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여자만 살아요?" 범죄 타깃될까 불안에 떠는 '여성전용 원룸' 거주자들

2017-04-05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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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한 여성전용 원룸. 입구에 불이 켜져 있다 / 이하 위키트리 지난해 1

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한 여성전용 원룸. 입구에 불이 켜져 있다 / 이하 위키트리

지난해 11월 말 직장인 김모(여·26)씨는 으스스한 일을 겪었다. 당시 김 씨는 서울 청파동에 있는 여성전용 원룸에 살았다.

퇴근하고 집에 가는데 집 건물 앞에 한 남자가 서성거렸다. 이 남자는 김 씨에게 다가오더니, 씩 웃으며 "여기 여자만 살아요?"라고 물었다. 김 씨는 무서워서 아무 대답 않고 쏜살같이 건물로 들어갔다.

김 씨는 "며칠간 이 남성이 건물 주변을 서성였는데 그냥 이 주변에 사나 보다 싶어 신경쓰지 않았었다"며 "무서워서 경찰에 신고까지 했다"고 말했다.

김 씨가 산 원룸은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45만원, 관리비 3만원이었다. 경비실은 없었다. 김 씨는 "이곳은 복도에 '여성 전용 원룸'이라는 종이가 붙어 있었다"며 "그 종이가 '이 건물에 여자만 산다'는 걸 광고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불안했다"고 했다.

집주인은 뭐가 문제냐는 태도였다. 그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사람들도 잘 살고 있다. 방범창도 튼튼하다”라며 “세입자가 예민하면 뭐든 수상해 보이지 않겠느냐"고 했다. 결국 김 씨는 지난 1월 이사를 갔다.

김 씨처럼 많은 여성들이 '안전'을 이유로 '여성 원룸'을 택한다. 하지만 '여성 전용'이어서 오히려 범죄 타깃이 될지 모른다고 걱정하는 여성들이 많다. 안전 때문에 '여성 전용'을 택했는데, '여성 전용'이기 때문에 안전하지 않게 되는 역설적 상황이 생기는 셈이다.

◈ "내가 몇 호에 사는 걸 보여주는 게 돼버리니까..."

여성 전용 건물에 남성이 배회하면 여성들은 실제적인 '위협'을 느낀다.

대학생 이모(여·21)씨는 지난해 9월부터 서울 대현동에 위치한 여성전용 원룸에 살고 있다.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50만원을 낸다. '여성전용 원룸'을 택한 이유는 단 하나. 안전하다고 생각해서다. 하지만 이 씨는 곧 자신의 선택을 후회했다.

이사오고 두 달 쯤 뒤였다. 이 씨는 원룸 건물 공동출입문을 열었는데 어떤 젊은 남자가 좁은 복도에서 원룸들을 훑어보고 있는 걸 봤다.

이 씨는 "공동 출입문을 열자마자 남자가 복도에 서 있어서 진짜 놀랐다. 그 남자도 나를 보더니 놀란 눈치였다"며 "우리 집 문을 열어야 하는데 열 수가 없더라. 내가 몇 호에 사는 걸 보여주는 게 돼버리니까..."라고 말했다. 이 씨가 쳐다보자 남자는 황급히 밖으로 나갔다고 했다.

이 씨는 "자취방을 알아보다 아무래도 여성전용이 안전할 것 같아 택했는데 제가 생각을 잘못한 것 같다"며 "남자들이 들락날락해서 불안하다"고 말했다.

원룸에 설치된 공동출입문. 비밀번호를 눌러야 원룸이 있는 복도로 들어갈 수 있다

이 씨는 그 경험 이후 원룸 건물에 들어설 때마다 조심하게 됐다. 계약기간 6개월을 남겨둔 이 씨는 재계약을 하지 않을 거라고 했다.

◈ 거주 비용 저렴할수록 더 위험하다

여성전용 원룸 대부분은 '안전'은 없이 '여성'을 모아놓은 곳에 불과하다. 물론 경비실이 있어서 보안이 강한 여성전용 원룸도 있다. 그런 곳은 비싸다.

실제로 거주 비용이 가장 저렴한 ‘여성전용 고시원’에서 범죄가 빈번하게 발생했다. 2015년 한 20대 남성이 강남구 논현동에 위치한 여성 전용 고시원에서 자위행위를 하다 경찰에 붙잡혔다.

2013년에는 광주시 동구에 위치한 여성전용 고시원에서 한 20대 남성이 여성을 성폭행 하려다 검거됐다. 30대 남성이 인천 서구의 한 여성 전용 고시원에 침입해 속옷을 훔쳐간 사건도 있었다.

여성전용 고시원 대부분은 보증금이 없다. 서울의 경우 월세가 35만~40만원선이다. 대신 보안이 허술하다.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열리는 공동출입문이 없는 경우도 많다.

여성전용 고시원에 거주하는 안모(24)씨는 “1000만원 정도 되는 보증금이 부담스럽기 때문에 고시원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며 “여자만 사는 고시원이라서 배달 음식이라거나 택배를 잘 안 시킨다. 불안해서...”라고 말했다. 안 씨는 월세 45만원을 내고 서대문구 창천동에 위치한 여성전용 고시원에 산다.

원룸이 위치한 복도. 공동 출입문을 지나면 이곳으로 들어갈 수 있다

◈ 70만원에 가까운 월세, 내겐 너무 부담스러운 돈

서울 서대문구 여성전용 원룸 가운데 경비원이 있는 곳 시세를 알아봤더니,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60만원, 관리비 5만원 수준이었다. 월세로 70만원에 가까운 돈이다. 평범한 대학생과 직장인에게는 부담스러운 지출이다.

shutterstock

공인중개업자 최수현 씨는 “여성전용 원룸이 진짜 ‘안전’하기 위해서는 보안이 철저해야 한다. 가장 좋은 건 경비실이 1층에 따로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최수현 씨는 “경비실이 따로 없는 곳은 아무래도 외부 남성들이 출입할 수도 있을 것”이라며 “결국 주거 비용이 비쌀수록 안전도 따라오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5년 1인가구는 총 520만 가구다. 이 가운데 261만 가구가 '여성 가구'다. 여성 1인가구가 늘고 있는 만큼 주거 안전에 대한 인식도 높아져야 한다.

여성 1인가구에 대한 문제를 다뤘던 한국여성민우회 활동가 최원진 씨는 "현재 여성 안심 귀가 서비스라거나 여성 안심 택배 등 여성 1인가구에 대한 정책이 부족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면서 "정책보다는 사회적인 인식, 성범죄 신고율 등이 더 높아져야 한다"고 말했다.

최 씨는 "집을 보러 갈 때 임대인이나 공인중개사가 여성을 대하는 방식이 권위적이라거나, 임대인이 젊은 여성 세입자에게 사생활 간섭을 하는 문제도 있었다"라며 "또 혼자 산다고 하면 주변에서 '남자친구가 좋아하겠다', '연애하기 좋겠다' 이런 식의 농담을 던지기도 한다. 자신을 쉽게 볼까봐 1인 가구라는 사실을 이야기하지 않는 여성들도 많았다"라고 했다.

home 박민정 기자 story@wikitree.co.kr