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청동 거리에 서 있는 두 남자, 본 적 있나요?

2016-08-04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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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학 단편 영화 감독(왼쪽), 오재원 미술 감독 / 이하 이병학 감독 제공 매주 일요일

이병학 단편 영화 감독(왼쪽), 오재원 미술 감독 / 이하 이병학 감독 제공

매주 일요일 오후 1시면 삼청동 거리 곳곳에서 멋지게 차려 입은 두 남자를 볼 수 있다. 처음에는 어떤 '특별한 퍼포먼스'인 줄 알았다. 하지만 이들에겐 그저 평범한 '일상'이었다.

6년째 이 '일상'을 계속하고 있는 단편 영화 감독 이병학 씨를 만났다. 이 감독은 오재원 미술 감독과 삼청동 거리에서 이 퍼포먼스를 해왔다.

옷을 사랑하는 두 사람

두 사람은 오후 1시부터 3시간 정도 각도를 바꿔가며 가만히 서 있는다. 이따금 대사도 주고 받는다. 때로는 젊은 배우들도 함께 한다.

"고도를 기다려야지"

이병학 감독 블로그(☞바로가기)

두 사람은 뭘 하는 걸까? 이들은 사무엘 베케트 소설 '고도를 기다리며'를 주제로 거리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퍼포먼스는 '기다림'으로 이루어진다.

작품 속 두 주인공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 '고도'를 기다리는 것처럼, 이들 두 사람도 오지 않는 무언가를 가만히 기다린다. 그게 벌써 6년째다.

이병학 감독은 "예술이란 의도적인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본인들 퍼포먼스가 일상적인이고 자연스러운 거라고 했다.

"6년 전 10월쯤, 안국역에서 검은 코트에 검은 자전거, 베레모를 쓰고 횡단보도에 서 있었어요. 건너편에 달이 하나 떠 있었고. 다 저를 쳐다보는거예요. 사람들이 둘러싸더라고요. 제가 무슨 행위를 하는 줄 알고 '예술하세요?' 이렇게 물어보더라고요. 저는 그냥 길을 가는 거였는데..."

이 감독은 그때 예술이란 건 의도적인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일상에서 입는 옷 그대로, 마음이 맞는 오재원 미술 감독과 삼청동 거리로 나섰다.

두 사람 의상은 '퍼포먼스 복장'이 아니다. 그냥 자연스러운 '일상복'이다. 이병학 감독은 머리에 쓴 모자를 가리키며 "지난주에도 이 모자 쓰고 퍼포먼스 했다"고 말했다. 이어 "여기에 넥타이 하고 빨간 재킷 입으면 끝"이라고 덧붙였다.

위키트리

이병학 감독은 "저나 오재원 미술감독이나 옷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미술을 전공한 이 감독은 "그림이라는게 컬러가 있고 명암, 형태, 비율이 있다"며 "옷도 하나의 그림인 것 같다. 그게 오재원 미술 감독도 똑같이 느꼈던 것"이라고 말했다.

20대 때부터 옷을 모아왔다는 이병학 감독은 단편 영화를 만들 때 옷을 팔아 자금을 마련하기도 한다. 시나리오도 직접 쓰는 이 감독은 찍고 싶은 작품이 너무 많다고 했다. 영화 작업은 오재원 미술 감독도 함께 한다.

이 감독과 오 미술 감독이 어떻게 만나게 됐는지 궁금했다.

"7년 전쯤? 11월에 망토를 걸치고, 중절모 큰 걸 쓰고, 나팔바지 입고 홍대를 갔다. 거리를 지나가는데 만만치 않은 사람이 배낭 메고, 모자 쓰고 쇼윈도 무언가를 관찰하고 있더라. 지켜봤다"

이병학 감독은 오재원 미술 감독에게 명함을 건네며 "한 번 만나자"고 했다. 하지만 이 감독은 연락을 받지 못했다.

연락을 받지 못한 이유를 물었다. "그분이 내가 너무 무서웠대요. 많은 사람을 만났지만 '저 인간은 만나면 피곤해지겠다'고 생각했다네요"

눈 내리는 길에서

두 사람 인연은 계속 이어졌다. 이병학 감독은 자택이 있는 효자동 쪽에서 오재원 미술 감독을 다시 만났다. 또 다시 길거리였다. 갤러리에서 전시회를 보고 나오던 오재원 미술 감독을 본 이병학 감독은 그 자리에서 다시 "만납시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거리에서 만났고, 거리에서 퍼포먼스를 하게 됐고, 거리에서 헤어질거다"

이병학 감독은 '거리 퍼포먼스'를 그만두기 전, 꼭 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고 했다. 100명이 삼청동 거리에 모이는 일이다.

발레리나가 꿈이었던 이는 발레복을 입고, 수녀가 꿈이었던 이는 수녀복을 입고 삼청동 곳곳에 서 있으면 된다. 이렇게 각자 마음 속에 품었던 꿈을 끌어내보고 싶다고 했다.

이 감독은 자신처럼 꿈을 간직한 이들의 연락도 환영한다고 전했다.(☞페이스북 바로가기)

"사람은 멋지게 늙어야 한다. 항상 늘 따뜻하고 자신을 사랑하고, 그러면 주변 사람도 사랑하게 될 것이고. 아주 간단명료한 거다. 힘든 게 아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게 중요하다"

가장 소중히 여기는 삶의 가치를 묻자 이 감독이 한 말이다. 즐겁게 삶을 살아가자는 이병학 감독의 '거리 퍼포먼스'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오재원 미술 감독

"삶을 즐겁게" 오재원 미술 감독(왼쪽), 이병학 단편 영화 감독
home 박민정 기자 story@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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