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만 모아놨다?" 식품편집숍 방문기

2016-01-11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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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나 친구 생일날, 필자는 케이크를 사러 백화점 식품 매장에 가는 편이다. 여러 브랜드

가족이나 친구 생일날, 필자는 케이크를 사러 백화점 식품 매장에 가는 편이다. 여러 브랜드가 모여있는 곳에서 '고르는 재미'를 누리고 싶어서다. 물론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대에 눈물을 머금고 사긴 한다.

'음식 쇼핑' 자체를 즐기는 필자에게 '식품 편집숍'은 매우 반가운 소식이었다. 특히 '자도랭킹샵'은 다양한 브랜드 베이커리, 과자, 주류 등을 두루 모아놨을 뿐 아니라 제품에 순위를 매긴다는 독특한 점 때문에 SNS에서 관심을 끌고 있다.

'자도랭킹샵'은 출판사 위즈덤하우스가 '맛있는 것들을 모아보자'는 대표 제안에 새롭게 시도해 본 식품 편집숍이다. 자도 랭킹샵은 시식단이 2년간 2만 여 개 제품을 먹어보고 순위를 매긴 다음, 이를 기준으로 다양한 브랜드 식품을 모아 판매하고 있다.

편집숍은 한 매장에 2개에서 많게는 수십가지 브랜드 제품을 모아둔 유통 형태며 그동안은 가방, 의류, 신발 편집숍 등이 대표적이었다.

자도랭킹샵 신촌점 / 이하 위키트리

참새가 방앗간 지나칠 수 있나. 자도랭킹샵 매장을 찾아가보기로 했다. 지난 6일 오후 5시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자도랭킹샵 신촌점을 방문했다.

'최고의 맛을 모은 식품편집샵'이라는 문구가 눈에 띄었다. 매장은 생각보다 작았고 첫인상은 '익숙한 분위긴데?'였다. 수입과자점이나 드럭스토어 올리브영, 롭스 등과 비슷해 보였다. 뭐가 다른걸까.


자도랭킹샵 신촌점 내부

먼저 눈길을 끈 것은 '주간 베스트' 1, 2, 3위를 차지했다는 빵과 케이크였다. 제품별 자도랭킹샵 매장 전체 판매량을 집계해서 낸 순위다.

자도랭킹샵 '주간 베스트'에 뽑힌 제품들

케이크 1위는 오페트의 당근 케이크, 빵 1위는 만나역의 밀키 문이었다. 각기 다른 브랜드에서 '잘 나간다'는 제품들이 모여 있으니 신기했다. 또 '(쉽게 상할 수 있는) 생크림빵을 어떻게 편집숍에서 팔 수 있지'라는 생각도 스쳤다.

자도랭킹샵과 제휴하고 있는 베이커리는 만나역, 노아베이커리, 라틀리에 모니크, 함무바라 고로케, 따순기미, 오페뜨, 라보카, 브레드피트, 마망갸또, 크레마롤, 베이커스필드, 메종 드 조에, 쉐즈롤 등 모두 15곳이다.

다양한 브랜드가 모여있는 케이크 코너와 빵 코너

특히 '주간 베스트' 순위에서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만나역 크림빵.

원래 만나역 크림빵은 소량 생산해 신촌기차역 작은 매장 한 곳에서 오후 12~2시까지만 판매했었다. 만나역은 '크림 폭발'하는 빵으로 큰 인기를 끌었지만 2시에만 가도 매진돼 빵을 구할 수 없었다.

만나역 크림빵 4종(밀키문, 크리미문, 티라문, 코코문)

이외에도 순식간에 팔리기로 유명한 함무바라 고로케와 파주 대표 빵집 따순기미 수박빵, 수제 한우버거 등도 눈에 띄었다.

따순기미 한우 수제버거, 수박빵

과자, 라면, 음료, 주류 코너 등에서도 쉽게 보기 힘들었던 제품들이 많았다. 처음 보거나 해외여행 가면 꼭 먹어봐야 한다며 유명한 음료 등도 있었다.

음료 코너에서 베스트 순위에 오른 제품들

특히 수입 주류 코너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남성들도 여럿 볼 수 있었다.

주류 하나하나를 찬찬히 살펴보던 원종훈 씨(24·학생)는 "조리학과기도 하고 워터(Water Bar)에서 아르바이트한 적 있어 음료에도 관심이 많다"고 했다. 그는 "식품편집숍은 처음인데 재밌다"고 말했다.

제품이 너무 많아 정신없진 않냐고 묻자 "여긴 목적 자체가 구경인 것 같다"며 "오히려 모여있는 것이 보기에 좋다. 하나하나 찾아다니면 힘들지 않나"라고 했다.

다시 둘러보니 실제로 사람들은 매장 곳곳을 천천히 둘러보며 '쇼핑'하고 있는 듯 했다. 또한 매장에서는 "이거 맛있더라"며 설명해주는 직원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손님에게 음료를 추천해주고 있는 직원

시식 코너도 많았고 손님이 궁금해하면 바로 과자 봉지를 뜯어 맛을 보여주는 인심도 발휘한다.

"새로운 제품 맛 보느라 다이어트를 못 한다"며 하소연한 신촌점 정영진 점장은 '식품편집숍'이라 생기는 재밌는 에피소드도 많다고 했다. 그는 "물론 (제품들을) 잘 알고 오는 분들도 있지만 처음 보는 것이라며 신기하다고 사가는 분들이 많다"고 했다. 마케팅팀에 따르면 자도랭킹샵은 '맛있는 것'뿐 아니라 '흔하게 볼 수 없는 것'을 구해놓으려고 한다.

정 점장은 "특히 산가리아라무네 구슬사이다는 어떻게 뚜껑을 여는 건지 모르겠다며 도로 들고 오시곤 한다"고 했다. 그의 '구슬사이다 따기' 시범을 본 뒤 궁금한 마음에 사이다를 구입해 집에서 똑같이 따라해 보기도 했다. 구슬사이다는 아이스크림 '뽕따'와 비슷한 맛이었다.

@finn_1140님이 게시한 동영상님,

구슬 사이다 뚜껑 따는 방법 소개하는 정영진 점장

정 점장은 "나도 놀랄 정도로 손님들이 여러가지를 물어보신다"며 "'혹시 이거 있어요?'라고 먼저 묻기도 한다"고 했다. 그는 "손님이 직접 추천한 것도 구해보려고 한다"며 "체코 맥주도 손님이 알려줘서 새로 들여온 것"이라고 말했다.

이곳은 다른 여느 편집숍처럼 자신의 취향에 맞는 음식이나 음료를 찾아볼 수 있는 공간이었다. 제품 아래 '사과주에 딸기향이 가미된 스파클링 과실주', '달콤한 초코맛과 은은한 커피향의 스타우트' 등의 설명도 선택을 돕는다. 동시에 마치 장난감 가게처럼 식품을 요리조리 살피고 맛보는 놀이터이기도 했다.

한 손님이 추천해 들여왔다는 체코 맥주 '코젤'

또한 이곳의 큰 특징 가운데 하나가 '순위 매기기'인데 매장에는 2가지 순위가 있다. 첫 번째는 시식단이 사전에 선정한 순위, 두 번째는 소비자들이 얼마나 많이 사갔느냐를 기준으로 한 '주간 베스트' 순위다. 블라인드 테스트 등은 비정기적으로 열린다.

두 번째 순위 '주간베스트'는 비교적 명확하지만 첫 번째 순위에 대해선 필자를 포함한 많은 소비자가 궁금증을 가졌다. 매장에서 만난 여러 사람이 "음. 이 순위가 어떻게 선정된 건지는 모르겠지만..."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자도랭킹샵에 따르면 위즈덤하우스가 만든 '자도랭킹샵'은 매장을 열기 전부터 현재까지 약 2년간 2만 5000여 개의 과자, 음료, 빵 등을 먹고 평가해 점수를 매겼다. 시식단으로는 다양한 취향과 연령대인 20여 명이 참여해왔다고 했다.

"시식단이 매긴 순위가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나"라고 질문했다. 자도랭킹샵 마케팅팀 임태순 팀장은 "선정된 제품은 고객 10명 중 8명은 맛있다고 느낄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 목표)"라고 답했다. 그는 "10점 만점인데 시식단이 보통 이 정도면 괜찮다는 건 7~8점을 준다"며 "이건 내가 정말 처음 먹어보는 맛, 꼭 넣었으면 좋겠다는 건 9~10점을 적는다"고 했다.

각종 맥주를 맛보고 있는 시식단 테이블 / 자도랭킹샵

이어 드는 궁금증은 '수많은 브랜드의 제품들을 매일 어떻게 공수해오나'와 '가격은 합리적일까'였다.

자도랭킹샵을 살펴보면 자연스럽게 유통 과정이 궁금해진다. 고로케, 생크림빵, 케이크 등 보관이 까다롭거나 아예 오랜 시간 둘 수 없는 음식들이 많았고 쉽게 구하지 못할 것 같은 일본 제품 등도 많았기 때문이다.

임태순 팀장은 "경기도 고양시에 물류 창고가 있다"며 "물건을 다 받아서 점포별로 분류한 다음 각 매장에 발송하는 방식"이라고 했다. 현재까진 물류창고에서 분류한 식품을 매일 오후 12시쯤 발송해 각 매장에는 1~2시쯤 도착한다고 한다.

또한 각 브랜드에서 공수해 온 빵, 케이크 등은 돌려보내지 않고 매장에서 당일에 모두 판매하거나 폐기 처분한다. 당일 이후에도 판매가 가능한 제품들은 할인가에 내놓기도 한다. 또한 임 팀장은 구하기 힘든 제품들은 수입업체에 "이런 제품 있다는데 구할 수 있냐"며 의뢰하는 등 여러 방법을 찾고 있다고 했다.

한편 이날 매장에서 만난 이우진 씨(27·학생)는 "외국 과자 파는 곳이네, 했다. 그러다 일본 라면이나 주류가 생각보다 괜찮은 게 많아 놀랐다. 하지만 비싸다"고 평가했다. 자도랭킹샵 측은 "마진 기준이 아닌 소비자가 생각하는 적정 가격에 맞추는 편"이라며 "제대로 된 유통망을 거치는 제품 중에서 비싼 편은 아니다"라고 했다.

자도랭킹샵은 2014년 6월 서울 마포구에서 위즈덤하우스가 운영하는 빨간책방 카페 안에서 판매를 시작했고, 1월 현재까지 직영점 4개, 가맹점 4개로 늘어났다. 아직 큰 수익을 내고 있는 단계는 아니라고 전했다.

자도랭킹샵에서 구입한 빵, 음료, 초콜릿 / 이하 위키트리

한참동안의 구경을 마친 뒤 구입할 빵, 과자, 음료 등을 담았다. 집에 돌아와 펼쳐보니 '정말 평소 취향대로 사왔다'라는 생각에 웃음이 나왔다. 베스트 순위 제품뿐 아니라 신기하거나 (맛은 몰라도 일단) 병이 예쁜 식품 등을 집어왔다. 여러 사람들과 나눠먹어본 결과 맛도 긍정적인 편이었다.

필자에겐 이날 식품편집숍에서의 쇼핑은 꽤 만족스러웠다. '신기하다, 내가 뭘 맛있게 먹을까' 등을 즐겁게 고민하는 시간이었다. 엄청난 음식을 발견했다기 보단 이곳에서 보낸 시간 자체가 인상적이었다.

또한 간식거리 위주로 가격대가 상대적으로 만만해 마음에 들면 심각한 고민없이 살 수 있다.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 립스틱 등으로 작은 사치를 하듯 식품편집숍에서는 소소한 만족감을 얻을 수 있을 듯 했다.

블루리본 딜라이트 내부

한편 자도랭킹샵 외에 '디저트 편집숍'을 시도하는 곳도 생겨나고 있다. 지난해 10월 31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서 문을 연 '블루리본 딜라이트'는 레스토랑 가이드북 '블루리본 서베이'와 뷰티 편집숍 '벨포트'가 힘을 합쳐 만든 디저트 편집 매장이다.

블루리본 딜라이트는 '한국의 미슐랭'을 추구하는 맛집 평가서 블루리본 서베이에 선정된 곳만을 다룬다. 현재는 메종 드 조에, 밀갸또, 올댓미트 등 5곳의 디저트와 샌드위치를 매일 받아오고 있다.

왼쪽 메종 드 조에 마카롱, 오른쪽 올댓미트 샌드위치

블루리본 딜라이트의 또 다른 특징은 벨포트 화장품 편집숍과 함께 운영된다는 점이다. 화장품 편집숍과 디저트 편집숍이 바로 옆에 붙어있고 한 쪽엔 앉아서 디저트와 함께 커피 등을 마실 수 있는 카페가 마련돼 있다.

"고객 반응을 보며 계속 변화하는 중"이라는 식품편집숍, 디저트편집숍 등은 '맛있는 것을 모아서 즐길 순 없을까'란 사람들의 바람이 반영된 신개념 유통 형태였다.

사람들은 처음 보는 식품 관련 편집숍에 신기하다는 반응을 주로 보였다. 소위 케이크 덕후, 과자 마니아, 까다로운 미식가까지. 앞으로 식품편집숍 형태는 이들을 사로잡을 수 있을까?

의류, 신발 편집숍이 그렇듯 식품 편집숍은 자신의 취향에 맞는 음식을 찾기 좋은 장소였다. 어떤 조합은 재밌는 '음식 쇼핑하기' 문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단 기대가 들었다. 하지만 식품편집숍 자체의 콘셉트가 뚜렷하지 않으면 "막상 기억에 남는 것이 없다", "오히려 헤매게 되고 고르기 더 귀찮다" 등의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home 강혜민 기자 story@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