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가 추석에도 알바하는 진짜 이유

2016-09-07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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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위키트리5일 오후 서울시 강동구에 위치한 한 대형마트는 추석 명절을 앞두고 분주했다.

이하 위키트리

5일 오후 서울시 강동구에 위치한 한 대형마트는 추석 명절을 앞두고 분주했다. 하얀 셔츠에 검은 바지를 입은 판매 직원들은 "한 번 보고 가세요"라며 앞다퉈 고객들에게 제품을 소개했다.

샴푸, 비누 선물세트를 판매하는 젊은 여성은 "유니폼 대신 하얀 셔츠에 검은 바지를 입은 사람들은 단기 알바생"이라고 설명했다. 이 여성은 "8시간 근무하고 7만 5000원 받는다. 시급으로 따지면 평소보다 훨씬 높다"며 "명절에 나와 근무하는 이유"라고 밝혔다.

이 여성에게 근무 강도를 물으니 "평소에 다양한 알바를 해본 편이지만 명절 때는 정말 힘들다. 일당을 많이 주는 이유가 있다"고 말했다.

주류 세트를 판매하던 또 다른 여성은 "나 역시 단기 알바생"이라며 "이번 추석에는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는 대신 일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 여성은 "대목이라고 하지 않냐. 알바를 하기 좋은 시기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같은 날, 서울시에 위치한 모 백화점 풍경도 다르지 않았다. 젊은 청년들과 중년 여성들은 하얀 셔츠, 검은 바지를 입고 과일, 한우 세트 등을 판매하고 있었다. 과일 세트를 판매하던 젊은 남성은 "아무래도 과일 세트가 무거워 힘을 써야 하고, 과일을 보러 오는 손님들이 많아 일당이 센 편"이라고 했다.

 

그는 명절에 알바를 하는 이유에 대해서 "평소에는 학교를 다니느라 시간이 부족해 명절을 이용해 알바를 한다"고 답했다.

올 추석 연휴에 알바를 하는 20대 10명에게 이 기간 알바를 하는 이유를 물어본 결과, 8명이 '경제적 이유' 때문이라고 답했다. 8명 중 약 열흘 전부터 추석 연휴까지 단기 알바를 하는 사람은 5명, 원래 하던 알바 때문에 출근하는 사람은 3명이다.

지난 설 연휴에 단기 알바로 설 선물 세트를 판매한 대학생 한모(남·24) 씨는 "군 제대 이후 독립하면서 돈이 필요했다"며 "개강 전에 여윳돈을 마련하지 않으면 한 학기 생활이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백화점 레스토랑에서 알바를 하고 있는 휴학생 이모(남·23) 씨는 "명절에 쉬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냐"며 "그럼에도 명절에 쉬고 싶다는 말을 꺼내는 것 자체가 힘들다"고 말했다. 이 씨는 "명절 연휴에는 손님이 더 많다. 업주도 당연히 출근해야 한다는 묘한 압박을 준다"고 했다. 

이 씨는 "지난 설 연휴에도 알바를 했는데, 친척들이 취업 압박할까봐 일부러 피하는 것 아니냐고 하더라"라며 "알바를 계속하기 위해서 명절에도 출근하는 것 뿐인데 억울하다"고 토로했다.

지난해 추석 연휴를 앞두고 아르바이트 포털 알바천국이 네티즌 143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대부분 경제적인 이유로 알바를 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추석 연휴에 알바를 한다고 답한 취업 준비생들은 알바를 하는 이유로 '명절에 쉬고 싶지만 경제 사정이 좋지 않아서(23.1%)'와 '단기 고수익 올릴 수 있는 좋은 기회라서(23.1)'를 1위로 꼽았다. 반면 '친척·친지들 만나기 싫어서'(14.1%), '딱히 추석에 할 일이 없어서'(10.1%) 라고 답한 취준생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추석 연휴에 알바를 하는 청년들은 친척을 만나고 싶지 않아 알바를 한다는 언론 보도나 어른들 생각과 달리 경제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명절에도 알바를 한다고 토로한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기성 세대가 청년들 경제적 상황을 이해하지 못 하고 있다. 기성 세대가 봤을 때, 현재 청년들은 이전 세대보다 경제적으로 풍족한 시대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지금 청년들이 겪는 경제적 어려움에 대해 공감을 하지 못 한다"고 설명했다. 

또 "기성세대가 자기 기준으로 청년들을 평가하다 보니 청년들은 이걸 '꼰대질'로 받아들이고 갈등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추석 단기 알바를 하는 청년들 중 일부는 '알바 대목'이라는 표현에 불편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지난 설 연휴에 마트에서 선물 세트를 판매했던 한 씨는 일당으로 7만 5000원을 받았다. 한 씨는 "노동 강도는 평소보다 훨씬 강했기 때문에 시급에 만족할 수 없었다. 심지어 중식비도 제공받지 못 했다"고 말했다.

이하 뉴스1

 

지난해 추석 때 유통업 알바를 했던 우모(27) 씨도 "가락시장에서 사과, 배, 굴비 등을 트럭에 옮기는 일을 했다. 9시부터 6시까지 근무하고 일당이 10만 원이라고 해서 일을 하기로 했다. 그런데 막상 해보니 많이 준다는 생각이 안 들었다. 그만큼 노동강도가 강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어 "평소 욕을 안 하는데, 사과박스들을 5톤짜리 트럭에 옮기다 보니까 구호를 외치듯 욕이 나왔다. 추석 앞두고 열흘 동안 일했는데 몸이 걸레가 되는 기분이었다"고 덧붙였다.

알바상담소 활동가 박종만 씨는 "명절에는 평소보다 시급이 높긴 하지만, 노동 강도를 생각하면 적절한지 의문"이라고 했다. 박 씨는 "명절에 알바생이 일하는 업종은 대부분 서비스 업종이다. 명절에는 손님이 몰려 노동 강도가 2~3배 강하지만, 시급은 노동 강도만큼 오르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어 박종만 씨는 그나마 처음 제시된 보수도 제대로 지급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고 지적했다. 박 씨는 "시급 8000원을 주기로 하고 지급할 때는 최저임금에 맞춰 주는 경우도 있다"며 "비슷한 사례로 신고가 많이 들어오지만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아 이를 증명하기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기존 알바생들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백화점 레스토랑에서 알바를 하는 이 씨는 "추석 연휴에도 출근을 하지만 수당은 받지 못 한다"고 말했다.

박종만 씨는 "근로기준법상 명절은 휴일이 아니다. 노동자들이 쉴 수 있는 법정 휴일은 주휴일과 노동절밖에 없다"며 "이때문에 사업주가 명절 연휴에 노동자에게 일을 시킨다고 해도 불법이 아니다. 휴일이 아니라 휴일 수당이 나오지도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상시 근로자가 10인 이상 사업장의 경우는 다를 수 있다. 박 씨는 "10인 이상 사업장에는 취업 규칙, 단체 협약이 필수적으로 있어야 한다. 취업규칙, 단체협약 내용을 살펴보면 명절을 휴일로 정해놓은 회사가 있다. 이런 경우는 강제로 명절에 출근을 시키면 안 될 뿐 아니라 알바생, 단기 알바생에게도 가산수당을 지급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상시 근로자 10인 이상 사업장에서 근무한다면 취업규칙, 단체협약을 열람해 알바 노동자도 휴일과 가산수당 등을 보장받을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병훈 중앙대 교수는 "사용자(고용 계약에 있어 사업 주체인 법인이나 개인)들이 알바생을 상대로 노동법을 잘 지키지 않는다. 알바생은 노동조합도 없고, 연령대가 젊다 보니 노동법에 대해서도 잘 몰라서 정당한 권리를 찾지 못 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박종만 씨는 알바를 하고 있거나 명절 단기 알바를 하는 청년들에게 "단기라고 해도 근로계약서는 반드시 작성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 씨는 "근로계약서 작성이 피해 발생 시 권리를 충분히 보장받을 수 있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박 씨는 또 "5인 이상 사업장이면 노동자가 연장 노동, 야간 노동 등을 했을 경우 가산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 이는 단기 알바생에게도 적용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예정된 근무 시간보다 더 오래 일한 경우, 연장 노동 시간에 대해 50% 임금을 더 받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민진, 박수정 기자가 함께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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