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인한 여성' 마릴린 먼로가 겪었던 6가지 비극

2016-06-01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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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스타 마릴린 먼로(Marilyn Monroe)는 20세기 최고의 '섹스 심벌'이다. 그를

마릴린 먼로 / wikipedia

할리우드 스타 마릴린 먼로(Marilyn Monroe)는 20세기 최고의 '섹스 심벌'이다. 그를 생각하면 '백치미'를 떠올리는 사람도 많다. 사실 그는 생전 '무식하다'는 이미지에 두려움을 느끼고, 책을 끊임없이 읽은 독서광이었다고 한다.

박복했던 가정사와 이루지 못한 사랑, 사람들의 시선에 고통스러워 했던 마릴린 먼로는 약물 과다 복용으로 사망했다. 당시 그의 나이 36살이었다.

마릴린 먼로의 화려한 외모와 달리 그의 인생은 보통 사람이라면 감당하기 힘든 비극이 많았다. 그가 겪은 비극 6가지를 추려봤다.

1. 살아있는 어머니가 '죽었다'고 말할 것을 강요당했다

pixabay

마릴린 먼로 어머니 글래디스 베이커(Gladys Baker)는 정신 질환을 앓고 있었다. 먼로의 소속사는 대중들이 "마릴린 먼로는 정신질환자의 딸"이라는 사실을 모르길 바랐다.

마릴린 먼로 / 이하 wikipedia

할리우드에서 마릴린 먼로는 어머니를 여읜 고아가 돼야 했다. 당시 그의 어머니 베이커는 정신 병원에 수용된 상태였다. 마릴린 먼로는 이후 보육원과 친구 집을 떠돌았다.

2. 아버지가 누군지 모르고 살았다

마릴린 먼로 어머니 베이커는 출생신고서에 먼로 부친 이름을 허위로 기재했다. 마릴린 먼로는 부친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베이커는 먼로에게 진짜 아버지라며 한 남성 사진을 보여줬다. 사진 속 남성은 당대 배우였던 클락 게이블(Clark Gable)을 닮은 사람이었다. 마릴린 먼로는 클락 게이블이 자신의 아버지라는 환상을 가졌다.

영화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 스틸컷

마릴린 먼로는 영화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1961)'에서 클락 게이블과 만나게 된다. 마릴린 먼로는 아버지라고 믿었던 사람과 만나게 됐지만, 클락 게이블은 영화 마지막 촬영을 끝내고 열흘 뒤 심장마비로 급사했다. 이 영화는 마릴린 먼로가 36세 일기로 숨지기 전 마지막으로 찍은 유작이다.

3. 명장면을 찍은 뒤 남편에게 맞았다

마릴린 먼로 / 이하 wikipedia

지하철 환풍구 위에서 흩날리는 흰 치맛자락을 붙잡고 있던 금발 여성. 마릴린 먼로를 묘사하는 대표적인 모습이다. 이는 영화 '7년 만의 외출(1957)' 한 장면으로 마릴린 먼로의 금발 머리, 예쁜 얼굴, 흠잡을 데 없는 몸매 등 그가 가진 매력 모두를 보여준다. 그는 정말 예뻤다.

마릴린 먼로는 이 영화를 찍을 당시 최고 인기를 누리던 야구 선수 조 디마지오와 결혼한 상태였다. 보수적인 성격으로 알려진 디마지오는 환풍구 장면을 촬영한 마릴린 먼로를 호텔 방에 데려가 때렸다고 한다.

당시 스타일리스트는 "촬영 다음 날 마릴린 먼로 어깨와 등에 상처가 생겨 화장으로 가렸다"고 말했다. 이로부터 한 달 후 두 사람은 이혼했다.

4. 마릴린 먼로는 '한 남자의 여자'가 되고 싶었지만, 실패했다

마릴린 먼로는 3번 결혼하고 모두 이혼했다. 첫 번째 남편인 제임스 도허티는 배우가 되고 싶던 먼로를 이해하지 못했다. 두 번째 남편 야구 선수 조 디마지오와는 불분명한 이유로 결혼 9개월 만에 이혼했다.

마릴린 먼로는 디마지오와 이혼한 후 2년 뒤 작가 아서 밀러와 결혼했지만, 5년 만에 이혼했다. 이후 과학자 아인슈타인과 케네디가 형제들 등 수많은 남성과 스캔들을 몰고 다녔다.

항상 남성들에게 인기를 끌었던 마릴린 먼로였지만, 그는 '한 남자의 여자'를 꿈꿔왔다. 디마지오와 부부였을 당시 먼로는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던 다마지오를 따라 종교 활동에 참여하려고 노력했다. 유대인이었던 아서 밀러의 아내였을 때는 유대교로 개종까지 했다.

마릴린 먼로는 밀러와 이혼한 후 디마지오와 재결합하려고 노력했다. 마릴린 먼로는 디마지오의 아들과 명랑한 목소리로 종종 통화를 나누기도 했다. 그리고 얼마 뒤 그는 숨진 채 발견됐다. 먼로는 끝내 '한 남자의 여자'가 될 수 없었다.

5. 마릴린 먼로는 죽은 뒤에야 재평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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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릴린 먼로가 숨진 뒤, 그의 집을 취재하러 간 기자들은 먼로 서재를 보고 깜짝 놀랐다고 알려진다. 마릴린 먼로는 멍청해 보인다'는 편견을 깨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다. UCLA에서 문학 강좌를 듣거나 고전 문학을 읽고, 베토벤 등 클래식 음악을 들었다. 먼로의 끊임없는 노력에도 일부 사람들은 금발에 흰 드레스를 입은 마릴린 먼로를 보고 아직 '백치미'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6. 마릴린 먼로의 죽음은 석연치 않았다

마릴린 먼로 / 이하 wikipedia

마릴린 먼로가 숨진 채 발견된 당시 경찰은 시신 주변에서 잔이나 물이 담겨 있을 만한 그릇을 발견하지 못했다. 또 사망 전 그는 지인과 기분 좋은 통화를 했다고 알려졌다. 부검 결과 역시 명확하지 않아 살해 의혹이 나돌기도 했다.

조 디마지오(오른쪽)와 마릴린 먼로

마릴린 먼로의 두 번째 남편 조 디마지오는 1999년 눈을 감았다. 그는 "마침내 마릴린 먼로와 다시 만날 수 있겠군"이라는 말을 남기고 영원한 잠에 빠졌다. 마릴린 먼로가 사후에서라도 원했던 바를 이뤘을지는 모른다. 그는 현재 우리에게 '아름다웠고 강인한 여성'으로 남아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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