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결혼식 장식한 꽃, 버리지 않고 뜻깊게 쓰는 방법

2017-01-05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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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터스톡 오는 5월 결혼을 앞둔 예비 신부 이모(32) 씨는 식장을 장식할 꽃을 두고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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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5월 결혼을 앞둔 예비 신부 이모(32) 씨는 식장을 장식할 꽃을 두고 고민에 빠졌다. 일생 한 번뿐인 결혼식을 꽃으로 예쁘게 장식하고 싶지만, 한 번 쓰고 버린다는 사실이 아까웠기 때문이다.

비슷한 고민을 하는 예비 신랑·신부가 있다면 꼭 알아야 할 '착한 정보'가 있다. 결혼식에서 쓴 예쁜 꽃을 착하게 다시 쓰는 방법이 있다.

비영리단체인 '플리'는 결혼식에서 사용한 꽃을 기부받아 호스피스 병동이나 요양원, 보육원 등에 찾아가 꽃꽂이 강의를 해주는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경기도 일산의 한 결혼식장에서 식을 올린 신랑, 신부는 사용한 꽃을 모두 인근 홀트복지타운에 기부했다 / 이하 플리 제공

일산홀트복지타운에서 열린 꽃꽂이 클래스

김미라(32) 대표는 지난 2015년 10월부터 본격적인 '플리' 활동을 시작했다. 그가 친구와 둘이서 시작한 '플리'는 현재 고정 봉사자만 160여 명이다. 서울과 경기, 부산 지역에 15개 팀으로 나눠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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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이태원동에 있는 '플리' 사무실에 처음 들어갔을 때 기자가 기대했던 꽃향기는 전혀 나지 않았다. 대신 꽃을 담을 상자들만 종류별로 가득 쌓여 있어 '꽃가게가 맞나' 어리둥절했다.

김 대표는 결혼식장에서 거둔 꽃은 최대한 재활용한다. 그래서 사무실에 남겨둘 꽃이 없다. 원래 결혼식장에서 버려지는 꽃은 100ℓ들이 쓰레기봉투 기준 10~20개지만, '플리'를 거치면 1~2개로 확 줄어든다.

'플리'의 좋은 뜻이 동참하고 싶어 하는 자원봉사자 수는 4일 현재 대기자만 1000명이 넘는다. 김 대표는 "생화가 시들기 전에 수거하고 다시 기부처로 가져가 꽃꽂이 수업을 진행하는 일이 보기보다 일이 복잡해 자원봉사는 고정팀을 꾸려 일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꽃을 거두는 봉사자들 / 이하 플리 제공

호스피스 병동 환자와 보호자들이 꽃으로 치유를 받고 있다

'플리'를 운영하는 것은 시간과 돈, 노력 등 어느 하나 빠질 것이 없어 보였다. 어떤 기부처가 가장 기억에 남느냐는 질문에 김 대표는 "봉사자 분들이 160명 넘게 계시는데, 제가 감히 꼽을 수 없다"며 손사래를 쳤다.

'플리' 꽃을 받고 행복해진 사람들

김 대표는 "할머니가 '태어나서 처음 꽃을 받아봤다'고 하신 말씀이나 호스피스 병동에 계신 환자분이 '일생에서 받는 마지막 꽃 선물일 것 같다'고 하셨던 말씀들이 기억에 남는다"고 조심스레 말했다. 김 대표는 "예쁜 꽃을 단순히 쥐어 주는 게 아니라 사회에서 약하고 소외된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이어주는 게 목적"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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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사서 결혼식장을 꾸미는데 드는 비용은 천차만별이다. 최소 1백만 원에서 최고 6000만 원대에 이른다. 적지 않은 비용인 만큼 예비 신랑, 신부 입장에서는 꽃 종류부터 다 쓰고 난 뒤 방법을 신중하게 고민할 수밖에 없다.

봉사자로부터 '플리'를 알게 된 고은정 씨는 결혼식장을 장식한 꽃을 모두 요양원과 미혼모 시설에 기부했다. 고 씨는 '축복의 꽃이 희망의 꽃으로'라는 이름의 작은 팻말을 만들어 꽃이 어떻게 쓰이는지 하객에게 알렸다.

결혼식장을 꾸민 꽃을 모두 기부한 고은정 씨 / 이하 고은정 씨 제공

고 씨가 기부한 꽃 일부

고 씨는 "결혼식에 오는 하객들이 예쁜 꽃을 직접 볼 기회가 없는 사람들에게 정말 소중한 경험을 준다고 생각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해 기부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특히 봉사자였던 그의 결혼식 함께 고정팀으로 활동했던 봉사자들이 직접 꽃을 수거해 시설에 기부했다. 고 씨는 "직접 활동을 해봤기 때문에 꽃을 기부하면 많은 사람에게 기쁨을 줄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며 "더 많은 사람이 이 기부 활동에 참여했으면 좋겠다고 자신 있게 권할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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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대표는 최근 비영리단체였던 '플리'를 비영리법인으로 인허가받을 준비를 하느라 바쁜 시간을 보냈다. 김 대표가 바빴던 이유는 하나 더 있다. 새로운 일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최근 꽃으로 하는 수익 사업도 개시했다. 비영리단체인 '플리'에 '우리'라는 뜻인 '어스(US)'를 합친 '플리:어스'가 새로운 사업 이름이다.

플리:어스 / 플리 제공

김 대표는 "돈을 정말 많이 벌고 싶다"고 강조했다. 그가 돈 욕심(?)을 내는 이유는 과거 경험에서 나왔다. 김 대표는 "대기업을 그만두고 비영리 단체에서 일했는데, 마땅한 대우를 못 받는다는 현실이 안타까웠다"고 털어놨다.

"좋은 뜻으로 시작한 일도 (자금난으로) 몇 년 안 돼 없어지는 경우가 많다. '플리:어스'로 돈을 많이 벌어서 '플리' 프로젝트를 계속하고 싶다"는 게 김 대표 마음이다.

수익 사업인 '플리:어스'도 사실 '착한 소비'를 지향하고 있다. 최근 페이스북에서 흔해진 꽃 구독 서비스의 일종이지만, 꽃을 6번 결제 및 구독하면 1번은 원하는 사회 복지 시설로 보낼 수 있는 시스템이다. '플리:어스'에서 제공하는 웨딩플라워 서비스를 이용하면 결혼식에 쓰인 꽃은 식이 끝난 후 자동으로 기부된다.

'플리:어스'만의 '6+1' 구독 서비스를 똑같이 따라하는 꽃집이 생기면 기분이 나쁘지 않을까? 김 대표는 "절대 아니"라고 했다. 김 대표는 "솔직히 많은 꽃집들이 따라했으면 좋겠다. 따라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꽃을 즐기기 어려운 좀 더 많은 분들도 꽃을 접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김 대표 활동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최근 광화문 촛불집회에서 예술 크라우드 펀딩 '세븐픽쳐스'가 시민들에게 경찰 차벽에 붙일 꽃 스티커를 줄 동안 '플리'는 장미꽃을 나눠줬다. 김 대표는 "저희가 구매한 꽃도 있고 기부받은 꽃도 있었다"며 "추운 날에도 꽃을 받으려는 시민분들이 정말 많이 계셨다"고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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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대표는 사실 꽃과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그는 전략 컨설턴트로서 5년 동안 대기업을 상대해왔다. 직장 생활에서 느끼는 단조로움을 깨보려고 시작한 꽃꽂이 취미반이 전환점이 됐다. 김 대표는 "꽃이 주는 즐거움을 직접 느끼다가 제가 결혼을 하면서 버려진 꽃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게 됐다"고 했다.

"한 번 쓰고 버리는 결혼식장 꽃이 너무 아깝다"

친구와 무심코 대화를 나누면서 김 대표는 프로젝트를 구체화했다. 직장인 시절부터 주말을 쪼개 친구와 결혼식장을 찾아가 꽃을 기부받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돌려줬다. 그렇게 5개월 가까이 김 대표는 주말 없이 꽃과 함께 살았다. 김 대표는 "처음에는 열정페이를 내면서 했던 일"이라며 "저 말고도 다른 봉사자 분들도 개인적으로 시간뿐만 아니라 돈을 내고 차량이나 물품을 기부하면서 활동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 꿈은 크다. 김 대표가 현재 하는 일은 할머니나 미혼모, 장애인 등이 꽃꽂이를 하면서 꽃이 주는 행복을 느끼고 새로운 경험을 하도록 돕는 것이다.

"사실 꽃으로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 비해 많이 없다. 특히 미혼모 친구들처럼 꿈은 많은데 여건이 어려운 친구들은 플로리스트가 되고 싶어도 취업이 잘되는 직군만 꿈꿔야 하는 상황이다. '플리'로 꽃꽂이를 배운 친구들이 '플리:어스'에 취직해 돈을 벌고 자립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싶다"고 말하는 김 대표의 눈이 반짝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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