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실전' 세계 석학과 한국 청년들이 만난 '티톡스' 현장

2016-11-01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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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니스 노블 옥스퍼드대 교수(왼쪽)과 '티톡스' 대표 김성희 서울대 공학전문대학원 객원 교

데니스 노블 옥스퍼드대 교수(왼쪽)과 '티톡스' 대표 김성희 서울대 공학전문대학원 객원 교수 / 이하 위키트리

 

“마음껏 경험하고 좌절하고 슬퍼하라. 깊은 골에 가 봐야 높은 산봉우리에 이를 수 있다.”

지난달 31일 오후 6시 동대문디자인플라자 디자인 나눔관 3층 강연장은 청년들로 북적였다. 영국 명문 옥스퍼드 대학교수 둥 석학뿐만 아니라 남다른 20대를 보낸 또래 청년들의 이야기 장인 ‘옥스퍼드 티-톡스(Oxford T-Talks)’가 한국에서 처음으로 열렸다.

옥스퍼드 티톡스 대표를 맡은 김성희 서울대 공학전문대학원 객원 교수는 “한국 학생들도 영국 옥스퍼드대에 다니는 학생들처럼 좋은 강연을 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티톡스’를 마련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날 행사장에는 220여 명 청년이 모여 연사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강연은 각각 10~15분 이내로 이뤄졌다. ‘너무 길면 부담스러우니 차 한 잔 마시는 정도의 시간이면 좋겠다’는 이유였다. 

데니스 노블 교수

 

옥스퍼드대 생리/해부/유전학과 데니스 노블 교수가 첫 주자였다. 노벨 생물학상 후보로 오르기도 한 노블 교수는 한국 청년을 위해 ‘인생은 실전이다. 계속 나아가라(Life is not a rehearsal, keep going)’는 주제로 15분 동안 강연을 펼쳤다. 노블 교수는 “처음 UCL(런던대) 의대에 진학했지만, 어려운 가정형편 탓에 교재를 살 돈조차 녹록치 않았다”고 털어놨다. 그는 “당시 상황이 현실임을 깨닫고 좌절하는 것 대신 뭐라도 해야 한다, 발전해야 한다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노블 교수는 이날 아버지가 만들기 시작해 어머니가 완성한 옷을 입고 연단에 올랐다. 재단사였던 그의 부친은 옷을 완성하기 전 유명을 달리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를 잃은 후 노블 교수는 “부모님을 잃는 일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고, 좌절하면 안 된다고 깨달았다”며 “절대 포기하지 않고 노력해야 한다는 걸 명심하고 있었다. 그 결과 의대를 수석으로 졸업해 박사 과정도 전액 장학금을 받고 다녔다”고 말했다. 그는 “나는 집안 환경이 좋았던 것도 아니었고, 특별한 배경도 없는 평범한 학생이었지만, ‘인생은 실전이고 계속 노력하라’고 스스로 다짐하며 살아왔다”고 덧붙였다.

김성희 교수

 

김 교수가 노블 교수의 마이크를 이어받았다. 티톡스 대표이기도 한 김 교수는 ‘때문이 아니라 덕분에’라는 주제로 강연을 이끌었다. 그는 “마음껏 경험하고 좌절하고 슬퍼하라. 깊은 골을 봐야 높은 산봉우리에 이를 수 있다”며 “당신은 스스로 생각한 것보다 훨씬 대단한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만 50살이 되던 해 영국 옥스퍼드대 유학에 도전했다. 

경청하는 청중들

 

김 교수의 첫 옥스퍼드행은 ‘남편을 따라서’였다. 1979년 박사인 남편을 따라 주부로서 영국 옥스퍼드대에 가게 된 김 교수는 ‘신나는 외국 생활 하겠노라’ 다짐했지만, 아픈 남편과 아이들 병간호로 영국에서 시간을 마무리하고 말았다.

아쉬운 마음을 안고 주부로 한국에 돌아온 김 교수는 옥스퍼드대 학생으로서 영국에 돌아갔다. 끊임없는 노력 끝에 학위뿐만 아니라 ‘보이스 프롬 옥스퍼드’를 기획하고 티톡스 대표까지 맡게 된 셈이다. 김 교수는 객석을 차지한 학생들을 향해 다양한 경험을 할 것을 당부하며 자신감을 심어줬다.

황농문 서울대 공과대학 재료공학부 교수

 

3번째 주자로 나선 황농문 서울대 공과대학 재료공학부 교수는 ‘몰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황 교수는 몰입을 잘할 수 있는 방법으로 “가장 중요한 건 잠을 충분히 자는 것”이라며 “이 이야기만 몇 시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청중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황 교수는 “땀을 흘리는 운동을 반드시 하라”, “천천히 이해하고 음미하고 생각하라”, “결과보다는 과정에 집중하라”, “내가 하는 일이 하찮은 게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라”는 등 11가지 방법을 조언했다.

이날 청년 대표로 문현우 아리랑스쿨 대표와 윤승철 무인도테마연구소 소장도 함께했다. 문 대표는 세계를 돌며 아리랑을 알리고 페스티벌도 기획한 인물이다. 그는 ‘세계에 아리랑을 알리자’는 생각을 현실에 구현한 과정을 설명했다. 문 대표는 “어른들은 제게 ‘돈벌이는 되냐’고 걱정하시는데, 저는 아리랑도 알리고 현재 숙명여대에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하며 살고 있다”고 전했다.

“새롭고, 특이한 장소를 많이 다녔다”고 스스로 소개한 윤 소장은 사막과 무인도를 다닌 이유에 관해 설명했다. 윤 소장은 “사막을 달리면서 길을 잘못 들었는데, 앞서 달리던 사람만 쫓아가다 보니 줄줄이 잘못 가고 있었다. 그제야 다른 사람들이 왜 ‘무조건 남을 따라가지 말라’고 했었는지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때까지 어떻게 살았고, 왜 지금 이 일을 하고 있는지 이유를 고민하는 게 자신의 가치관이고 신념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낯선 곳에 가면 그런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며 “그런 곳에 가서야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새로운 세계를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강연 5개가 10~15분씩 쉴 틈 없이 이어졌지만, 중간에 빈 객석은 찾을 수 없었다. 국내에서 처음 열린 ‘티톡스’는 3번째 강연자로 나선 황 교수의 말처럼 ‘몰입의 시간’이었다.

질의하는 청중

 

다음은 위키트리가 김 교수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1. 티톡스, 만들게 된 계기가 있다면

'보이스 프롬 옥스퍼드(Voice from Oxford)'를 2009년부터 7년째부터 하다 보니 노벨상 수상자들이라든지, 유명한 정치인 등 세계 석학들이 많이 함께 참여했었다. 그러다 문득 세계의 중심은 젊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인데, 정작 젊은이들이 소외돼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에게 학문도 좋지만, 극복하기 어려운 싸움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이야기, 취직을 떠나서 그런 근본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이야기 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소통을 도와주는 자리를 마련하고 싶어서 '티톡스'를 준비했다. 차(Tea)를 마시면서 이야기하자는 뜻이다. '보이스 프롬 옥스퍼드'가 지식 전문이라면, '티톡스'는 마음을 치유하는 차원이다.

2. 강연 시간을 10~15분 정도로 짧게 정한 이유

차 한 잔 마실 시간, 7분? 8분 정도면 충분다고 생각했다. 모바일(휴대전화)로 봐도 부담이 없지 않은가. 길게 해도 정말 중요한 내용만 추리면 10분 이내라고 생각했다. 학교에서 하기 어려운 이야기도 터놓고 나누는, 함께 공감하고 해결책을 낼 수 있으면 좋겠다.

3. '티톡스'를 꼭 들려주고 싶은 청년들이 있다면?

가장 들려주고 싶은 이들은 '취업 스트레스'로 고통받는 청년이다. 취직이 안 되면 낙오자라고 생각하는데, 실패했어도 결국 잘 된 사람들의 경험을 들려주고 싶었다. 취업이 안 된 건 본인 탓이 아니다.(김 교수는 군대 문화와 닮은 기업 문화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여러가지 문제가 복합적인 것이고, 개선의 여지도 있을 수 있는데 당장 마주한 현실에 너무 좌절해 버리는 게 안타까웠다.

자기가 걷는 길이 힘들다고 느낀 사람들, 아직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할지 정하지 못한 청년들도 마찬가지다. 무조건 취업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대신 여러 도전이나 여행, 봉사활동같은 경험을 쌓는 방향도 있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4. '삼포 세대'라는 말처럼 연애나 결혼, 출산을 포기한 청년들이 많이다. '돈도 실력이다, 부모를 원망하라'는 정유라 씨 발언도 논란이다. 힘든 청년들에게 '티톡스'는 어떤 역할을 할까?

한국 학생들은 소극적이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는데, 우리 학생들이 말을 할 수 있는, 표현할 수 있는 장을 만들고 싶었다. 사회는 '최고'만을 찾는 현실에서 마음을 다친 청년들과 공감하고자 한다. 노블 교수도 강조한 말인데, '현실적으로(Be realistic)' 세상을 바라보는 것도 중요하다. 자신만의 기준, 가치관을 만드는데 도움을 주고 싶다. 청년들이 잘 되려면 마음이 건강해야 한다.

5. 김 교수는 두 아이를 둔 엄마였지만, 영국 옥스퍼드 유학을 결심했다. 당시 가장 힘들었던 점은?

아프다고 생각할 여유도 없던 시절이었다. 무작정 '할 수 있다'고 마음을 먹었다. 동양인이라서 인종 차별을 당해 힘들었던 경험도 그중 하나였다. 힘들때 주변 동료(노블 교수)와 공감하고 소통했는데 내게 '다르게 생각해보라(Turn things around)'고 조언하더라. 그때부터 전화위복 이라는 말을 되새기게 됐다. 

당시 '나를 싫어하고 하대하는 사람은 내 마음이 결정한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먼저 손을 내밀고, 나 역시 먼저 손을 내미는 사람들 손을 꼭 잡아야 한다는 걸 알았다. 소통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었던 경험이다. '티톡스'를 마련한 배경이 되기도 했다. 

6. 청년을 위로하고 힘 줄 수 있는 김 교수의 비법이 있을까?

'결핍은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인생은 너무나  공평했다. 무언가를 가진 만큼 대가를 치뤄야 했다.  

7. 청년들이 티톡스를 들어야 하는 3가지 이유

첫째는 대한민국이 청년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국제적 위상이 높다. 삼성('갤노트7' 문제가 있지만)도 많이 알려졌고 한국이라는 나라 자체가 유명해졌다. 청년들이 '티톡스'를 통해 넓은 세상을 간접 경험할 수 있다.

두번째는 직접 참여할 수있다는 점이다. 한국에서 하면 와서 듣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니라 직접 무대에 오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앞으로는 격식이나 절차를 더욱 간소화할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동기유발이 된다. 더 넓고 깊은 생각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졸업 후 취업이라는 선택지 대신 더 많은 꿈을 꿀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2016 국민소통포럼 옥스퍼드 티톡스'는 2일 대구에서도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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