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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명소, 양복점, 다방...후손에게 전할 보물 '서울미래유산' 10선

2016-10-19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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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살이 시민들에게 종로 피맛골은 강렬한 추억이다. 이제 더이상 피맛골은 없다. 재개발

서울 살이 시민들에게 종로 피맛골은 강렬한 추억이다. 이제 더이상 피맛골은 없다. 재개발 바람 속 피맛골의 실종은 서울 시민들에겐 아픔으로 남아있다.

더이상 이런 아픔은 없어야 한다. '서울미래유산'이라는 프로젝트에 거는 기대다.

지금 당장은 그저 허름한 낡은 유산으로 보일지라도 후손들에겐 '보물' 같은 문화재일 수 있다. 우리는 100년 뒤 후손들에게 무엇을 전해줄 수 있을까?

'서울미래유산' 프로젝트는 이런 생각에서 출발했다. 지금 당장에는 문화재적 가치를 찾기 어렵지만 서울 시민들이 기억하고 추억하는 유·무형의 자산을 찾아서 지키고 보존하는 캠페인이다. 서울시는 우리 주변에 있는 '보물'을 100년 뒤 미래세대에게 전해 주기 위해 이 프로젝트를 이어가고 있다.

서울시는 지금까지 모두 372개의 '서울미래유산'을 지정했다. 그 중 대표적인 유산 10개를 소개한다. 너무 익숙해 모르고 지나칠 수 있는 풍경 속에 후손들에게 전해줄 '보물'이 숨어있다.

1. 길상사 (서울시 성북구 성북동 323)

이하 서울시

‘길상사’는 원래 고급 요정 ‘대원각’이었다. ‘대원각’은 과거 군사 정권 시절 3대 요정 가운데 하나로 이름을 떨쳤던 곳이다. 그 당시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길상사’는 정치 역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기생에서 작가가 되기까지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고 김영한(법명 길상화) 작가. 법정스님 ‘무소유’에 감명 받은 김영한 작가는 법정스님을 만나 대원각 건물과 부지를 시주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법정스님은 시주를 거절했지만 김영한 작가는 10여년 간 이 뜻을 굽히지 않았다. '길상사'는 법정스님을 향한 고 김영한 작가의 구애로 창건됐다.

2. 김봉수 작명소 (서울시 종로구 적선동 93-1)

'김봉수 작명소'는 1958년 금천교 시장에서 개업해 2대째 가업을 이어오고 있다.

정·재계 인사뿐만 아니라 많은 시민들이 찾아와 이름을 지어온 곳으로 서울 시민 생활을 기억할 수 있는 소중한 곳이다.

3. 종로양복점 (서울시 중구 수표로 45)

1916년 개업해 종로에서 3대째 가업을 이어오고 있다. 과거 개성과 함흥에도 지점이 있었다. 한때 직원 수가 200명이 넘었던 조선에서 제일 가던 양복점이었다.

'종로 주먹' 김두한과 이시영 초대 부통령도 이용하는 등 서울의 역사를 품은 곳이다.

4. 학림다방 (종로구 명륜4가 94-2)

1980년대 전국민주학생연맹은 민주화 운동을 모색하기 위해 첫 모임을 '학림다방'에서 가졌다.

당시 서울대 문리대가 있었던 동숭동 거리에 있다. 지금의 대학로다.

민주화운동뿐만 아니라 지성인들이 음악, 미술, 문학 등을 토론했던 커피보다 진한 역사가 있는 곳이다.

5. 송림수제화 (중구 을지로3가 5-10)

우리나라 신발 역사를 대표하는 곳이다. 1936년 '송림화점'으로 개업했다. 이후 '송림수제화'로 3대째 가업을 잇고 있다.

80년 동안 같은 장소에 머물고 있어 서울 시민의 시대적 모습을 추억할 수 있다.

6. 석파랑 (종로구 홍지동 122-2, 125)

우리나라 서예계 거목인 고 소전 손재형 선생의 옛 가옥이다.

'석파랑'은 1958년 손재형 선생이 흥선대원군 별장인 '석파정'의 부속 건물을 옮겨오면서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손재형 선생은 이 집을 설계하고 재목을 모으는 등 심혈을 기울였다. '석파랑'을 보기만 해도 손재형 선생의 작품 활동 모습을 떠올릴 수 있는 이유다.

7. 김성수 가옥 (종로구 계동 132-1)

고 인촌 김성수 선생이 1918년부터 1955년까지 거주했던 가옥이다. 김성수 선생은 교육자, 경제인, 언론인으로서 민족 계몽 운동에 힘썼다. 지금의 고려대학교를 세운 장본인이다.

이곳은 2.8독립선언준비와 3.1운동의 초기 준비 단계 등 항일 독립 투사들이 모여 밀회가 이루어졌던 역사적인 장소다.

8. 통의동 보안여관 (서울시 종로구 통의동 2-1)

1930년대 만들어져 한 때는 예술인들 모임 장소, 한 때는 청와대 직원들의 만남의 장소였다.

80여년 동안 한 자리를 지켜온 '보안여관'은 시대적 변화를 떠올리게 해주는 곳이다. 지금은 더 이상 여관으로 활용되지는 않는다.

9. 구의취수장 (서울시 광진구 광장동 1번지 외 60필지)

서울의 보이지 않는 일꾼 '구의취수장'. 1976년 개장 이래 한강물을 하루에 약 100만톤 끌어들여 정수장으로 공급해왔다.

지난 2010년 가동을 중단했던 제1취수장이 예술 특화 공간으로 다시 태어나 2015년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현재 이 곳은 옛 산업건축물과 문화 예술이 어우러진 독특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10. 태조감자국 (서울시 강북구 동소문동5가 73-2)

1958년 '부암집'으로 개업해 3대째 가업을 이어오고 있다. 감자국 전문 식당이다.

자체적으로 보수, 관리를 하면서도 식당 내부는 옛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다. 감자탕 역시 옛날 방식 그대로 고수하고 있어 음식을 먹는 그 순간 만큼은 서울의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home 박민정 기자 story@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