어요' 이 이야기만 하고 싶었어요.

독자들의 그런 접근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요. 저도 나중에 ‘단지’를 거리를 두고 보니, 그런 뉘앙스를 풍기긴 하더라구요. 작품에서 사회적인 문제를 끄집어낼 수 있겠다 생각해요. 제가 의도하진 않았지만."

- 단지에 대한 독자 반응 가운데 인상 깊었던 건 충격적일 수도 있는 내용을 보고 "힐링이 된다" "위안받는다" 하는 표현을 사용하던 독자들이었어요. 저 역시 그 표현에 동감하면서도 좀 아이러니하다고 느꼈습니다.

"저는 미X넷에서 그런 기분을 느꼈기 때문에. 제 만화를 두고 이렇게 말하는 게 이상하지는 않아요. 나랑 비슷한 처지인 사람이 또 있구나 싶은 위안요. 혼자가 아닌 것 같아서 안심되니까요.또는 '내가 너보다 낫네'라는 위안 일수도 있죠.

- ‘단지’는 캐릭터, 작품, 작가 이름까지 구분 없이 사용합니다. ‘단지’라는 단어가 모호한 것은 다른 ‘단지’(독자)들을 향한 것인가요?

"사실은 별생각 없었어요. 단순하게 생각했거든요. 단지라는 뜻이 뭔지 알게 되면 단지를 왜 제목으로 했고, 캐릭터가 단지인지 알 수가 있을 거예요."

김지아 PD님: "그리고 작품 이름, 작가님 이름, 주인공 이름이 모두 같다는 건 이게 실화라는 증거잖아요. 이 지점이 굉장히 중요해요. 독자들에게 처음 던져지는 정보가 작품명, 작가명, 주인공 이름이니까요. ‘단지’라는 단어의 속뜻이 풀리면 작품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고 더 재미있어 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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