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달려서' 80대의 나를 만났다 (체험기)

2017-01-30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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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대의 내 모습을 본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미래일기'라는 TV 프로가 있었다. 스

"80대의 내 모습을 본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미래일기'라는 TV 프로가 있었다. 스타들이 노인 분장을 해 자신을 돌아본다는 내용이다. 백발에 주름진 자신을 본 스타들은 저마다 다른 반응을 보였다.

77세 할머니 분장을 한 방송인 박미선 씨는 "상상했던 모습과 달랐다. 멋진 할머니가 돼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80세 할아버지로 변신한 스포츠 해설가 안정환 씨는 자신의 늙은 모습을 보며 처음엔 말을 잇지 못했다. 안 씨는 "이거 되게 슬프다. 말문이 막힌다"고 간신히 입을 열었다.

77세 할머니로 변신한 박미선(왼쪽), 80세 할아버지로 변신한 안정환 씨 / MBC '미래일기'

이들 소감을 들으면서 생각이 많아졌다. 나는 80대에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갑자기 늙어버린 내 모습을 본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싶었다. 그래서 색다른 도전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것은 바로… 노인 체험이었다.

1991년생인 기자는 올해(2017년) 만 26살이다. 현재 나이에서 약 60년이 훌쩍 지나갔다고 가정해봤다. 노화되면서 달라지는 외모와 신체적 변화에 포인트를 맞췄다.

◇ 할머니를 떠올리게 한…'80대의 얼굴'

진하게 푹 패인 팔자주름, 처진 눈가, 이마와 눈가 주름, 백발의 머리까지. 나이든 어르신들에게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외모적 특징이다.

분장의 힘을 빌려 주름 가득한 노인으로 변신했다. 지난 10일 오후 서울 강남구 메이크업 숍에서 메이크업 아티스트 임정현(27) 씨 도움을 받았다.

분장용품이 얼굴 곳곳에 덕지덕지 칠해지기 시작했다. 평소 화장을 별로 하지 않아서 그런지, 두껍게 발리는 분장용품의 이물감이 다소 버거웠다.

임 씨는 어두운 색상 파운데이션을 이용해 칙칙한 안색을 표현했다. 아이라이너로 눈가 잔주름을 촘촘하게 표현했다. 갈색 펜슬과 브러시로 이마와 미간, 인중 주름을 그려 넣었다. 움푹 팬 팔자주름까지 그려 넣으니 확연히 늙어 보였다. 피부관리의 중요성을 여실히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

이하 위키트리

분장 도구를 이용해 하얗게 센 눈썹과 머리카락도 표현했더니 영락없는 할머니가 됐다. 분장은 약 1시간이 지난 후에야 끝났다.

거울로 내 모습을 보니 울적해졌다. 분장 초기에만 해도 점점 달라지는 얼굴에 피식 웃음이 나기도 했었는데…

단지 분장용품 몇 개가 얼굴에 칠해졌을 뿐인데, 인상이 확 흐릿해진 느낌이 들었다. 얼굴 곳곳에 그려진 주름과 퀭한 뺨은 쓸쓸해 보였다.

어딘가 친숙한 모습도 보였다. 80이 넘은 내 친할머니였다. 지금껏 살면서 내가 할머니를 닮았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분장이 끝난 내 얼굴은 묘하게도 할머니와 비슷했다. 동글동글한 얼굴형과 처진 눈꼬리, 팔자주름이 특히 그랬다.

문득 할머니에게도 20대 시절이 있었단 걸 떠올리게 됐다. 할머니의 시간이 훅 흘러갔던 것처럼 나 역시 그럴 것이다.

분장 전(20대), 분장 후(80대) 모습

◇ "아이고" 소리가 저절로 났던 '80대의 몸'

한창 대학교에 다니고 있었던 4년 전, 마음에 맞는 친구 여섯과 함께 서울의 한 복지관에서 봉사활동을 했다. 어르신들에게 간단한 핸드폰 사용법이나 건강 체조 등을 알려드리는 활동이었다. 그때 당시 잘 따라 하지 못했던 일부 어르신들은 "너네도 내 나이 돼봐라"면서 푸념을 늘어놓으셨다.

노화가 진행될수록 이전보다 체력이 많이 떨어진다는 얘기는 이전부터 들어왔다. 근력과 골밀도, 면역력도 약해져서 젊은이들보다 쉽게 다치고 질병에 걸리기 쉽다. 눈도 안 좋아져서 돋보기 안경을 쓰기 일쑤다.

지난 11일 오후 서울 용산구에 있는 '노인생애체험센터'를 찾았다. 특수장비를 착용해 노인의 몸 상태를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도록 돕는 곳이다.

이날 기자를 포함해 11명이 체험에 참여했다. 체험실은 준비 공간과 체험 공간으로 구성돼 있었다. 준비 공간에서 체험복을 착용한 후 체험 공간으로 이동했다.

체험 공간은 욕실과 침실, 주방 등이 마련돼 있는 등 일반 가정집과 흡사하게 꾸며져 있었다. 이날 체험을 이끈 박정원 노인생애체험센터 차장은 "주로 대학 사회복지학과, 간호학과 등에서 실습을 하러 많이 온다"고 했다.

노인생애체험센터 홈페이지

마침 이날 함께 참여한 8명은 사회복지학을 전공하는 대학교 3~4학년 학생들이었다. 색다른 데이트를 즐기러 온 커플도 있었다. 여자친구 김보경(23) 씨와 센터를 찾은 우준(25) 씨는 "인터넷에서 보고 신기하다고 생각해서 여자친구랑 오게 됐다"고 말했다.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신체 곳곳에 체험 장비를 착용했다. 양 팔목과 발목엔 근력 저하를 체험할 수 있는 모래주머니를 찼다. 각각 1kg에 달하는 모래주머니들을 차니 벌써부터 몸 전체가 욱신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무릎과 팔꿈치에는 보조장치를 차 자세를 구부정하게 만들었다. 해당 장치는 관절을 굽히고 펴는 동작을 어렵게 하는 역할을 했다. 등과 어깨 부위에 찬 체험복은 허리를 구부정하게 만들었다. 착용하고 나니 등을 곧게 펴기가 힘들었다.

눈에는 고글처럼 생긴 안경을 썼다. 백내장 등 노인성 안구 질환을 체험할 수 있도록 제작된 고글이다. 고글을 써보니 앞이 흐릿하게 보였다. 시야도 이전보다 확 좁아져 있었다.

체험에 앞서 준비공간에서 체험장비를 착용하고 있는 모습. 체험장비 전체 무게는 6kg이다 / 이하 위키트리

약 6kg에 달하는 체험장비를 착용한 후 본격적인 체험에 돌입했다. 시작 단계인 '신발 갈아 신기'부터 난관이었다. 무릎은 안 굽혀지는데, 눈은 침침하니 신발 갈아 신기도 버거웠다.

이후 소파와 일반 의자, 화장실 변기와 욕조에 앉았다 일어나는 동작을 했다. 등에 차고 있던 체험장비가 몸을 압박해 움직이기가 힘들었다.

누웠다 일어나는 자세도 마찬가지였다. 평소 같으면 무릎과 팔을 구부려서 일어날 텐데, 모래주머니와 관절 곳곳에 찬 장비 압박 때문에 쉽게 일어날 수가 없었다. 함께 참여한 학생들 입에서 "아이고" 소리가 터져나왔다.

체험 하이라이트는 계단 코스였다. 체험장비를 착용한 채 열 계단 정도를 오르내렸는데 이 역시 쉽지 않았다. 눈이 침침해서 계단 아래가 잘 보이지 않는 데다, 발목은 모래주머니로 인해 딛는 힘이 약했고, 무릎은 잘 굽혀지지 않았다. 등도 뻣뻣해서 아래를 내려다보기가 어려웠다. 계단 옆 손잡이에 의지해 한 칸 한 칸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계단 올라가기도 마찬가지였다. 무릎에 찬 보조장치 때문에 다리가 잘 굽혀지지 않아 계단 손잡이를 잡고 천천히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계단을 두세 차례 왔다 갔다 하니 이마에 땀이 살짝 맺혔다.

프로그램은 약 2시간이 지난 후에야 끝났다. 기자를 포함한 11명이 각각의 활동을 체험하는데 걸린 시간이었다. 시작할 때만 해도 '왜 이렇게 길지' 했는데, 시간은 어느새 훌쩍 흘러 있었다.

함께 체험에 참여한 대학생 유호정(23) 씨는 "집에 계신 할머니, 할아버지 생각이 많이 났다"고 말했다. 남자친구와 함께 센터를 찾은 대학생 김보경 씨는 "평소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어르신들을 자주 보는데, 자리를 꼭 양보해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하는 만학도 계승연(56) 씨는 "노인체험에서 더 나아가 '죽음'을 체험하는 프로그램도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이날 프로그램을 이끈 박정원 차장은 "젊은이들이 노인의 몸을 간접 체험함으로써 노인에 대한 인식 개선은 물론 세대 통합을 도모하기 위해 이러한 프로그램을 마련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 노인체험 프로그램은 지난 2006년 시작된 후 약 5만여 명이 다녀갔다고 했다.

*사진·움짤 = 신희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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