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예종 '졸업 사진' 찍는 날

2016-09-27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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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초부터 대학 졸업사진 촬영 시즌이다. 대학 졸업사진은 비슷비슷한 경우가 많다. 졸업을

9월 초부터 대학 졸업사진 촬영 시즌이다. 대학 졸업사진은 비슷비슷한 경우가 많다. 졸업을 앞둔 대학생들은 비싼 메이크업을 받고, 어색한 정장을 입은 뒤 카메라 앞에 선다.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도 지난달 말부터 촬영을 하고 있다. 한예종 졸업사진 촬영은 다른 학교와 약간 다른 분위기다. 보통 대학에서 4학년은 정장을 입는 예비 직장인이 되기 전 과정이지만, 예술학교에는 다른 대학만큼 취직을 고려하는 학생이 많지 않다. 이들은 주로 작가, 예술가 혹은 대학원 진학을 꿈꾼다.

그래서일까? 정장을 입은 학생도 있었지만, 많은 한예종 학생은 각자 개성을 드러내는 옷을 입고 등장했다. 몇몇 학생들은 자신이 쓰던 악기나 작업과 관련된 소품을 가져왔다. 피아노를 전공하는 한민지 씨는 악보를 들고 사진을 찍었다.

미술원에 속해있는 조형예술과, 디자인과 학생이 찍은 졸업사진이 제일 눈에 띄었다. 미술을 전공하는 만큼 다른 과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사진이 많았다. 한 점의 회화 작품같은 사진도 있었다.

소중한 추억을 졸업사진으로 남긴 학생도 있었다. 디자인과 학생 안신재 씨는 상복을 입고 와서 지난해 숨진 강아지 사진 앞에서 자세를 취했다.

간단한 인터뷰와 함께 한예종 학생들이 졸업앨범 촬영 당시 찍은 사진들을 모아봤다.

1. 이수진 (미술원 디자인과, 12학번)

이하 이수진 씨(☞ 인스타그램 바로가기) 제공

육신(肉身)을 좋아한다. 육신과 함께 당당하게 찍고 싶었다. 실제 몸이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아무리 친밀한 남자친구라도 졸업사진 소품으로 쓰긴 좀 그랬다. 그래서 마네킹을 구했다. 망치는 어느 순간 내 손에 들려있더라.

생분홍 치마를 입고, 마네킹 다리를 들고 갔을 때 친구들은 “꼭 너 같은 것 갖고 왔네”라고 말했다.

(졸업 후 진로를 묻자) 유후~~~~~ 불투명한 미래~~~~ X킹!

2. 문소영 (전통예술원 연희과, 13학번)

이하 문소영 씨 제공

예쁜 한복들이 많았지만, 연희과에서 공부한 많은 수업 중에서 ‘동해안별신굿’에 대해 많은 공부를 하고 애착이 있었다. 그래서 동해안별신굿 의상을 입고 졸업사진을 찍었다.

어렸을 때부터 경기민요, 사물놀이, 시조, 가야금 등을 공부했다. 한예종에는 연희과 서울굿 전공으로 입학했다. 연희과 2학년 수업에서 동해안별신굿을 처음 접했다. 그때부터 동해안별신굿에 관심이 생겼고, 지금은 동해안별신굿보존회에 들어가 전수생으로 활동하고 있다.

졸업 후에는 내가 전공하는 동해안별신굿, 경기민요를 중심으로 삼도무속, 삼도탈춤, 삼도풍물 등 국악의 여러 분야를 알리고 보존하는 공연자이자 선생님이 되고 싶다.

3. 양다은 (연극원 연기과, 12학번)

양다은 씨 제공

학교 이름이 ‘한국’예술종합학교라서 열정 있고 뚝심 있는 독립투사 유관순 느낌으로 찍어보고 싶었다. 엄마 한복을 빌려서 독립열사처럼 찍어봤다.

4. 봉완선 (미술원 조형예술과, 12학번)

봉완선 씨 제공

여행을 다니면서 천으로 햇빛을 가리고 다녔다. 그때 찍힌 사진을 보니 잘 어울렸다. 그래서 천을 쓰고 찍었다.

5. 배소영 (미술원 조형예술과, 12학번)

이하 배소영 씨(☞ 인스타그램 바로가기) 제공

평소에 길을 걷다가 뭘 하도 많이 주워서 사람들이 나랑 걷는 걸 싫어한다. 나는 왜 이렇게 물건을 많이 주울까 생각하다가 수집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수집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난 뒤, 나름 당위성이 생겨서 더 열심히 주웠다.

사진에 나온 식물은 월곶 공판장에서 아르바이트하러 갔다가 풀이 무성하게 자라있어서 채취했다. 거울은 편의점 옆 쓰레기 모으는 곳에 버려져 있기에 주워왔다. 식물과 거울은 내 차 트렁크에 있었는데, 같이 놓고 보니까 예뻤다. 그래서 둘을 같이 놓고 찍었다.

식물 채취 중인 배소영 씨

내가 열대 기후를 워낙 좋아해서 동남아같은 따뜻한 나라에 종종 간다. 의상은 최근 태국에 가서 사온 옷이다. 그것도 일종의 수집이랄까? 하지만, 옷은 주워 입지 않는다.

촬영 당시 나는 귀엽고 발랄하게 찍었다. 그런데, 사진 기사님이 “처녀 귀신 같아 무섭다”고 말해 찍고 난 뒤 후회했다.

난 곧 졸업 전시를 앞뒀지만~ 그림을 잘 그리진 않는다.

6. 박고운 (미술원 디자인과, 12학번)

이하 박고운 씨(☞ 인스타그램 바로가기) 제공

사진에서 내가 입은 옷은 엄마가 입으셨던 옷이다. 엄마가 젊었을 때 후배가 만들었다더라. 두루마기를 모티브로 한 옷이라는데 평소에는 입을 엄두가 안 난다. 게임 캐릭터 같아서...

머리 모형은 내 학교생활에 대한 상징물 같은 것이다. 동묘에서 3000원에 샀다. 1년 동안 동묘 부근에서 노점상에 대해 조사를 했었다. 그 곳에서 친해진 사장님과 오토바이를 타고 고물상 구경도 했다. 내게 많은 영향을 준 사랑스러운 장소다.

친구들은 작정하고 왔다면서 ‘관종’(관심을 받고 싶은 사람)이라고 놀렸다. 더 은밀한 관종이고 싶었는데, 아쉽다.

(졸업 후 진로를 묻자) 일단, 졸업 작품이 통과될 수 있을까...

7. 강슬미 (미술원 디자인과, 12학번)

강슬미 씨 제공

사진을 촬영할 당시 성에 갇혀서 거북이만 키우면서 사는 고독한 여자 같다는 말을 들었다. 프란체스카(MBC 시트콤 ‘안녕, 프란체스카’ 주인공) 같다는 소리도 들었다. 사진작가가 자기 핸드폰으로 따로 사진을 찍어서 기분이 좋았다.

독특하게 찍고는 싶었지만, 관종처럼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8. 안신재 (미술원 디자인과, 12학번)

안신재(☞ 인스타그램 바로가기) 씨 제공

컨셉은 ‘애도’다. 흰 국화꽃과 상복을 연상시키는 검은 옷을 입어 장례식 느낌을 주려고 했다.

내 옆에 있는 액자 속 사진은 작년에 세상을 떠난 반려견이다. 평생 기록으로 남는 졸업사진에 함께 하고 싶었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함께한 아이에게 위로를 건네고 싶다.

흰 국화를 구하기가 어려웠다. 생각해보니 일반 꽃집에 흰 국화가 있을 리가 없더라. 다행히 연남동 한 꽃집의 도움으로 부랴부랴 준비했다.

처음 이 컨셉을 준비했을 때 너무 어둡고 칙칙한 느낌이 날 것 같아 걱정을 많이 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꽃이 너무 예뻤고, 촬영장 분위기도 좋았다.

졸업 후에는 친구들과 스튜디오를 차리고 싶다. 하고 싶은 작업을 하면서 여유롭고, 즐거운 시간을 채우고 싶다.

9. 정혜연 (미술원 조형예술과, 12학번)

이하 정혜연 씨 제공

자유롭게 입고 오라기에 바로 떠오른 것이 수영복이었다. 컨셉은 딱히 생각하지 않고, 자랑도 할 겸 “최근에 산 수영복이 예쁘니까”라고 생각해서 입었다. 굉장히 단순하고 순간적으로 정했다.

촬영 순서가 마지막이라서 메이크업하는 언니를 제외하고는 다른 사람이 없었다. 메이크업 언니에게 분장을 받고 있는데, 언니가 “이 원피스를 입을 거예요?”라고 물었다. 나는 “아뇨. 안에 수영복 입고 왔어요”라며 원피스 어깨끈을 내려 수영복을 보여드리려고 했다.

내가 수영복 어깨끈이랑 원피스 어깨끈이랑 같이 잡고 내려서 의도치 않게 ‘가밍아웃’(가슴을 보여줬다는 뜻)을 하게 됐다. 서로 비명 지르고, 반말 나오고 난리였다. 언니는 “으악!!!!!! 우리 둘만 있어 괜찮아! 괜찮아!!”만 반복적으로 외쳤다. 나는 “꺄으아아아아아앙아!!!!!!!” 비명을 질렸다.

결과적으로 빨리 친해질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이 사건이 벌어진 뒤 30분 뒤에 촬영했다. 아까 일에 대한 충격으로 시무룩해 하니까 촬영 작가님이 “이렇게 입고 와서 되게 센 언니일 줄 알았는데 수줍음이 많으시네요”라고 하셔서 “네…. 원래 수줍음이 많습니다”라고 했다. 그러니까 ‘그럼 왜 이렇게 입고 왔어... 뭐야 이상해...’라는 표정을 지었다. 다 같이 민망하게 만들어서 죄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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